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앙금 Feb 01. 2024

도전이 두려운 사람들에게



새는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고자 하는 이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데미안>의 유명한 구절인 이 말은 더 넓은 세계로 나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현존하는 세계를 깨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말이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회자되는 이유는 많은 사람이 더 넓은 세계로 뻗어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꿈꾸기 때문이고, 성장이나 발전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과정에 빗대어 직관적으로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이 말은 어떠한 명강사의 명강의보다 성장하는 방법을 간결하고 쉽게 가르쳐 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현존하는 세계를 파괴하는 행위, 바꾸어 말하면 현존하는 세계에 도전하는 것을 망설이고 두려워한다.      


우리가 파괴하는 행위를 섣불리 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파괴된 상태를 마주하는 것이 무섭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부서진 곳은 폐허에 불과한데, 생존에 필요한 크고 작은 물건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는 타인들이 모두 사라진 폐허에는 죽음만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파괴하는 것은 생에 대한 의지를 거스르는 행위이며, 파괴하는 행위를 할 때 죽음에 가까운 공포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파괴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 자들이 있다. 그들이 파괴하는 행위를 지속해서 시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죽음도 두렵지 않은 대담한 사람이기 때문일까. 혹은 삶에 대한 의지와 애정이 없는 메마르고 건조한 사람이기 때문일까. 화가들의 삶과 예술을 소개한 책, <방구석 미술관>을 통해 파괴하는 용기의 원천을 찾을 수 있었다.      


책에 소개된 화가들은 각기 다른 형태의 삶을 살았지만, 그들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파괴했다. ‘고흐’와 ‘폴 고갱’은 생계가 보장된 안정된 세계에서 벗어나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화가의 삶을 살았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클림트’는 국가가 요구하는 그림을 그리며 편안하게 살 수도 있었지만, ‘예술가가 보고 느끼는 진실을 자유롭게 표현’(p121)하겠다는 신념 하나로 자신만의 예술을 선보였다. ‘마네’는 신화와 역사적인 인물을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시대에 부르주아 남성들의 생활을 풍자하는 그림을 그려 당시 예술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세잔’은 유행처럼 번진 인상주의 화풍에서 한계점을 찾고 ‘조화와 균형’을 담을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두려워하듯 파괴에는 평화와 질서 대신 고난과 시련이 따랐다. ‘고흐’는 생전에 인정받지 못해 동생 테오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했으며, ‘폴 고갱’ 역시 오랜 무명 시절로 단 5프랑을 벌기 위해 벽보를 붙이는 등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전통적인 예술을 답습하는 것을 부정한 ‘클림트’와 ‘마네’는 당시 사람들의 비난과 악평을 받기도 했으며, <풀밭 위의 점심식사>라는 ‘마네’의 작품을 보고 당시 관객들은 ‘이 그림은 쓰레기다’라는 막말을 하기도 했다. 인상주의의 한계를 보완한 새로운 예술 철학을 만들겠다는 사명감을 가진 세잔 역시 29년 동안 고향에서 은둔하며 자연을 탐구했고 그림에만 골몰하는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고통과 어려움에도 그들은 파괴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파괴는 폐허이기도 하지만 그 폐허를 견디면 곧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는 믿음이 말이다. 자신의 세계인 알을 쪼아대는 새 역시 그 믿음이 없다면 알을 깰 수 없었을 것이다. 알 밖에 또 다른 세계에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자신의 세계를 망설이지 않고 파괴할 수 있었다. 결국 파괴하는 용기의 원천은 믿음이다. 파괴는 죽음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믿음.


우리는 파괴하는 행위에 대한 두려움을 기존의 세계를 파괴할 만큼의 능력과 권위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야수와 원시'라는 자신만의 화풍을 만든, 지금은 상상초월한 값어치로 판매되는 작품을 남긴 '폴 고갱' 역시 그림이 한 점도 팔리지 않던 무명 시절에는 자신의 용기와 재능을 의심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안정적인 삶을 보장하는 직업을 가질 때보다 화가로서 살아갈 때 그토록 바라던 세계를 만날 수 있다고 믿있었기에 힘들더라도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따라서 우리에게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능력과 권위를 갖추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파괴를 통해 통해 보게 될 새로운 세계에 대한 믿음. 그 믿음을 가지기 위해 상상력을 발휘해 보는 것이 어떨까. 내일 아침에 또 무슨 재밌는 일이 일어날까를 상상하며 즐거워하는 어린아이처럼, 알을 깨고 나온 뒤 눈앞에 펼쳐질 세계를 상상해 보는 것이 어떨까.




작가의 이전글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해 보시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