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여간 잘 버텨주나 했더니, 와르르 쏟아져서 때아닌 옷 정리를 해야만 했다. 안 그래도 우울하던 며칠, 울고 싶은데 뺨 맞은기분이 들었다. 정말이지 아이처럼 엉엉 울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속상해도 내가 하지 않으면 영영 무너져 있을 행거가 마음에 걸려, 결국 하나 하나 들추며 치워나갔다. 그래도 멋쟁이 친구들에 비하면 난 옷이 별로 없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옷이 행거를 무너뜨릴 정도로 이렇게 많았던가? 그렇게 옷가지를 옮기며 행거에 걸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 많은 옷들 중 내가 정작 자주 입은 옷은 몇 벌이지?'
입을 옷은 항상 없는데, 막상 정리하자니 벅찰 정도로 많았다. 하나하나 빨고 다리고 걸자면 감당이 불가능할 만큼. 관리할 여력을 넘어선 옷들은 어느새 구석에 몰려서는 있는줄도 모르거나, 구석 바닥에 떨어져 먼지 투성이가 되었다. 그리고 심지어 그런 옷들이 대다수였다. 재택근무를 하는 지라 밖에도 잘 나가지 않으면서, 잘 입지도 않을 옷들이 그렇게나 많았다.
생각해 보면 다른 것들도 그랬다.
나는 내가 필요할 때 바로 그 물건이 없으면 어떡하지, 싶은 걱정에 젖어 물건을 쟁여두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내가 사는 곳은 작은 원룸이었고, 그 방은 쌓이는 물건을 감당하지 못해 정신없이 산만한 방이 되었다.
내 냉장고는 터질듯이 꽉 들어차 있어서 원하는 음식을 꺼내기도 어려웠고, 내 찬장은 와르르 무너질 정도로 식료품들이 많이 담겨 있었으며, 내 서랍은 혹시나를 대비한 여유분들로 꽉꽉 들어차 있었다. 그러니까 집이 지저분하게 보일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그동안 내가 정리를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나는 자리를 설정한 곳의 물건은 다 그 자리로 정리할 줄 알았다. 내 집이 산만한 것은, 공간이 꽉꽉 차서 더 이상 자리를 배분할 수 없는 물건들 때문이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물건들은 바닥에 굴러다니고, 발에 차이고, 공간을 좁혀왔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한 사람의 계기 같이도 느껴진다. 그러나 내 머리를 스치는 또 다른 생각이 있었다.
'나는 내 목표도 너무나 맥시멀리스트처럼 만들었구나.'
그 생각이, 왠지 나의 삶을 크게 바꿀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목표의 쇼핑
목적 없이 대형 할인점을 돌아다니다 보면, 순식간에 돈이 사라진다. 이것도 필요하고, 생각해보니 저것도 있으면 괜찮을 것 같다. 이것도 있으면 언젠가는 쓸 것 같다. 언젠가 필요할 것 같은데 지금 할인하니까, 모처럼 이렇게 나왔으니까, 각종 이유를 대며 잔뜩 이것저것 구매해 버린다. 허나 살 때는 그렇게 쓸모있어 보였던 것들이 막상 챙기면 애물단지가 되는 일이 심심찮게 있다. 아마도 이유를 말하자면, 구매할 이유는 많은데, 사지 말아야 할 이유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나는 목표가 정말 많은 사람이었다. 하고 싶은 욕심이 얼마나 장한지, 이것도 저것도 많이 하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그 많은 목표를 견디다 못해 포기하고 무너져서는, 내가 얼마나 한심한지에 대해 곱씹으며 우울을 삼키고는 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본다면, 뭔가를 항상 열심히 하고는 있는데 막상 이룬 건 없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꿈은 창대한데, 이룬 건 없는, 말 그대로 입만 산 사람.
행거를 무너뜨리고 다시 수습하며 깨달았다. 나는 마치 내 목표를 대형 할인 마켓에서 주워담듯이 고르고 있던 거라는 걸.
