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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 Jun 27. 2023

여름의 기억

화개장터의 여름

  하늘에 구멍이 뚫렸나 하며 집에서 하루를 보낸 8월의 어느 날. 갑작스러운 폭우로 전국 곳곳이 침수됐다는 속보가 쏟아졌다. 2020년에 침수라고? 산사태로 사람이 숨지고 도로가 물에 잠기다니. 허망한 표정의 얼굴, 당황스러워 눈물조차 나지 않는 시민들의 인터뷰가 흘러나왔다. 2003년 매미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수 있나? TV 속 화면을 믿기 힘들었다. 경남 지역에도 피해가 상당했다. 특히 섬진강 하류에 위치한 하동은 주민 대피령이 내려질 정도로 피해가 컸다. 우리 회사는 재난재해특별방송으로 긴급 편성을 했고 며칠 후 나는 하동 화개 장터로 향했다.     


  하동 요금소를 지나는 순간부터 재난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졌다. 지나는 길목마다 수마를 견디지 못한 나무들이 쓰러져 있고 흙투성이의 쓰레기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화면 속 상황보다 현장은 더 심각했다. 지역을 넘어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화개 장터가 하루 사이 무너져 있었다. 화개 장터의 상점 대부분은 물이 가득 차버려 회생 불가한 모습이었다. 또 가전제품, 집기류 등도 다시 쓰기는 힘든, 쓸모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한편, 언제 비가 왔냐는 둥 태양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흘렀고 찌는 듯한 더위에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날씨까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따라주지 않으니 걱정이 밀려왔다. 평범한 인터뷰도 진행하기 힘든 더위인데 인터뷰에 응해주실까? 내가 말을 건네는 게 실례는 되지 않을까? 직접 몸을 써 도와드리는 게 낫지 않을까? 걱정에 걱정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어서 와요."라며 반갑게 맞아주신 자원봉사자 선생님 덕분에 걱정은 사라졌다. 취재 나가기 전 날, 사전 섭외를 한 자원봉사자 선생님이다. 인터뷰 요청을 드렸을 때부터 "우리 지역 상황을 알릴 수 있다면 해야죠."라며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폭염주의보로 감당하기 힘든 무더위에, 마스크까지 착용하고 있어 온몸에 땀이 흐르는 상황인데도 미소로 반겨준 선생님. 멀리서 오느라 고생 많았다며 수박부터 챙겨주는 따스함은 지금도 생생하다. 수박으로 더위를 식히고 재난 상황 센터를 찬찬히 둘러보니 선한 마음을 지닌 사람의 손길들이 보였다. 다시 일어서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보낸 구호물품들이 제법 많이 쌓여 있었고 복구 작업에 나선 자원봉사자들이 계셨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건넨 자원봉사자 한 분도 기억난다. 화개 장터를 찾은 자원봉사자들에게 식사와 간식을 제공하는 봉사를 하는 어머니셨다. 하동에 거주하는데 동네에 난리 나 현장으로 뛰어왔다고. 화개 장터 상인들과 한 다리 건너면 다 알 정도로 가까운 사이인데 가족 일 같아 돕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하동 사람이니까 동네 사람이어서 한다고 쳐요. 그런데 저 멀리 서울, 제주에서 온 사람들도 있어요. 얼마나 고마워요. 그러니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죠."라며 폭염 속에서 엿새째 봉사를 이어가는 이유를 덧붙였다.     


  이어 화개 장터 상인회 회장님을 만났다. "많이 속상하시겠습니다."라고 말을 건네니 "살다 보니 이런 일도 다 있네요."라며 오히려 유쾌하게 받아주셨다. 장터에서 찻집을 운영하고 있는데 가게가 물에 잠겨 쓸 수 있는 차 재료가 하나도 없다고 했다. 복구가 되고 나면 다시 새 마음으로 출발해야 할 것 같다며 웃었다. 또 자신의 가게보다 다른 상인들의 가게들을 걱정했다. 아마 모두가 힘들겠지만 사람들 덕분에 일어날 수 있을 거라며 오히려 걱정하는 나를 위로해 주셨다.     


 화개 장터의 유명 인사, 품바 각설이 선생님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가게 상황은 어떠신지요?"라고 여쭈니 "집기류가 다 휩쓸려 가서 쓸 만한 게 하나도 없어요. 새로 시작해야죠 뭐!"라며 웃으며 답하셨다. 하동군에서 힘을 많이 쓰고 있어 고맙고, 먼 길 찾아주는 자원봉사자분들이 정말 감사해 잊지 않겠다고 하셨다. 속상하다는 말보다는 감사하다는 말을 더 많이 들었다. 어찌 속상하지 않을 수 있을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마음을 직접 목격했기에, 감사하다는 말을 연신 반복하셨던 것 같다.      

  도톰한 코트를 입고 다음 해 2월, 다시 화개 장터를 찾았다. 타인을 돕고자 하는 사람들과 또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의 힘 덕분일까? 흙탕물이어서 가게를 분간하기 힘들었던 화개 장터엔 새 옷을 입은 가게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뭉클해졌다. 마음이 모인다는 건 이런 거구나. 마음의 위력을 체감했다. 상인회 회장님은 나를 기억해 주시고 반겨주시면서 이제라도 대접할 수 있어 다행이라며 따뜻한 녹차 한 잔을 내어주셨다. 그리고 당시 손길을 내밀었던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차 한잔 대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참 좋겠다고 계속 강조하셨다.


  푸릇한 여름이 찾아올 때마다 2020년 화개 장터의 여름이 생각난다. 땀을 뻘뻘 흘리며 물을 퍼내는 자원봉사자들, 그들에게 고맙다며 냉수를 건네는 화개 장터 사람들, 또 마을 한 켠에 수북하게 쌓인 구호물품까지. 햇볕이 따가울 정도로 무더워도, 비가 매섭게 몰아치는 여름이어도 화개장터의 여름을 생각하면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들어 마냥 두렵지 않다. 보고 지나치지 않는 마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려고 애쓰는 마음이 어딘가에는 있으니까. 지금 난 어떤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지, 내 마음의 크기는 커졌는지 살펴본다. 내 마음도 옆을 살필 줄 알길, 더디더라도 조금씩 커가길 바라는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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