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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홍시 Jul 17. 2023

회피도 때로는 아름답다

문제를 회피만 하는 내가 싫어질 때


여러분은 문제에 부딪칠 때 어떻게 행동하는가?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각기 행동 양상이 달라지겠지만, 무서운 문제를 만나면 선 회피를 택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물론 회피가 무조건 좋다는 건 아니다. 회피만 해서는 결코 목표를 이룰 수 없다. 와 더불어 수많은 회피의 폐해가 있지만, 그 사실은 회피하는 그 당사자가 가장 잘 안다.


그러나 나는 최근 여기에 관련된 흥미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의 생산성은 어떤 무서운 문제를 목전에 두고 있을 때 크게 올라간다는 것이다.


그 심리가 조금 재밌는데, 비록 무서운 문제 자체에 대해서는 회피하지만,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은 강해진다. 그러다 보니 그 문제 외의 모든 분야에서 생산성이 올라가기가 쉽다.  예를 들자면 시험 기간에는 공부 외의 모든 것이 재밌어져서 평소엔 하지 않던 집안일을 말끔히 하게 되는 케이스가 있겠다.


이런 상황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만화를 보거나 게임을 할 수도 있지만, 보통 불안감 때문에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집안일이든, 친구 상담 들어주기든 무언가 '필요한' 일을 하게 되곤 한다. 그래서 시험이 없었으면 애초에 신나게 게임을 하느라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집안일을 하게 되는 식이다.


뭐라도 긍정적인 일을 했으니 작은 안도감이 들지만, 이윽고 시간을 버렸다는 생각에 더 큰 압박감을 맛보게 된다. 그래서 목표와 마주하기 전까지 무언가를 끊임없이 하게 되는 굴레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의 문제를 아는 사람은 많아도 이것의 유익함을 제대로 인지하긴 어려웠다. 이런 게 유익할 수 있나 싶겠지만, 나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이렇다.


나의 경우 그런 도피가 주로 예술적인 형태를 띄었다. 수업시간에 공부하기 싫으면 그림을 그렸고, 야자시간에 자습하기 싫으면 글을 썼다. 일하기 싫을 때는 연기를 연습했고, 연기가 무서울 때는 노래를 불렀다. 어쩔 수 없이 시험공부를 해야할 때는 노트필기를 만화 형식으로 그리거나, 연기공부가 벅찰 때는 뮤지컬 등 연기가 섞인 노래로 연습을 하고는 했다.


 나약해서 자주, 많이 도망치고픈 사람이었고, 내가 도피하던 시간이 길어질 수록 나의 예술적 소양은 높아졌다. 체감상 도망만 치던 나는 어느새 '연습을 열심히 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도망만 치던 내가 너무나 싫었는데, 누군가는 나의 연습량을 보고 내게 감탄했다.


다양한 도피가 습관이 된 내게는 제법 다양한 분야의 실력이 생겼고, 나는 이 모든 걸 업무와 연관지어 즐거운 업무가 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내가 그토록 즐기던 소설, 연기, 노래 등이 일정 수준에 다다라 진정 내 '업무'와 관련된 문제가 되어버렸을 때, 나는 그동안 회피수단으로서 즐기던 모든 감정을 잃어버리고야 만다. 나의 즐거운 도피처가 압박감과 만난 순간, 또다른 '무서운 문제'로 변해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리라.


나는 이전에 이것의 원인을 모르고 그저 내가 열의를 잃은 줄로만 알았다. 열정을 잃어버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보건대, 쥐도 퇴로를 열고 몰아야 한다는데 스스로 나의 모든 도피처를 막아버렸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러분에게'예전에는 정말 재밌고 열심히 했는데 지금은 아닌' 것들이 있다면, 그것들이 회피의 수단에서 마주할 문제 자체로 변한 게 아닌가를 생각해 볼 만할 것이다.


나는 예전에 마냥 도망가는 내 자신과, 또한 열정을 잃었다고 생각한 내 자신을 퍽 미워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도피도 때로 꽤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실력을 거리낌없이 쌓을 수 있는 기회라고도 생각한다. 다만 이제는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마주함의 즐거움을 배워야겠다고도 생각한다.


나는 도망가는 데에만 선수고 나아가는 데에는 아직 서투른 부분이 많아 두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지만, 이제는 원인을 알았으니 왜 이제 와서 싫어하냐고 내 자신을 다그치는 게 아니라, 맞서는 거 자체가 서투른 내 자신을 응원하며 이 길을 나아가려 한다.


우리가 이런 법칙을 적절히 잘 활용한다면, 우리는 삶을 더 융통성있고 윤택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걸 보면, 문제를 마주하는 것만큼이나, 회피도 꽤 아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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