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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홍시 Aug 21. 2023

마이페이스의 중요성

소중한 것을 놓쳐가며 번 시간을 빼돌림 당하고 있었다.


요즘 내가 좋아하는 게임이 있다. 게임 캐릭터가 따뜻한 말을 해주면서, 게이머의 일상을 좀 더 즐겁게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에 특화된 모바일 게임이다.

그런데 난 그 따뜻한 말을 좋아해서 이 게임을 깔았고, 거기에 더빙된 목소리가 좋아서 그 캐릭터를 골랐음에도, 어느새 무의식적으로 캐릭터의 반복되는 대사를 빨리 넘기고 있었다. 더빙이 채 다 나오기도 전에 그 모든 대사를 넘겨버렸다. 마치 일거리라도 해치우는 듯이.

빠르게 누르는 손가락과 다르게, 나는 그 속도로 캐릭터의 표정과 대사를 다 보려면 집중해야 했기에 피로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기분이 이상해졌다.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하면서, 심지어 그 예쁜 말과 표정을 보려고 하는 거면서, 천천히 음미하지 못하고 계속 빨리감기처럼 보려고 하는 내 자신이, 무척 기묘하게 느껴졌다.

난 나도 모르는 새 유튜브 영상을 2배속으로 듣는 데 익숙해졌고, 도 지루한 부분은 건너뛰느라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워할 때가 생겼다.


보려고 들어갔으면서 정작 제대로 보지 않는다. 이 괴상함을 넘어 괴랄하기까지 한 현상은, 어느새 나 역시 빠른 세상에 길이 들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은 점점 더 빠르고 자극적으로 내 시선을 끌려고 하고, 따라서 사람들도 점점 더 급해지는 것 같다. 한국인의 빠름주의는 유명하지만 요즘은 더 심한 것 같기도 하다.

작품에서도 갈등을 피하고 빠른 사이다를 원하고, 영화도 요약되길 바라며, 게임의 스토리는 스킵하고, 미디어는 쇼츠로 보게 된다. 많이 보지만, 제대로 보지는 않는 것이다.

이런 세상 속에서 살아서인지, 난 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내 속도가 아니라 조급해진 세상이 원하는 속도대로 살고 있었다. 급하게 보는 눈을 얻은 대신, 천천히 음미하는 즐거움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음식을 음미하지 않고 허겁지겁 게걸스럽게 먹으면 품위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음식 외의 다른 것들을 음미하지 못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는 게 흥미롭다.

그와 비슷하게, 내 자신을 세상의 속도에 맞추어 몰아붙이다 보면, 천천히 나의 흐름을 존중하며 음미할 기회를 잃어버리고 만다. 내가 나의 걸음을 살피기 위해서는 일단 천천히 내 자신을 돌아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리라.

내가 그렇게 조급해하며 아낀 시간은 결국 광고나 알고리즘 따위의, 내가 원하지 않는 것들로 채워졌다. 긴 영화를 볼 시간에 짧은 요약 영상을 보면서, 그 사이에 수많은 광고들이 끼어들었다.


분명 무언가를 검색하려고 화면을 켰다가도, 거기에서 제공하는 이야기들에 정신이 팔려 정작 내가 뭘 하려고 했는지조차 잊어버리곤 했다. 결국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정보의 홍수에 떠밀리고, 시간과 시선을 빼앗긴 백치가 된 것이다. 


또한 이것은 사람을 상대할 때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누군가를 쉽게 답답해 했고, 누군가가 나를 답답하게 보는 걸 두려워했다. 내 자신에게나 남에게나, 기왕 있을 변화라면 보다 더 효율적이고 신속하길 바랐다. 그리고 그러지 못하면 짜증이 났다.


그것이 '일단 빨리' 결론지어져야만 했다. 이것이 정말 상대나 나를 위한 최선인지, 무리해서 앞당긴 결과가 어찌 될지,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결론이 지어지고, 내가 더이상 신경을 안 써도 된다는 확신을 갖고 싶었다.


그렇게 기다리는 법을 잃어버린 나는, 그렇게 조급하게 번 시간으로 많은 이들을 접했지만, 결국 그들 중 누구에게도 진정한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결국 나의 조급함은 작품이나 사람을 많이 접하게 했을지는 몰라도, 개중 무엇 하나 제대로 마주하게 두지 않았다.



나는 이런 상황이 마치 소설 모모에서 나오는 한 장면 같았다. 이전엔 여유 있던 어른들이 시간을 아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이후로는 시간이 없어지기 시작했던 장면. 그리고 그 아낀 시간들이 결국 어른들 자신이 아닌, 이방인인 회색 신사들의 이익으로 돌아가는 장면 말이다.

내가 그동안 그렇게 쫓기듯 급하게 번 시간은 광고와 누군가의 이익에 쓰이고, 내가 무리해서 만들어낸 조급한 변화는 누군가의 짧은 사이다 한 모금으로 소모되었다.

마이페이스, 말 그대로 자신만의 속도와 방향은 이런 오늘날에 가장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나에게 가장 좋은 속도로, 내가 가장 즐길 수 있는 때에 내가 편안해하는 만큼 음미하려고 한다. 누군가가 짜놓은 판에 길들여지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위해 주도적이고 주체적으로 걸음을 걷고 싶다.


음식을 게걸스레 먹지 않고 천천히 음미하는 것이 가진 자의 여유요, 인간으로서의 품위라면, 사는 동안의 시간을 제대로 음미하는 것이 살아있는 자의 품위가 아닐까?

그동안 내가 원하지도 않은 정보들에 떠밀리듯 걷느라, 어느새 내가 놓친 소중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이제는 내가 놓친 소중한 것들을 천천히 음미하며 지내야겠다. 누리는 데에 조용히 집중하면, 내 시간은 더이상 부족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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