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언어구사자가 되는 길
(들어가기 전, 재능은 자랑거리가 아니며,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함을 밝힙니다. 하이퍼링크를 눌러 이전 글을 참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누구나 재능이 하나씩은 있다고 믿는다.
운이 좋게도 나는 내가 언어에 재능이 있다는 걸 10대 후반에 알게 되었다.
어릴 적 말이 빨리 트이진 않았지만 굉장히 정확했으며, 초등학교 시절 받아쓰기에서 늘 90점 이상을 받았다. 스무 살인 현재까지 영어로 하는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던 적이 없다.
내가 어떻게 이 재능을 발굴하여 유지하고 향상해 실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지 소개해보겠다.
이 글에 커다란 메시지라던가 교훈이라거나 하는 건 없다. 그냥 이런 사람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요즘 ‘영유’ 붐이 일고 있다고 한다. ‘영유’는 ‘영어 유치원’의 줄임말로, 이게 필수인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필자는 알파벳만 간단히 아는 상태로 6세에 영어 유치원에 들어갔다. 영어를 잘 모르는 아이들도 무난히 영어를 배울 수 있도록 파닉스부터 차근차근 진도를 나갔지만, 동시에 모든 의사소통은 영어로 진행되었다.
어린 나이에 외국어를 접하는 것 자체는 방식과 분량이 적절하다면 실이 될 건 없다고 본다.
7세 때는 이사를 가며 조금 더 전문적인 영어 유치원으로 옮겼다. 영어권 아이들이 사용하는 교재를 사용했고 교육과정까지도 거의 일치했던 것 같다. 영어권 국가에서는 기본 단어이지만 현재 한국 수능에서는 각주로 주어지는 고난도의 단어들 (ex. omnivore 잡식 동물, herbivore 초식 동물)을 배웠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똑같은 영어 유치원에서 방과 후에 학원처럼 수업을 듣긴 했지만 필자의 수준과 맞지 않는 어려운 수업 때문에 몇 달 만에 뛰쳐나왔다.)
9세 때는 1:1 과외를 받았다. 영어로 진행되는, 주입식의 반대선상에 있는 수업이었지만 참 재미없었다. 유치원생 시절 역시 영어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았었는데, 이때부터 학습에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그래도 하는 게 맞으니까 했다.
처음으로 영어 학원에 다녔던 10세 시절. 나는 내 언어적 재능이 잘 발휘된 것이 부모님의 탁월한 학원 선택 덕이 크다고 생각한다. 이챕터스(E-Chapters)라는 학원이었다.
매주 원서를 한 권씩 읽고, 퀴즈를 풀고, 독후감을 작성한 후 선생님과 책에 대한 얘기를 하며 이해도를 확인했다. 매주 단어 시험도 있었으며 모든 과정은 영어로만 진행됐다. 나는 그 학원을 너무너무 싫어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면 언어를 배우기에 참 좋은 방법이었다.
11~13세 때는 처음으로 단체 수업을 하는 학원에 다녔다. 학원명을 숨길 이유를 모르겠으니 공개해 버리자면 분당에 있는 아카데미아(Akademia)라는 곳이었다. 반이 총 6개였는데 나는 밑에서 두 번째 반이었다.
지겹게 읽어온 원서를 또 읽어야 했다. 에세이도 쓰고, 프로젝트도 하고, 원서 읽고 문제 풀고.. 역시 모든 과정은 영어로 진행되었다.
영어로 인해 큰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 시기이다. 숙제를 하기가 그렇게 싫어서 미루다가 스트레스받고, 회피하며 또 미루고..
당시 읽었던 원서들은 다음과 같다.
12세 때 네덜란드어에 푹 빠졌고 이는 14세까지 이어졌다. 영어와 너무나도 다른 그 언어에 완전히 매료되어 하루종일 네덜란드어 노래만 듣곤 했다. 결국 14세 때 엄마의 설득에 넘어가 과외로 독일어(네덜란드어와 매우 유사함)를 배웠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당위성이 붙는 순간 이전과 같은 즐거움을 느낄 수는 없으리라. 꾸역꾸역 학교 공부와 병행하다 16세 초에 독일어 자격증을 땄다.
14세… 대치동에서 처음 주입식 학원(DYB)에 다녔다. 학교 내신을 챙기려면 어쩔 수 없었다. 나의 언어 인생에 있어 진정한 암흑기가 시작되었다.
