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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금 Jul 07. 2024

너만 그런 게 아니다. 우리 모두 그렇다.

그때의 어른들에게 듣고 싶었던 말, 이제야 듣게 된 말.

기쁨이의 착각

인사이드 아웃 2를 보고 끝내 울었다. 눈물만 주르륵 흘렸다면 좋았을 텐데. 소리 내어 울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줄줄 흐르는 콧물까지 닦아내느라 애를 먹었다. 눈물이 풍선처럼 '팡'하고 터진 장면은 후반부에 기쁨이가 ‘나는 좋은 사람이야’라는 신념을 뽑아내는 장면이었다. 기쁨이는 확신했다. 라일리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이유는 불안이가 만들어 낸 ‘난 부족해’라는 신념 때문이라고. 라일리가 원래대로 ‘나는 좋은 사람이야’라는 신념을 가진다면 괜찮아질 거라고.


하지만 기쁨이의 생각은 틀렸다. 불안이가 만든 신념이 뽑히고 좋은 기억으로만 이루어진 신념으로 교체되었지만, 라일리는 괜찮아지지 않았다. 이내 기쁨이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자신이 소중히 지켜낸 신념마저 뽑아 버린다. 그러자 한 가지 신념에 억눌렸던 수많은 생각들이 쏟아져 나온다. ‘나는 부족해’, ‘나는 이기적이야’, ‘나는 좋은 사람이야’ ‘나는 질투가 많아’ 등. 한 가지의 신념으로 규정지을 수 없는 다양하고 복잡한 생각들이 교차한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라일리의 공황 증세는 가라앉았다.


신념은 삶을 사는 데 꼭 필요하다. 망망대해 같은 인생에서 나침판처럼 방향을 제시해 주니까. 하지만 때론 신념이 독이 되기도 한다. ‘나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생각은 강박과 불안을 유발한다. 신념을 지키지 못할까 봐 매사에 걱정하고, 설령 실수를 저지르면 후회와 자책에 잠 못 이룬다. 라일리도 마찬가지였다. 나쁜 기억들은 모두 없애고 만든 ‘나는 좋은 사람이야’라는 신념은 라일리를 과도한 욕심으로 이끌었다. 욕심과 불안은 끝도 없이 불어나 결국 중요한 순간에 라일리를 곤경에 몰아넣었다. 기쁨이가 자발적으로 ‘나는 좋은 사람이야’라는 신념을 뽑아낸 건 그 신념이 라일리를 괴롭힌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를 괴롭히는 신념은

누구에게나 자신이 꼭 지키고 싶은 신념이 있다. 나 또한 어렸을 때부터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물론 이 신념은 내가 스스로 만든 것은 아니었다. 어른들은 친절하고 배려심 많은 언니를 항상 칭찬했다. 반면 주관이 확고하고 남보다는 자신을 먼저 챙기는 나를 이기적인 아이라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나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은 나쁜 사람이고, 언니처럼 타인을 먼저 챙기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굳게 박혔다.


나는 나쁜 아이가 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언니처럼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내 생각과 감정을 챙기기보다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먼저 살폈다. 무리한 부탁이라도 상대방이 원한다면 들어주려고 했고, 아무리 화가 나도 부정적인 감정을 비추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렇게 노력함에도 늘 자책과 후회가 뒤따랐다. 내가 잘못한 것들만 생각났다. 그때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조금만 배려했다면 갈등이 생기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끝도 없이 떠올랐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니 대인관계를 맺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설령 내가 나쁜 사람으로 인식될까봐 매사에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제야 듣게 되는 말

하지만 인사이드 아웃 2에서 그때의 어른들은 틀렸다고 이야기했다. 인간은 원래 다양한 생각을 하며 다채로운 감정을 느끼며 사는 존재라고 알려 주었다. 그것이 자연스럽고 지극히 당연하다고 말한다. 나에게는 그 말이 필요했다. 너만 그런 게 아니다. 우리 모두 그렇다. 이 말이. 때로는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도, 때로는 냉소적인 생각을 하기도, 때로는 슬픔에 젖어 있을 수도 있다고. 그래도 그것이 너의 전부가 아니며 그래도 너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해 주는 어른이 필요했다. 비로소 어른들이 옳지 않다고 규정했던 생각과 감정들을 숨겨야 한다는 강박에서 조금 자유로워졌다. 내 안의 다양한 면모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나다워질 수 있고, 나를 사랑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라일리는 선발전에서 어떤 결과를 받았을까.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결과이든 앞으로 임하는 자세가 더 중요하니까. 라일리가 마지막에 환하게 웃은 장면은 불안과 의심을 극복하고 자신감을 되찾는 모습을 보여 준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긍정한다면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잘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아마 모든 것이 한 번에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라일리 또한 그리고 이 영화를 본 모든 관객이 자주 무너지고 좌절할 것이다. 그래도 이런 메시지를 전하는 어른들이 이 세상에 있다면 위로받으며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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