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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홍시 Jul 26. 2023

나는 맞서는 게 아직도 두렵다

회피에서 맞섬으로



나는 겁보다. 비록 가족과 절친한 친구들 외에는 그걸 잘 드러내지 않지만, 굉장히 겁이 많은 사람이다. 만사가 걱정되고, 잘 되리라는 기대보다 잘 안 될 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내가 잘해낼 거라는 믿음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불과 두어 달 전까지만 해도 자책이 심했던 사람이라서, 잘 안 되는 문제들을 다 내 탓으로 돌리고는 했다. 통렬한 자책은 나로 하여금 더 겁 많은 초식동물처럼 숨게끔 했다.


나는 매일 하는 나의 업조차 자신이 없는 사람이어서, 조금만 규모가 큰 일을 맡으면 걱정이 앞을 가렸다. 그러니 부담스러워져서 마냥 도망가고만 싶었다. 그게 심지어 좋은 일이라 해도, 무거운 선물에 짓눌린 아이처럼 괴로워했다.


그러나 요즈음 나는 새로운 시도 중이다. 맞서는 게 서투른 내 자신을 위해 셀프로 기를 살려주는 중이다.


맞서기 위해서 왜 기부터 살리기로 했느냐고?


전에 본 글이 있다. 공부도 기 싸움이라서, 씹어먹을 정도로 기가 살아 있어야 이기고,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잡아먹힌다고 했다. 정말 그렇다. 나는 그동안 기죽어 있다 보니까, 언제나 기싸움에서 졌던 것이다.

 

실력은 갈고 닦으면 자연히 늘어나지만, 기는 살리지 않으면 계속 죽어있기 마련이다. 난 나의 문제를 실력에서 찾고는 했지만, 이제는 안다. 오늘의 나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실력이 아니라 기였음을.


세상은 겸손해라 하지만, 겸손이 내 자신을 왜곡하여 작게 보는 게 아님을 너무 늦게 알았다. 내가 나를 날파리만 하게 보면, 나는 이 세상의 모든 날파리 같은 문제들도 위협으로 느끼게 된다. 그러나 내가 나를 바위같이 본다면, 그 날파리들은 더 이상 내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딱 내 실력만큼만 내 기를 세워주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서 나는 누가 뭐라든 내가 내 자신의 기를 마구 세워주고 있다. 잘한다고 칭찬도 해주고, 그까짓 거 쌈싸먹을 수 있다며 마구 응원도 하는 중이다. 계속되는 부정적 의문을 다 품어주고 안아주고, 잘 할 수 있다고, 여태까지 네가 쌓아올린 것들을 보라며 날 격려하고 있다.


신기하게도 그 전엔 어려웠던 것이 점차 쉽게 느껴진다. 그 전엔 피하려 애썼던 것들이, 숨쉬기나 얼굴 긁기처럼 하찮아져서, 도망갈 필요조차 느끼지 않게끔 변화할 수 있으리란 믿음이 생긴다.


아직 오늘의 나는 맞서는 게 두렵다. 겨우겨우 응원한 내 작은 자신감으로 큰 문제를 맞서기엔 아직 부족하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나는 기를 계속 살릴 것이고, 나중에는 진실로 기와 실력이 확실히 살아있는 사람이 되리라는 믿음을 가진다. 아직 작고 부족한 나를 너그럽게 포용하며, 점차 크도록 감싸안다 보면, 언젠가 오늘을 우습게 추억하는 날도 반드시 올 거라고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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