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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 Mar 17. 2024

오십 살 먹은 사람도 인생을 모른다

스물한 살의 내가 보기엔 말이야

사람이 쉰 살쯤 됐으면 인생의 진리를 깨달을 줄 알았다. 각자 삶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자신의 조언이 무조건적으로 적용되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알 줄 알았다. 오판이었다.


20대 초중반 서너 명과 쉰 살쯤 되어 보이는 분과 모이는 자리가 있었다. 번민의 절정을 지나고 있는 나는 막내로서 그분들께 조언을 구했으나 남은 건 상처였다. 예시를 들어보겠다.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야.‘

‘세상에 비슷한 사람은 없어.’


정반대의 명제지만 모두 진리로 통용되곤 한다. 내가 둘 중 어느 말을 꺼내도 반박을 당했다. 자꾸만 내가 알고 있는 게 틀렸다고 했다. 그분들은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나는 틀리고 그분들이 맞겠거니 하며 열정적으로 조언을 받아들이려 했으나, 어이없게도 집에 오는 길에 눈물을 쏟고 말았다.



또는 이런 경우도 있었다. 서로를 모르는 20대 중반의 어떤 지인과 30대 초반의 어떤 지인에게서 비슷한 모습을 보았다. 내가 불안해서 힘들다고 얘기를 하니, 왜인지 자신들이 불안하고 힘들었던 시기에 대한 얘기로 이어졌다. 그걸 들은 나의 솔직한 반응은, “왜 이렇게 미성숙하시지?”였다.


나보다 인생 경험이 많으신 분들이니, 당연히 따로 어떤 이유가 있어서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걸 거라고 생각했는데, 심리상담 때 이 얘기를 하니 선생님께서는 각자 미성숙한 부분이 있는 거라고 얘기를 해주셨다.


내가 성숙하다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누구나 약점이 있고, 성숙하지 못한 모습이 있었다. 50년을 산 사람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그 사람은 내게 생각을 멈추라고, 불안에 맞서 싸우라는 조언을 했다.


그러나 난, 강박사고와 불안장애로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받고 있다. 그 사람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나에게 그런 어이없는(?) 조언을 했다. 아마 그 사람은 강박과 불안으로 인해 치료받은 경험이 없을 거다. 처음에는 생각을 줄이지 못하고 두려워서 망설이는 나의 노력 부족이라고 생각했지만, 상담선생님께서는 능력 부족이라고 하셨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글이 조금 난잡한데, 핵심은 이것이다.

타인은 절대 나보다 내 삶에 대해 잘 알 수 없다.


같은 우울증에 걸린 사람도 그 정도와 양상이 아주 다르다. 그렇기에 정신질환이나 심리와 관련된 조언은 (사실 대부분의 것들이 심리와 관련되어 있지만) 매우 조심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도 생각하면 화가 날 정도로 날 배려하지 않은 조언들을 많이 들었다. 이제는 그 조언들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 말들로 인해 날 의심하고 또 의심했던 시간이 아깝다.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는 기억이 있다. 내가 무언가를 너무 단정 지어서 생각한다, 내가 선민의식에 빠져있다,라는 조언 겸 평가를 받은 적이 있다.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한 말에 대해 신경 쓰고 싶지 않지만 아직은 참 어렵다. 반박할 말들이 뇌를 가득 메우지만, 그 사람에게 전달하지 않기로 했다. 이 글에서라도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만, 내가 받은 그 평가는 사실이 아니니까, 이번엔 참아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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