3인칭 단수 동사에 ‘s’가 붙는다는 걸 처음 알았다. ’관계대명사‘, ’동명사‘, ’도치‘ 모두 처음 들어보는 단어들이었다. 자연스럽게 사용하던 개념들이 언어로 변환되어 날카롭게 내 뇌를 찔렀다.
심지어는 주어, 동사, 목적어, 보어 모두 낯설었다. 그런 거 몰라도 자연스럽게 영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늘 영어로 영어를 배워왔으니까.
한국어로 영어를 배우는 건, 내게 있어 영어를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것과 같았다. 일대일 보충 시간에 선생님 앞에서 울었던 기억이 선하다.
(노트 필기를 할 때 영어를 가끔씩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국어보다 영어로 표현할 때 훨씬 요약해서 쓸 수 있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내게 있어 영어가 조금씩 외국어에서 모국어 쪽으로 변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학교 내내 내신은 완벽했다. 모든 문장과 문법 규칙을 달달 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16세 때 학원에서 어쩌다 보니 가장 높은 반에 오르면서 역설적으로 영어에 대한 내 자신감은 바닥을 찍었다. 고2, 고3 모의고사를 보면 나는 늘 3~4등급이었던 반면 같은 반에는 100점을 맞는 친구들도 많았다.
학원에서는 일부러 고난도의 문제들만 가져다주었고, 나는 내가 영어를 정말 못하는 줄 알았다. 영어가 너무 싫었다.
그러다 고등학교 입학 직전, 성장은 계단식이라는 걸 실감하게 된 계기가 생겼다.
2020년 2월에 고등학교 2학년 모의고사에서 97점을 받은 이후, 사설 모의고사를 포함한 대부분의 모의고사에서 1등급을 받았고 내신 역시 2등급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
고등학생 때부터 나는 ‘언어’라는 것과 사랑에 빠졌고 한마디로 ‘날아다녔다’. 대학 입시를 하는 와중에도 ‘듀오링고’를 깔아 독일어를 공부했다. 해야 해서가 아니라 하고 싶었다.
언어학을 본격적으로 독학하며 더욱 빠져들었고, 별로 공부를 하지 않아도 모의고사와 내신 점수가 잘 나왔으며, 언어를 교환하는 앱을 몇 년 간 애용하며 좋은 인연들도 많이 만났다. 그들과 얘기하는 틈틈이 받았던 영어 실력에 대한 칭찬은 꿀보다도 달콤해서 일일이 캡처를 해두곤 했다.
또한 일상생활에서 영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재수 없어 보일까 봐 정말 친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사용했다.) 호주에 여행을 갔을 때는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었고, 외국인 친구를 만나 몇 시간 동안 대학수학 얘기를 하기도 했다. 올해 초에는 독일 친구와 며칠을 같이 먹고 자며 서울을 여행하기도 했다.
요약해 보자.
나의 언어적 재능이 발휘될 수 있었던 건
하기 싫어도 참고 공부하게 한 인내심
+ 언어에 대한 흥미
+ 부모님의 탁월한 학원 선택 (주입식 X)
+ 부담 없이 영어에 노출될 수 있는 환경 (유아기)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영어라는 과목을 싫어한 적은 있어도 외국어로서 그걸 구사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은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영어를 처음 배웠을 때부터 14세 때까지 늘 주기적으로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17세 때부터 혼자 영어를 공부하며 그 흐름을 이어갔고,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 흐름이 끊기지 않는 것.
감사하게도 타고난 이 재능에 당당해지기 위해 지금까지 해왔듯이 열심히 공부할 것이다. 운이 좋아서 거둔 성취가 아니라, 내 노력으로 얻은 결과임을 증명하고 싶다.
늘 수능 영어 1등급을 받는 친구들도 영어로 한 문장 말하기를 어려워하는, 이 한국 영어교육의 거대한 구멍을 어떻게 메꿀 수 있을까. 하나 확실한 건 미취학 아동에게 뭐든 과한 건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 나이에 수준에 맞지 않는 과도한 선행 교육을 받으면 고등학생이 되기도 전에 번아웃에 빠질 것이다.
유창하게 외국어를 구사하는 아이로 양육하고 싶다면 부디 유치원생,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주입식 교육을 하지 마세요.. 언어에 흥미를 느끼고 훗날 성과를 거두는 걸 막을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요.
그러나 오직 학교 성적에만 목숨을 거실 거라면 괜찮을지도요.
솔직히 다 쓰고 보니 이 글이 말하려는 바가 뭔지를 모르겠다. 그래도 아까우니 올립니다. 하나의 사례라고 생각해 주세요. 비판하고 싶으시다면 환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