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보아저씨가 되던날
초등학교 졸업식이었던 1972년 2월
지금도 그날을 떠올리면, 내 마음 한켠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나는7남매의 막내 였고, 그날은 나를 위한 '첫 축하'가 펼쳐진 날이었다.
우리집은 대가족이다. 엄마, 아빠, 언니3명, 오빠 3명, 그리고 막내인 '나" 모두 9명이다.
한밥상에 앉을수도 없지만, 아버지와 오빠들이 한밥상에서 밥을 먹었고,
언니들과 나, 그리고 엄마는 다른 밥상에서 밥을 먹으며 자랐다.
늘 명절이고, 잔치집이다.
가족들의 생일, 시험이 끝난 날, 명절, 김장하는날이면 늘 북쩍이고 웃음소리가 집 담장을 넘었다.
동네 사람들은 그런 우리집을 보며, 늘 부러워했다.
막내 졸업인데 우리 다 같이 중국집 가자!!
졸업식에 우등상, 6년 개근상, 빛나는 졸업장과 꽃다발까지 받아 기분은 두둥실 하늘에 떠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6년 개근상을 받아다며, 아버지와 어머니는 더 좋아하셨다.
내가 워낙 약골이어서 많이 아팟지만 1년 개근도 아닌 6년 개근이란 사실이 못내 즐거우셨던 모양이다.
아버지께서는 기분이 좋으신지, 우리 막내 졸업했으니 "청요리" 먹으러 가자 하셨다.
우린 "와아~~우리아빠 최고!" 라며 즐겁게 손을 마추치며 즐거워했다.
내 기억에 외식은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처음 있었던 일이었다.
중국집 문을 열자 기름과 불향, 그리고 어딘가 달콤한 냄새가 코를 스친다.
그 시절에는 모두들 어려운 시절이라, 중국음식도 청요리라 표현을 했었다.
지금처럼 외식이 흔하고, 배달음식이 흔한 시절이 아니었다.
우리같은 서민은 외식은 아주 특별식이었다.
커다란 원탁에 앉아 주문을 하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대하며 상상해봤다.
'짜장면은 어떤 맛일까?'
드디어 음식이 한상 가득 차려졌다. 짬뽕, 짜장면, 잡채밥, 단무지와 양파까지 한데 모여지니
화려한 음식들이 모락모락 김까지 오르니 모습에 취하고 향에 취해버렸다.
내 인생의 첫 짜장면
눈앞에 놓은 짜장면을 바라보며,
'니가 짜장면이구나, 반갑다!! 너의 몸을 나에게 바치니, 내가 즐겁게 흠향하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란 면위에 검은 소스, 나란히 줄마춰 썰어 놓은 초록색 오이위에 달걀 반쪽이 나를 반기는듯했다.
마치 처음 보는 예쁜 옷을 입은 음식 같았다. '어쩜 이렇게 고을까'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버진 나무젓가락을 쪼개어 면을 비벼주셨다.
소스는 금새 면사이에 파고들고,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검은옷으로 갈아 입었다.
나는 아버지가 하시는것처럼 달걀을 입에 넣었다.
고소한 맛이 입안에 퍼지며, 곧이어 한 젖가락 가득 짜장면을 입에 넣었을때,
"어머나 어쩜 이렇게 맛있어, 엄마 아빠 넘 맛있어요"라며 나도 모르게 감탄이 튀어나왔다.
처음으로 외식이란 걸 해본 날!
가족이 나를 위해 모두 모인 날!
내가 어른이 된것 같은 기분을 느낀 날!
그 기분좋음이 짜장면 한 그릇에 모두 담겨 있었다.
입가에 소스가 잔뜩 묻어 있는 줄도 몰랐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닦지 않았다.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나 짜장면 먹었어!'라고 자랑하기전에 입가에 묻는 짜장 소스가 먼저 말해주길 바랬다.
그 모습을 본 언니, 오빠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막내가 털보 아저씨가 됐네!"
그날 이후, 내 별명은 '털보 아저씨'가 되었다.
형제들은 그 별명을 참 재미있게 오래 놀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놀림이 하나도 밉지 않았다.
그날 짜장면은 내게 별명을 선물했고,
가족들의 웃음소리를 선물 받았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처음의 기억을 남겨줬다.
짜장면 한 그릇에도 인생이 담깁니다.
여러분은 어떤 음식에서 '처음'을 느끼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