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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금 Dec 29. 2023

추운 겨울에 느낀 봄날의 따스한 햇살

최은영, 장편 소설 <밝은 밤> 읽고


내가 당신한테 도망가자 했시까, 내가 당신 부모 저버리라 했시까, 내가 당신보고 혼인하자 했시까. 기린데 왜 내를 일평생 입 닥치고 살게 했시까? 내 죄가 뭐인데. 백정네 딸로 태어난 게 죄라면 내 죄를 죄로 두지 기랬어요. 우리 영옥이, 내 살 같은 영옥이를 쥐 잡듯이 잡고 화풀이하고 이렇게 다친 아이를 말로 두드려 팰 거면, 이 꼴을 내 눈으로 보게 할 거면, 내를 기냥 삼천에 내버려두지 기랬어요.
                                                                                                              - <밝은 밤> 중 -


책에는 소가 여물 씹듯이 몇 번이고 다시 되새김질해야 소화가 되는 책이 있고, 한편 국밥을 먹듯이 후루룩후루룩 먹어도 속이 든든한 책이 있다. <밝은 밤>은 정확히 후자에 해당하는 책이었다. 머리로 이해하는 책이 아닌 내 마음을 읽는 듯한 그런 책. 한 구절 한 구절을 꼼꼼히 읽으려 애를 쓰지 않아도 마음에 먼저 스며들어 왜 눈물이 나는지도 모르게 울고 있는 그런 책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나의 솔직한 마음을 마주할 수 있었고, 주인공들에게 위로를 건네며 비로소 나 자신도 위로할 수 있었다.      




<밝은 밤>은 주인공 지연이와 엄마, 할머니와 증조할머니의 4대를 다룬 이야기이다. 서사는 현재와 과거 두 개의 축으로 나뉘어 전개되는데, 현재는 지연이와 엄마의 갈등을, 과거는 할머니가 지연이에게 이야기하는 할머니의 유년 시절을 주로 다룬다. 네 명의 인물은 모두 다른 시간에 살았지만, 세대를 뛰어넘어 어떤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그것은 버림받은 경험이다. 소중한 존재로부터 거부당하고 내쳐지는 경험. 그 경험은 각기 다른 모양으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었다.


증조할머니 삼천은 백정의 딸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했고, 시댁 식구들에게는 홀대받았다. 할머니 영옥은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엄마 미선은 북으로 떠나 버린 아버지로 인해 결혼 생활 내내 당당하지 못했고 늘 위축된 삶을 살았다. 지연이는 언니의 죽음으로 좋은 딸이 되어야 하는 부담감을 안고 살았고, 남편의 외도와 그럼에도 용서를 빌지 않은 뻔뻔한 태도로 이혼을 한 상태였다. 그들은 소중한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경험으로 인해 상처받았고, 타인에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그 노력의 방향이 자신의 마음을 속이는 방향일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밝은 밤>은 상처만을 이야기하는 책은 아니다. 상처와 치유를 모두 이야기하기 때문에 그들을 아무런 이유 없이 아껴주고 보듬어 주는 존재들도 등장한다. 백정의 딸이라며 사람들에게 외면받고 손가락질받던 삼천에게 유일한 친구가 되어주던 새비. 따뜻한 눈빛과 말투로 영옥의 이름을 불러주고 영옥만의 장점을 발견해 주던 새비 아저씨. 무뚝뚝하지만 피난 온 영옥네에게 선뜻 살 공간을 내어 주고 영옥이에게 재봉틀 기술을 알려주던 정 많은 명숙 할머니까지.


영옥은 새비 아저씨를 설명할 때마다 늘 '해 같은 존재'라고 말하곤 한다. '해 같은 존재'가 무엇일까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높고 빛나는 태양처럼 다가갈 수 없는 이상적인 존재라는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새비와 새비 아저씨, 명숙 할머니가 삼천과 영옥에게 보인 관심과 배려를 보면서 느낄 수 있었다. 해는 그들의 사랑의 형태임을. 정확히 말하면 봄날의 따뜻한 햇살 같은 형태임을.


뜨거운 뙤약도 아니고, 추운 겨울날의 한 줄기 빛도 아닌 봄날의 은근하고 따스한 햇볕. 강렬하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고, 아늑해 나른하게 잠이 올 것만 같은 그런 사랑. 내 주변을 은은하게 감싸고 있어 잠시 바람이 불어도 휘청거리지 않게 지켜줄 것만 같은 그런 사랑. 그들이 보여 준 사랑은 그런 사랑이었다. 그 사랑은 외롭고 서럽고 힘들고 가혹한 시기를 견딜 수 있게 도와주었고 그 사랑은 손녀인 지연에게까지 전해져 위로와 위안이 되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부터 극복할 수 없다고 믿었다. 사람에게 상처받은 경험이 많을수록 사람을 불신하게 되고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이 두려워 사람을 더욱 멀리하게 되니까. 대신 나는 사람 없이 우뚝 서고 싶었다. 나의 가치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절대적인 이유를 만들어 상처받을 일 없이 사람들에게 수용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을 이루어 내기 위해  스스로를 괴롭혔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마저도 잊어버리게 되었다. 나는 점점 사랑이라는 단어와 멀어졌다.


하지만 <밝은 밤>을 읽으면서 작은 희망의 불씨가 생겼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사람 간의 관계를 통해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그 희망의 밝기는 아직 약해 '밝은 밤'과 같다. 언젠가는 그 빛의 세기가 강해져 환한 아침이 되기를. 그리고 더욱 강해져 내 안에도 봄날의 햇살 같은 사랑이 넘실대기를. 그래서 누군가에게 '해 같은 존재'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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