멘탈 터진 웹소설 작가의 발버둥5
슬럼프와 번아웃으로 힘들어 정신과 약을 먹고, 수술로 인해 쉬는 동안 의미 없이 드라마나 시트콤 정주행을 했었다. 그러면서 어렴풋이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삶이 참 무료하다고. 그 생각은 내가 조금씩 활력을 찾아가기 시작한 뒤에도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그랬다.
취미가 없구나.
시간이 나면 뭘 해야할지를 몰랐다. 그저 드라마 하나를 틀어놓고 소리만 들으면서 폰으로 게임이나 웹서핑을 해댔다. 당연하게도 생산적인 행위는 아니었다. 그렇게 시간을 죽여대면서, 심지어 재미도 없었다. 어떤 보람도 즐거움도 없는 행위였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이런 행태는 글을 업으로 삼으면서 시작됐던 것 같다. 취미였던 글쓰기가 일이 되어버리자 취미가 사라진 것이다. 일적으로 글을 쓰고 또, 심리적으로 위축되며 글에 몰두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다 보니 그 자리를 대체할 만한 거리를 찾지도 못했다.
단순히 즐길 거리가 사라진 문제가 아니다. 글은 안 써지지, 맘은 초조하지, 스트레스는 계속 받는데 그걸 해소할 수단이 없는 것이다. 풀리지 않은 스트레스는 지속적으로 쌓이기만 했다. 더군다나 내가 시간을 내어 몰두하고 싶은 행위가 없으니 계속해서 글 생각만 하게 됐다. 하루 작업량을 채우고도 남는 시간 내내 다음 내용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자기 전까지도 다음날 쓸 내용을 되새겨보느라 온종일 글만 떠올렸다. 즐겁게 주의를 분산시킬 만한 무언가가 있었더라면 그렇게까지 글에 갇혀 있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취미의 부재는 꽤 큰 영향을 미쳤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는 취미로 삼을 만한 게 없나 둘러보게 됐다. 글을 즐겁게 쓰려면 나부터가 활력이 돌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무언가를 할 생각에 신이 나고 두근대는 경험을 해본지 오래라. 나를 건강히 들뜨게 해줄 요소를 찾고 싶었다.
그리고 딱 그 시기에 나는 내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다. 나는 너무 힘들고 부담돼서 글도 못 쓰고 있는 실정이지만, 그게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걸 인정한 순간부터 놀랍도록 마음이 편안해졌기 때문이다. 혹시 나와 같은 증세를 겪는 사람이 있다면 '그거 자연스러운 일이더라' 하고 알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타인으로 치환된 나에게 모종의 위로를 주고 싶었는 지도 모르겠다.
또, 내가 이 시기에 겪은 감정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정리해서 남기는 게 나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내게는 아직 겪어야 할 일들이 무수히 많지 않던가. 미래의 또 어떤 날 마음이 힘들다면, 지금을 돌아보면서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게 될 수도 있을 테다.
직업 글쓰기가 아닌 다른 행위 + 타인과 공유하는 지금의 상황과 심정.
결론을 정리하자면 그랬다. 그래서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게 뭐였냐면, 바로 브이로그였다.
사실 나는 유명인들의 브이로그도 본 적이 없었다. 일상적인 이야기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쩌다가 브이로그라는 걸 처음 접하게 되었느냐 하면. 키보드 때문이었다. 이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웹소설 작가 중에는 키보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기에 특정 모델의 키보드를 검색하면 웹소설 작가의 브이로그가 나오곤 한다.
나도 처음에는 키보드 검색을 해보다가 웹소설 작가의 브이로그를 보게 됐다. 그저 키보드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함이었으나 이상하게도 키보드가 나오지 않는 부분의 영상까지 다 보게 됐다. 자극적인 소재 없이 지극히 평범한 일상인데도 삼삼하게 보는 맛이 있었다. 그러면서 브이로그에 대한 미량의 호감도가 생겼다.
