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세상의 명언들이 때로는 위험할 수 있음을 새삼 느낀다.
칼은 죄가 없지만 쓰는 이에 따라 사람을 이롭게 하기도 하고 해롭게 하기도 하듯이, 어떠한 말들을 충분히 고민하지 않고 현명하지 않게 받아들이면 때로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내게 그런 영향을 끼친 것 중에 하나는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너그러우라는 것이었는데, 나는 어린 시절 들은 이 말의 진정한 뜻을 알지 못하고 자신에겐 가혹했으며 남에게는 강박적으로 좋은 모습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이 습관은 당연스럽게도 나를 갉아 먹었다.
나는 내 자신의 어리석은 선택, 놓쳐버린 기회, 되돌릴 수 없는 실수에 대해 굉장히 가차없는 사람이었다.
20여년 전의 일까지도 꺼내어 나 자신을 몰아치는 데 썼다.
살인죄의 형량이 평균 7~10년 정도인 걸 생각하면, 나는 그저 평범한 한 인간인 내게 너무나 가혹하고 잔인했다.
돌이켜 보면, 내게 실수에 대해 너그러운 대처를 알려준 사람이 없어서 무지했기도 하거니와, 이것이 선이라는 무지한 믿음으로부터 비롯된 일이었다.
실수하면 잘못이고, 비난당하는 게 당연하다고 믿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럴 수 있지라고 말하고 금방 잊으면서, 나는 내 자신의 실수를 무엇 하나 용서한 적이 없었다.
실수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고문자 앞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점점 도전과 시도에 소극적이 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의 기질은 도전에 좋은 결과를 받지 못하고 그 벌을 평생 가하더라도, 소극적이나마 노력하기를 멈출 수 없었다.
나는 내가 그런 면에서 무척이나 용기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겁이 나고 무서워 울면서도 도전하기를 멈추지 않는 내 모습이 말이다.
굉장히 최근에 들어서 나는 실수에 대해 다르게 대처하려고 하는데, 이것이 누구에게 교육받아오며 하는 것도 아니고 익숙하지도 않은지라 영 서투르지만 나는 큰 의의를 두고 있다.
실수는 수치스럽고 실패는 쓰다.
그렇지만 성공과 실패의 차이는, 그저 얻는 것의 차이일 뿐이다.
내가 기존에 원했던 것을 얻느냐, 아니면 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얻느냐의 차이에 불과하다.
그리고 나는 성공보다 실패를 무수히 많이 한 사람으로서, 실패와 실수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고 얻어가는 데에는 능숙한 편이다.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고, 항상 원하는 것만 얻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실패나 실수도 내가 생각치 않은 것을 얻는 것이라면, 어떤 의미에서는 또 다른 영역의 성공이 될 수도 있다.
다만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조금 더 늦어진 대신 그것을 먼저 얻었을 따름이다.
나는 이제 실수하고 실패하여 수치스러운 내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 줄 것이다.
잘했어.
우리는 처음에 시도할 때에 성공뿐만 아니라 실패 역시 감안하고 있었고, 이걸로 우린 이런저런 걸 얻었어.
그리고 이건 다음 성공으로 향한 도전에 이런 도움이 될 거야.
수치스럽고 부끄럽겠지만 이 감정은 영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도전하지 않을 때보다 많은 것을 얻어낼 거야.
실패를 두려워 할수록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고, 그럼 영원히 성공할 수 없어.
그러니 실패를 능숙하게 다루는 것이 성공에 가까워지는 길이야.
이제 얻은 것으로부터 배워서 또 원인을 분석하고 다시 해 보자.
너의 실패는 경험과 데이터가 되어 성공으로 가는 디딤돌이 될 거야.
사실 성공이나 실패나, 겪었을 때 해야 할 일은 크게 다르지 않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분석하며 더 큰 성공을 준비하는 일이다.
그러니 눈앞의 성공이나 실패에 매번 지나친 의미를 두며 교만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다.
나에게 이렇게 말해준 사람이 없었음이 아쉽지만, 대신 내가 그것으로 인해 스스로 성장할 기회를 많이 얻었음을 알고 있으며, 평생의 성장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었음도 인정한다.
또한 이제 내가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음이 그에 비할 바 없이 기껍다.
나는 고통과 실패와 슬픔과 우울이 나를 뒤흔들 것을 알고 있지만, 내가 내 자신에게 가혹할 때도 내가 포기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이제 내가 내 자신의 편에 서서 올바른 내 자신의 벗이 되려고 하는 지금은 더 나아질 것도 알고 있다.
아직 이런 부분에 대해 터무니없이 서투르고 어리석은 나지만, 모쪼록 실수에 가혹해지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먼저 해 주는 어른이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