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2023년 차이코프스키 콩쿨이 막을 내렸다.
감사하고 자랑스럽게도 올해 콩쿨에선 바이올리니스트 김계희, 첼리스트 이영은 , 테너 손지훈씨가 각 분야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현악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처음으로 현악 부문에서 한국인 우승자가 나왔다는 사실이 매우 감격스러웠다. 이번 콩쿨을 위해서 열심히 땀 흘리며 준비했을 수상자들에게 다시 한번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벨기에 왕가가 주관하는 차이코프스키 콩쿨은 이전까지 퀸 엘리자베스 콩쿨 , 쇼팽 콩쿨과 더불어 세계 3대 콩쿠르로 불렸다. 그러나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차이코프스키 국제음악콩쿠르에서 퇴출됐다. 우크라이나에서 잔혹한 행위를 저지르는 러시아 정부가 지원하고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는 대회를 지지하거나 회원으로 둘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국제음악콩쿨연맹의 결정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두 나라 사이 전쟁이 어떤 배경에 의해서 일어났던지간에 결국 전쟁을 택한 러시아를 인도적 차원에서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퇴출되기전까지의 차이코프스키 콩쿨의 위상과 역사는 충분히 인정한다. 그러나 이제 그 위상은 더이상 찾아 볼 수 없게 됐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 라는 속담이 있지만 "공든탑도 개미구멍으로 무너진다" 라는 속담도 있다. 힘들게 쌓은 탑을 잘못된 결정으로 무너지게 하는 러시아 정부의 몰락이 이게 끝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나는 러시아가 그 대가를 분명히 치룰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차이코프스키 콩쿨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이 들었다. 과연 차이코프스키 콩쿨에 참가한 사람들은 기회주의자인가?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아니다 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음악 커리어와 앞으로의 인생을 위해 콩쿨에 참가하는 연주자들을 향해 누가 활을 쏠 수 있을까? 물론 그들이 기회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왜 굳이 차이코프스키 콩쿨? 지금 이 상황에서? 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들의 의견에 반박하고 싶지 않다. 아니, 사실 반박이 필요한 논쟁 거리가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콩쿨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분명히 있다는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참가하기를 꺼려한 연주자들도 분명히 있었을것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참가자들이 그 틈을 노리고 콩쿨에 참가했다는 관점으로 본다면 그들을 기회주의자라고 생각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아니다 라고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지난 2년의 시간동안 클래식 공연장을 다니며 공연을 봐 온 결과, 우리나라에서는 해외 네임드 콩쿨을 우승하지 못하면 솔로이스트로서 성공하기 정말 어렵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네임드 콩쿨을 우승 할 경우 다양한 방향으로 (음반사 계약 혹은 유명악단과 협연 등)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스스로 음악인으로서의 길을 개척해야만 한다.
대학교 4학년 무렵, 여느때와 같이 나는 볼 만한 음악회를 찾아 열심히 웹서핑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친한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A : 야 나도 클래식 공연 한번 보러가보고 싶다
나: 그래? 갑자기 어쩐일로? 너 원래 관심 없었잖아 괜찮겠어?
A: 아니 너 자주 보러다니는거 같아서, 나도 클래식에 관심 한번 가져보고 싶어.
듣던 중 굉장히 반가운 소리였다. 평소에도 굉장히 가깝게 지내면서 서로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쉽게 꺼낼 수 있는 그런 친구가 내가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같이 해보고 싶다니! 그동안 개인 인스타에 기록용으로 공연 후기 스토리를 자주 올리면서 마음 속 작은곳에서 클래식의 대중화를 바랬던 나의 노력이 통했던걸까?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친구가 부담스럽지 않을만한 적정한 가격선의 피아노 듀오 공연을 찾았고 친구와 함께 공연장 근처에서 밥을 먹고 공연장을 들어섰다. 400석 규모였던 그 공연장에는 안타깝게도 시작 하기 5분전이었음에도 눈대중으로 몇명인지 셀 수 있을정도의 적은 인원이 들어섰다. 공연은 시작됐고 초반 10분 동안 친구는 집중하는 듯 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는 점점 집중력이 흐려졌고 결국 인터미션 시간에 나에게 힘들다며 나가자는 이야기를 했다. 사실, 나도 내 나름대로 신중하게 선택을 하긴 했지만 그 날은 내가 선택 할 수 있는 공연 선택지가 많이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나 롯데 콘서트홀에서 빵빵한 목관, 금관악기의 품속에서 날아다니는 관현악의 선율 , 관객들의 힘찬 박수와 함성, 이어지는 감동과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친구와 나의 시간적 여유, 금액, 위치 모든것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프로그램이 문제였을까? 공연장이 문제였을까? 자리가 문제였을까? 연주자가 문제였을까? 여러 생각이 들면서 연신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그만큼 나도 첫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안한 마음과 함께 씁쓸한 마음도 같이 몰려왔다. 프로그램 북을 한장씩 넘기면서 연주자들의 약력을 살펴보았는데 한눈으로 봐도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국내 유명 콩쿨을 석권하고 메이저 음대를 졸업 한 후 유럽에서 최고 연주자 과정까지 끝내신 분들이 고작 공연장의 반의 반의 반도 안되는 관객들 앞에서 연주를 해야 한다니. 비단 이 공연 뿐만이 아니다. 예술의 전당 리싸이틀 홀만 가보아도 그 실체를 알 수 있다.
세상은 넓고 음악을 잘하는 사람은 많다. 나갈 수 있는 대회와 솔로이스트로 성공 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다. 솔로이스트를 포기하고 다른 방향으로 음악을 계속 할 것인가? 아니면 평생 해온 음악을 포기하고 새로운 도전을 할 것인가? 나 또한 전공자는 아니기에 쉽게 말할 수 없지만 굉장히 선택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저 클래식을 좋아하고 우리나라 클래식의 무궁한 발전을 바라는 사람으로서 무대에서 혹은 콩쿨에서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모든 연주자들에게 그저 응원의 목소리를 보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솔로이스트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방법으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음악인들에게도 더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게 된다면 매 공연이 행복하고 따뜻할거 같다.
# 끝으로 많이 부족한 필력이지만 봐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