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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라 Oct 25. 2024

작가의 탄생

<문학나무> 2024년 겨울호 발표작 [사대성인 소설-그리스도편 3]

  J의 부모는 빵 장수였다. 그들이 만든 빵은 기막히게 맛있었다. 그 맛을 본 사람은 누구나 단골이 되었고, 천상의 빵이라 불리면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빵 장사로 살림은 넉넉해졌지만 부모는 언제나 바빴다. 빵이 널려 있는 집에서 J는 배가 불렀지만 마음은 늘 허전했다. 아무리 맛있는 빵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구멍이 가슴에 뚫려 있었다. 열두 번째 생일날, 극심한 허기를 느낀 그는 빵을 잡히는 대로 입에 넣다가 급체로 사망했다.

  다음 생에 그는 마법사의 딸로 태어났다. 대마법사였던 어머니는 그에게 어려서부터 각종 마법을 가르쳤다. 머리가 좋고 손이 빨랐던 그는 금세 어머니만큼 뛰어난 마법사가 되었다. 그는 기적 같은 능력으로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병든 몸을 낫게 해주었다. 사람들은 그를 하늘이 내린 마법사로 칭송하며 추앙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그의 권능을 시기한 어둠의 마법사가 있었다. 두 마법사는 대마법사의 자리를 놓고 절벽에서 시합을 벌이다 동시에 실족사했다.

  그다음 생에 그는 왕자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에게 예언자의 말을 전했다. 그가 왕궁에 머물면 천하의 모든 것을 갖게 되고, 집을 떠나면 모든 권세를 잃 된다는 것이었다. 길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왕궁은 하나의 완벽한 세계였기에 그는 궁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 그는 왕위에 올랐고 아들까지 얻으며 예언대로 모든 권세의 화신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 아들과 함께 난생처음 사대문에 놀러 간 그는 이상한 사람들을 보았다. 늙은 자, 병든 자, 죽은 자였다. 그 모습에 정신이 팔린 그는 아들의 손을 놓쳤고 아이는 행방불명되었다. 그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왕궁 밖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다음 생에 그는 허름한 마구간에서 태어났는데, 이는 그가 자처한 일이었다. 가진 것이 많았던 전생의 부모들로 인해 죽음을 맞이했던 그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자유의 몸이 되고 싶었다. 사생아로 태어나 친부가 누군지도 몰랐다. 그의 어머니는 타지에서 강간을 당해 그를 임신했다. 나사렛의 목수였던 새아버지는 늙고 병들어 몸조차 가누지 못했다. 어머니가 남의 집 허드렛일을 해주며 얻어오는 빵으로 입에 풀칠을 했다. 어머니는 J만 보면 그를 임신한 날의 악몽이 떠오른다며 아들을 구박했다. 새아버지는 애초부터 그를 자식으로 여기지 않았다.

  는 늘 빵에 굶주렸고 허기에 시달렸다. 빵 장수 집에서 살던 시절이 그립기도 했다. 유능했던 전전생의 어머니와 모든 것이 넘쳐났던 전생의 삶도 생각났다. 전생의 기억들은 방금 깬 꿈처럼 생생했지만 지금 여기는 왕궁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현생을 다시 짓기로 했다. 지옥 같은 현실을 천국으로 바꾸는 방법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는 빵도 능력도 사랑도 없는 부모의 집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갔다. 그곳에 작은 집을 짓고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말재주가 뛰어났던 그는 입담으로 빵을 벌 수 있었다. 그의 말에는 힘이 있었고 이야기는 재미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말이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몸을 일으킨다는 데 놀랐다. 그가 입을 열면 오두막이 왕궁처럼 빛났고 모두가 왕이 된 것 같았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집에 모여들었고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는 오늘도 자신의 탄생에 대한 일화로 말문을 열었다.

  “저는 지상에 아버지가 없습니다. 천상의 말씀으로 잉태됐거든요. 네, 그렇습니다. 제 아버지는 인간이 아니라 ‘말’입니다. 아버지인 말씀은 저에게 땅으로 내려가 세상을 경험해 보라고 했죠. 언젠가 광야에 머물렀을 땐 악마가 나타나 저를 유혹하기도 했습니다. 빵과 마법과 권세를 줄 테니 말을 포기하라고요. 하지만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빵이든 마법이든 권세든 전부 말로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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