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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 Jul 05. 2023

나의 구(舊) 오빠에게

* 2022년 9월에 작성한 편지입니다.


오빠, 안녕하세요. 환절기인데 건강은 잘 챙기고 있죠? 천식은 괜찮아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몇 년 전에 칩거하면서 지낸다는 소식을 접했는데 오랜만에 찾아보니 5년 만에 스크린으로 복귀를 하신다고요. 복귀 준비하느라 바쁜 나날이겠네요.

      

오빠를 잊기로 한 지 어느덧 6년이에요. 결심한 지 6개월도 아니고 6년이나 지났으면 완전히 잊힐 만도 한데 종종 생각이 나요. 요즘은 오빠가 동방신기로 활동할 때 발표한 4집 앨범에 자주 손이 가요. 가을 색이 가장 강한 앨범이잖아요. <노을을.. 바라보다> 이 노래 들으면서 퇴근길 노을을 바라보면 가을이구나 새삼 깨달아요. 그리고 이 앨범에 오빠가 작사 작곡한 노래 <사랑 안녕 사랑>도 빼놓을 수 없죠. ‘추억의 빛깔이 바래졌을 때 모두 흐려졌을 때 그때 사랑의 맘을 닫아볼게.’라는 가사는 지금도 또렷하게 외우고 있어요. 가을 사랑은 왠지 아리고 슬픈 느낌이 드는데 그 감성을 이 노래가 잘 담아냈다고 생각해요. 그 당시 어떤 열애설이 떠도 우리 오빠는 우리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친구들에게 철벽 방어를 했는데 돌아보면 그때 오빠가 연애를 했기 때문에 이런 노래와 가사가 나올 수 있었던 거겠죠.      


오빠는 데뷔 때부터 넘사벽 캐릭터였어요. 우선 이름부터 완벽해요. 유천. 이름만 들어도 피부가 뽀얀 사람일 것 같고, 다정다감할 것 같고. 그래서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이름. 지금까지도 오빠의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이름은 만나지 못했어요. 이름 이상으로 오빠는 살갑고 다정한 이미지로 우리에게 다가왔죠. 그리고 우리 마음을 잘 흔들어놨어요. 특히 오빠가 시상식에서 눈물을 흘릴 때면 팬카페는 뜨거워졌어요. 오빠의 눈물이 헛되지 않게 더 열심히 앨범을 사야 한다, 투표해야 한다며 서로를 부추겼죠. 아직도 오빠가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고 동생 이름을 부르며 울던 모습은 잊히지 않아요. 오빠는 연기도 잘했죠. 제가 감히 평가할 위치는 아닙니다만 다른 아이돌 출신과 달랐어요. 보는 우리가 부끄럽지 않았으니까요. 심지어 대중의 평가도 좋았어요. <성균관 스캔들>, <옥탑방 왕세자>를 보고 오빠에게 입덕한 사람들도 많았다고 하니까요.    

 

오빠를 처음 만난 순간을 잊지 못해요.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 즈음이었어요. 앞집 언니랑 인기 가요를 보고 있었는데 환한 미소로 ‘꿈속의 괴물도 이겨내 버릴 텐데’라는 오빠의 노랫말에 우리는 푹 빠지고 말았죠. 그 이후로 오빠는 제 우주가 됐어요. 모든 삶이 오빠 위주로 돌아갔으니까요. 오빠가 영어를 잘하니 나도 영어를 잘해야겠다 싶어 영어 공부도 열심히 했고 영어학원에서 쓰던 제 영어 이름은 언제나 ‘믹키’였어요. 오빠를 가까이에서 보려면 방송국을 다녀야겠다는 생각에 방송국 직원이 되겠다는 확고한 꿈을 가지게 됐고요. 오빠가 광고하는 MP3도 부모님께 졸라 구매를 했어요. 그 MP3에는 오빠 노래가 대부분이었어요. 라디오에서 스쳐 지나가듯 부른 노래, 콘서트에서만 부른 노래들도 물론 다 담겨 있었고요. 오빠가 예능 프로그램에 입고 나왔던 필라 트레이닝복은 제 일상복이었고 필통은 오빠 얼굴로 도배되어 있었고 가방에는 당연히 오빠 이름표가 붙어있었습니다. 비 오는 날이면 팬클럽 공식 우비를 입고 등교했고 월드컵엔 오빠 얼굴이 담긴 동방의 투혼 티셔츠를 입고 응원했어요. 공부하다가 힘든 순간이 찾아오면 ‘다섯 번(동방신기 멤버가 다섯 명이어서)’만 더 해보자, 5초만, 5분만 더 힘내보자며 그렇게 다섯에 의미를 뒀어요. 성인이 된 지금도 오빠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어요. 어린 시절 만든 각종 아이디와 비밀번호엔 오빠의 이름, 오빠의 생년월일이 녹여져 있으니까요.     


사회면에서 오빠를 마주하면서 제 학창 시절은 무너졌습니다. 처음엔 믿지 못했어요. 어느 인터뷰에서나 ‘딸 바보’가 되고 싶다고 말했고 어머니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기 때문에 성인지 감수성이 남다를 거라 기대했습니다. 제 기대, 아니 우리 팬들의 기대였어요. 성폭력 혐의로 기사가 나다니. 추후에 증거불충분으로 오빠는 결국 무혐의를 받았지만 마음을 되돌리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그 사건이 10년 이상 이어온 제 첫사랑이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릴 만큼 강력했으니까요. 그렇게 우리 관계는 끝났습니다.     


처음엔 오빠를 상당히 원망했습니다. 오빠의 노래에, 연기에 즐거워했던 소녀가 안쓰럽더라고요. 제법 긴 시간 힘들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학창 시절이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오빠와의 흔적을 지우면 학창 시절 절반 이상이 지워져 버리는 거니까 속상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자책도 했습니다. 나는 사람 보는 눈이 없나? 제 안목에 대해 불신했던 시절도 있었어요. 과연 이게 저뿐일까요?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상당한 팬덤을 자랑했던 오빠의 팬 가운데 상처받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시간이 흐를수록 오빠를 사랑한 건 죄가 아니라는 게 확고해졌어요. 전 스크린에 비친 한없이 다정하고 좋은 사람인 오빠를 좋아했던 거예요. 스크린 밖의 오빠는 나와 같은 ‘사람’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그렇다고 상처가 말끔히 나은 건 아니고요, 오빠를 좋아하는 것도 아닙니다. 아주 가끔 오빠 노래를 들어요. 노래를 듣다 보면 오빠를 진정으로 좋아했던 제 모습이 나타나요. 당시 오빠가 입고 나온 옷, 헤어스타일을 떠올리며 노래를 조용히 즐기죠. 그리고 다시 고이 접고 접어 마음 깊숙이 넣어둡니다.     


날이 제법 쌀쌀합니다. 오빠를 잊었다고 믿는데도 찬 바람이 불면 오빠 건강이 우려돼요. 아무리 미워하겠다고 해도 제 곁엔 스크린 속의 오빠가 남아 있나 봐요. 그러니 오빠 앞으로 건강한 생각만 하며 지내주세요. 오빠가 건강하게만 지내줘도 소녀들은 더 이상 상처 입지 않아요. 그 시절 소녀들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주셔야 해요. 그리고 후배들을 만나게 된다면 소녀, 소년들에게는 실수하지 않는 게 맞는 거라고 진심 어린 당부를 해주면 좋겠습니다. 그럼 이만 글을 줄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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