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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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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갈린 찹쌀가루처럼...

흩어져 나부끼는 나의 멘탈...

1교시 체육시간.

남, 여 각 세 팀씩 나누어주고 컬링게임을 했다.

바퀴 달린 스톤을 밀어 하우스에 안착시키는 경쟁형 게임.

스포츠강사선생님은 남자팀 경기진행을 봐주시고 나는 여자팀 경기진행을 봐주었는데...

강이의 낌새가 심상치 않다.

첫 게임에서는 투덜거림에서 그쳤는데 두 번째 게임에서는 스톤을 주우러 와서 발길질을 한다.

발길질하는 강이에게 다가가

"마음처럼 굴러가지 않지? 아유 속상하겠다. 근데 오늘 처음 해본 거잖아. 잘 안 되는 게 당연하지. 마음 다스려보자~"하고 토닥여주고 다시 여자팀으로 빠르게 이동하여 곁눈질 시작~

다른 두 팀이 경기하는 동안 한 박자 쉬면서 마음을 달랬나 싶었는데 세 번째 경기에서 스톤을 출발시킨 후 원하는 위치로 가지 않자 으앙! 울음을 터트리며 분노 대폭발!

"삐빅~ 삐비비비빅~ 발로 차버릴라. 삐빅~ 삐비비빅"

<선재 업고 튀어> 6화에서 길거리 야구응원하다 눈에 하트 뿅뿅 터진 선재가 솔이 손 잡고 달려 나가 고백한 장면처럼.. 나는 얼른 뛰어가 강이 손을 잡고 단 둘만 있을 수 있는 복도로 나왔다.

선재와 솔이의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었으나 나의 모습은 흡사 똥 마려운 강아지...

그 후 복도에서도 계속되는 삐비빅~

'다행이다. 이 아이의 고백을 나 혼자 들어도 되니..'

손잡고 복도를 왔다 갔다 하는데 그의 기분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듣다 보니 나의 기분도 점점 얼룩지고, 분위기를 바꾸어보려 애써 건넨 모든 말을 튕겨내는 단단한 그의 멧집..


그렇게 1교시가 끝나고 교실로 돌아왔는데 아뿔싸.. 2교시가 수학이다!

이 감정 상태로 수학을 공부하다 다시 활화산 같은 분노를 볼 수 있기에 2교시는 허튼소리로 시작한다.

"선생님이 살면서 선생님보다 달리기를 못하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는데.. "로 시작해서 교생실습 때 담임선생님이 오로지 관상만 보고 나를 운동회 교생계주선수로 뽑으셨던 일, 마다하는 내 말을 믿지 않으시고 계주를 시키셨다가 예행연습 때 전교의 교생에게 웃음을 준 후 선수 교체되었던 이야기, 체육에 그쳐야 마땅했건만 음악적 소양도 없어서 어느 민요교수님께 F를 받은 일..

나의 바닥을 기꺼이 드러내면서 바닥을 기어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를 피력하며 궤도를 이탈한 강이의 기분이 정상궤도에 안착할 때까지 주접을 이어나갔다.  


나의 노력이 가상했던 것일까.. 2교시 40분 중 30분의 시간이 주접으로 채워졌을 때 드디어 강이의 기분이 풀렸고 나는 10분의 짧은 수학시간 뒤 3교시 영어 선생님께 아이들을 무사히 인수인계할 수 있었다. 영어실에 보내기 전 강이에게 기분이 안 좋으면 언제든 다시 교실로 오라고 했으나 그는 무사히 한 시간을 견뎌주었고 잠시 숨 돌릴 시간을 가진 나는 이제 그를 교육시키기 위해 캐비닛에 보관해 둔 보드게임 6종을 꺼냈다.


4교시 과학 단원마무리를 10분 만에 끝내고 강이의 회복탄력성을 위해 모둠별 보드게임 시간을 가졌다.

6종의 보드게임을 모둠별로 나눠주고 5분씩 돌아가면서 놀면서 이겨도 그만, 져도 그만 한 번씩 놀이해 보는 시간..

나는 강이모둠에 딱 붙어 왕할머니가 손주재롱 보듯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아이고 아쉽네. 괜찮아 그만하면 잘했어"를 연발하며 그의 멘털을 관리해주고 있는데..

아뿔싸.. 어느 모둠에서 다른 아이가 소리 지른다.

"에이~ 신발!!!" (대체할 단어를 찾다 보니 이렇습니다..)


5교시는 음악선생님께 인수인계하면 되는 시간이었는데 강이를 비롯한 다른 아이들을 음악실로 보내고 나는 신발을 외친 똥만이와 긴 대화를 시작해야만 했다.(똥만이 에피소드는 다음에..)


아.. 오늘 영어, 음악 시간 있다고 좋아했는데.. 찹쌀가루처럼 곱게 갈린 나의 멘...

그 옛날 엄마심부름으로 찹쌀을 들고 방앗간에 가면 기계에서 여러 번에 걸쳐 갈리면서 종국에는 곱고 부드럽게 갈리던 그 찹쌀가루.. 처럼 희고 고와졌으니 이제 반죽되어 프라이팬에 지져질 단계인가? 그렇게 지져서 꿀 찍어먹으면 참 맛있는데.. 힘들 때 내색 않고 찹쌀부침개를 기억하며 입맛 다시는 내가 진정 일류교사구나... 그렇게 스스로를 보듬으며 감사한 마음으로 급식을 먹었다.


드디어 하교시간..

수업시간에 신발을 외친 위풍당당한 똥만이가 묻는다

"선생님 보드게임 좀 더하고 가도 돼요?"

"그래 그럼 좀 더 하고 가"

"강아! 우리 같이 하자"

똥만이는 강이와 함께 신나게 보드게임을 20분간 했고 그들은 신이 났는지 목소리에 힘이 가득하다.

"얘들아.. 오늘 너네 따로 지도한다고 선생님이 몹시도 지쳤는데 좀 조용히 놀았으면 좋겠네.."라고 말하면서 보니 강이의 ootd와 나의 ootd가 비슷하다.


아.. 솔이의 쿨톤이 부러워 민트색 바지를 입고 왔는데 어쩜 그도 민트색 바지를 입고 왔을까? 이 정도면 우리 운명 아닌가? 운명이 뜯어말리지 않으니 계속 그를 키우고 가르쳐야겠지?

사진은...

그가 기꺼이 선생님에게 본인의 초상권을 허용하겠으니 앞을 보고 찍자 했으나 내가 안된다고 뒤로 찍자고 한 우리의 커플룩...

(지금보니 솔이의 민트는 쿨톤착붙인 연한 민트, 마치 메로나색이고 우리의 민트는 누르스름한 내 피부도, 까무잡잡한 강이 피부도 살려주는 옥색같네..)


마지막은.. 스승의 날 다음날 강이가 준 편지...

강아.. 이 편지 덕분에 찹쌀가루처럼 흩날리던 선생님의 멘탈을 다시 부여잡을 수 있었어.. 근데 솔직히 오늘 좀 힘들더라.. 너 지금 크고 있는 거 맞지? 쑥쑥 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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