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말하고, 엄마는 씁니다, 강진경 지음>을 읽고
p.16 저 어린 것을 두고 내가 세상을 떠난다는 생각만 하면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소은이가 있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아이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내가 함께 있어야 한다는 의지를 불태우자 차츰 옅어졌다. 엄마라는 이름은 나를 한없이 슬프게 만들었다가도, 결국 강력한 힘과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마법의 단어였다.
p.35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내일 죽는다고 해도, 죽음이 사무치게 슬프지 않으려면 오늘이 행복해야 한다. 해보고 싶었던 일, 꿈꾸고 소망했던 일이 있다면 미룰 이유가 없다. 우리의 삶은 유한하고, 시간은 우리를 기다러주지 않으니, 죽음이 찾아오기 전에 오늘이 마지막인 듯, 그렇에 매일을 행복하게 살면 되는 것이다.
p.267 내가 지금, 여기, 오늘 이 순간에 아이와 함께 숨 쉬고 살아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 세상의 모든 아픈 부모도 이런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아픈 엄마라는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고, 아픈 자신을 원망할 필요도 없다.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엄마, 아빠가 다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이 세상 최고의 엄마, 아빠니까. 나의 삶이 다 할 때까지 아이를 마음껏 사랑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이 책의 저자인 강진경 선생님은 소은이의 엄마로, 국어 선생님으로 지내던 어느날. 갑자기 암 환자가 되었다. 청천벽력같은 일이었겠지만, 암 환자가 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은 지 묻는 한 질문에 그녀는 아니라고 답한다. 분명, 인생의 큰 굴곡이고 상처가 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삶은 다시 되돌릴 수 없을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달라진 삶에 의미있는 순간들이 많이 찾아왔기 때문이라고.
삶을 살아가며 누구에게나 시련과 고난이 온다. 강진경 선생님은 아이와의 대화를 글로 적으며 아픈 몸과 마음을 치유함은 물론 소은이와 엄마가 주인공이 되는 책의 작가가 되었고, 하루하루 더 깊게 사랑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어린 자녀를 둔 엄마라면 모두 다 공감할 것이다. 나의 건강을 잃게 되는 충격보다, 우리 아이를 보살피지 못할까봐, 앞으로 아이가 홀로 남겨질 시간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슬픔이 앞선다는 것을. 나에겐 교통사고가 그랬다. 처음으로 진지하게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어느날 갑자기 떠나버린다면, 남겨진 우리 아이는 어떡하나- 교통 사고 이후로, 모든 하루하루가 애틋하고 소중해졌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일 다시 만나 인사 나누며,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더없이 귀하게 느껴졌다. 사랑을 아끼지 말자고. 아껴 사랑하며 살아가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막 꽃송이들이 봄을 알리며 피어나던 4월에, 나는 하루에도 수십번, 수백번 다짐 했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꽃 한송이를 꽃피우는 마음으로 보내겠다고. 소중하게, 예쁘게, 애틋하게, 귀하게. 노여워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고, 연연하지 말고 그저 내 몫의 꽃을 피우겠다고.
책을 읽는 동안 잊었던 옛 기억이 떠올라, 엄마로서 느끼는 마음이 공감되어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다시금 단단한 마음을 짓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최승자 시인의 <시간이 사각사각> 중에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
한 아름다운 결정체로서의
시간들이 있습니다.
사각사각 아름다운 설탕의 시간들
사각사각 아름다운 눈雪의 시간들
나는 시의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젊은 날의 나와 어린 우리 아이들이 떠오른다.
아이 덕분에 웃고, 울고, 힘내고, 지치고, 눈이 부신 하루를 보내면서도… 이 시간들은 설탕과 같고, 눈과 같아서 기록하지 않으면 이내 기억 속에서 사라지곤 만다.
엄마를 위해 붕붕 달리는 자동차가 아닌 보리차를 사주겠다는 소은이. 소은이의 말과 소은이의 시간이 책 속에 담겨 있고, 엄마와 나누었던 사랑이 녹지 않는 글자로 남아 있다. 아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날을, 엄마의 손을 빌러 기록으로 남겨주는 일은 귀하다. 우리는 누구나 ‘이야기’를 간직한 고유한 존재이기에, 이 이야기는 소은이의 삶에 큰 힘이 되리라고 믿는다.
분명, 아이는 더 잘 살아가고 싶은 삶의 용기와 힘이 되어준다. 기록하는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 지금 사랑하고 있는 것들을 사랑하며 오늘 하루에 충실하고 싶은 마음을 다시금 느꼈다.
그리고 태어났기에, 그 이유만으로도 귀한 아이들과 이 시간에도 고군분투하고 있을 ‘엄마’라는 이름을 단, 우리 모두를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하고 싶었다.
202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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