쇼핑하는 건 즐거운 일이다. 어떤 물건을 고르면서 이걸 어떻게 활용할지 상상하는 건 정말 재미있다. 그러나 막상 그 물건을 관리하는 것은 오래 걸리고, 번거로우며, 귀찮은 일이다. 관리되지 못한 물건들은 집을 부산스럽게 만든다. 그것들이 쌓일 수록 정리는 더욱 어려워지고, 우리는 관리하지 않은 집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결과적으로 돈 낭비, 시간 낭비, 공간 낭비, 노동력 낭비인 것이다.
내 목표 역시 마찬가지다. 꿈을 꾸는 건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그 꿈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 물건을 살 때 돈을 지불한다면, 목표를 살 때에는 시간을 지불해야 한다. 나는 마치 무한정 자본이 있는 사람처럼 목표를 주워담았고, 그 결과 파산이 된 것이다.
나는 내가 사는 집이 작은 원룸이라는 걸 생각하지 못하고, 예전에 부모님과 살던 쓰리룸처럼 생각하며 공간에 대한 생각 없이 물건들을 마구잡이로 쌓아두었다. 그리고 꼭 그것과 같이, 내가 현재 감당할 수 있는 시간과 나의 에너지를 생각하지 못하면서 목표를 무작정 쌓아두었다. 그러니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게 될 수 밖에.
목표의 정리와 정돈을 위하여
우리는 반려동물들의 귀여움에 홀려 냉큼 어린 시절만 생각하고 키웠다가, 반려동물이 늙고 병들게 되면 버거워하며 포기하는 사람에게 책임감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목표를 이룬 뒤만 생각하고 벌였다가, 그 노력의 힘듦에 버거워하며 포기하는 사람은 본인의 삶에 책임감이 있는 것일까?
우리는 정리정돈의 기본에 대해 알고 있다. 쓰지 않는 것을 버려 여유 공간을 마련하는 것. 중요한 것은 따로 공간을 지정하는 것. 자주 쓰는 것은 가까이 두는 것 말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가진 물품뿐만 아니라 목표 역시도 이와 같지 않을까? 나는 그동안 나의 많은 목표들을 감당하려 수많은 계획표 어플이나 체크리스트를 만들었지만, 내 역량을 벗어난 나머지 얼마 가지 못하고 모두 그만두었다. 분명 누구의 강요 없이 내 스스로 신났기 때문에 주워담은 것들인데, 관리하기에는 내 그릇이 얼마나 작은지를 실감한 것이다.
난 이제 내 방의 많은 물건들을 하나하나 버리려 한다. 언젠가는 쓸모 있겠지 싶었다가 이제는 용도도 잊어버린 짐덩이들을 하나하나 버리고, 내가 잘 입지 않고 언젠가 살 빼서 입어야지, 유행이 돌아오면 입어야지, 하는 것들도 버리기로 했다. 그것을 보관하기 위해 내가 매 순간 누릴 수 있는 공간들과 청결을 실시간으로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분별하게 주워담은 목표들도 어느 정도 내려 두려고 한다. 꿈꾸는 것은 많지만, 내 그릇이 아직 작기 때문이다. 모두 담을 수 없는 그릇에 우겨넣다가는 그릇 자체가 깨지기 마련이다. 나는 늘 그렇게 금 간 그릇으로 아슬아슬하게 살아왔고, 나의 고통은 그것에서부터 비롯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목표를 많이 넣은 그릇이었지만, 그래서 한 숨의 여유도 없이 스스로를 옥죄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처음 독립해서 원룸으로 이사왔을 때를 기억한다. 이 방은 이제까지 살던 집에 비하면 아주 작았지만, 그러나 청소하기 참 쉬웠고 눈이 닿지 않는 곳이 없어 관리가 참 쉬웠다. 사람의 욕심은 무조건 큰 집이라 하지만, 나의 관리 능력에는 이 정도가 딱 알맞은 것 같았다.
나의 목표 역시도 처음에는 작은 그릇에 담으려 한다. 내가 딱 그 목표의 관리를 즐겁게 할 수 있을 정도만. 조금씩 담아서 해결하고, 그 다음에 또 조금씩 담고. 그것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관리가 몸에 익어 좀 더 큰 그릇이 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