더군다나 대부분 웹소설 작가 브이로그의 경우, 이동하거나 외출하는 영상도 담기지만 많은 분량울 타이핑이 차지한다. 키보드를 치는 손만 계속 나오면서 자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 많다. 얼굴도 나오지 않고, 하고 싶은 얘기는 하면서 일도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얼굴이나 목소리 노출 없이도 영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영상을 편집하는 새로운 자극을 경험하면 좋을 것 같았다. 내가 작업하는 모습을 누군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더 열심히 글에만 집중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그래서 해야겠다고 확고한 마음이 들던 날, 당장 삼각대를 주문했다. 삼각대가 도착한 다음날에는 곧바로 그걸 가지고 출근길에 올랐다.
그리고 첫 촬영 당일, 바로 포기했다.
나와 일상 촬영은 맞지 않는 방식이었다. 나도 몰랐는데, 나는 굉장히 많은 멍을 때리고 많은 수정을 하며 천천히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익히 봐온 브이로그 속 몇 분씩 연달아 타이핑을 하는 모습은 내게 없었다. 편집으로도 살릴 가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오타가 잦은 편이라 몇 글자 쓰고 백스페이스만 여러 번 누른다든가, 몇 줄 쓰고 지우고 다시 쓴다든가, 한 마디 쓰고 다음 문장을 생각하며 가만히 있는다든가. 평소라면 자연스러웠을 행동이건만, 그걸 카메라에 담으려니 다 어딘가 이상해보였다. 그래서 내 모든 행동이 자연스럽지 않게 느껴졌다.
더군다나 나는 지웠다 썼다 반복하며 느릿하게 분량을 늘려가는 타입인데, 카메라를 의식해 계속 무언가 타이핑을 하려고 하니 생각할 시간이 줄었다. 생각을 못하니 내용도 더 나오질 않았다. 결과적으로 더 잘 써보려고 시도했던 게 오히려 독이 된 셈이었다.
그래서 빠르게 포기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시도했다가 포기했다고 해서 막막해지거나 마음이 무겁진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저 또 뭘 해보지? 고민하느라고 바빴다.
그 두 번째 시도가 바로 브런치였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은 이전부터 들어봤지만, 아는 건 하나도 없던 차였다. 가끔 무언가를 검색해보다가 검색 결과에 걸리면 필요한 내용만 찾아보고 나간 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 순간 왜 내게 더 익숙한 블로그가 아닌 브런치가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직업으로 글을 쓰면서 글쓰기를 또 취미로 하려 하다니. 희한하기도 했다.
그래도 한 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든 김에 곧장 브런치 사이트에 접속해봤다. 아뿔싸. 가입만 하면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줄 알았더니 작가 신청이란 걸 해야하는 거다. 그렇군, 하고 그냥 알아두고만 있으려 했는데 조금 뒤 나는 노트북을 펴고 있었다. 관문이 귀찮아서 미뤄두면 영영 안 할 것 같아서였다. 절차에 따라 소개, 계획 등을 입력했고, 급히 글 하나를 써서 작가 신청을 마쳤다.
그 글이 바로 내가 처음으로 올렸던 글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일부분일지라도 터놓고 나자 조금 후련한 기분이었다. 게다가 영상 촬영이나 편집 같은 별도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직관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더 만족스러웠다. 솔직히 그런 만족감을 느끼고 나서야 비로소 작가 신청이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단 마음을 가졌었다.
결과는 예상보다 빨리 나왔다. 밤에 문득 든 충동으로 작가 신청을 했었는데, 다음 날 오후에 합격 소식이 날아왔다. 어쩌다 보니 나의 브런치 입성기가 되어버린 것 같지만, 어쨌든 덕분에 나는 취미 글쓰기를 하는 중이다. 어떤 부담도 없이 빠르게 글을 적어내려가는 묘한 쾌감도 있고, 혼자서 속으로만 간직하던 이야기를 터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내게는 아주 잘 맞는 취미를 찾아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