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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한 펀딩으로 DDP 1등, 와디즈 1등 되기

'대한제국 트럼프카드' 7년 간의 챕터원을 닫으며

by koraphic



한 나라의 상징이 4가지나?
: 트럼프카드 만들면 재미있겠다.


시간을 그때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고 언질이나 줄 것 같다. 3개월, 길어봤자 6개월 일 줄 알았는데 완성에만 4년이나 걸린다고...


2018년 새해 즈음 전통과 관련된 지금의 브랜드를 시작하며, 조사 연구를 위해 방문한 국립고궁박물관 대한제국관에서 특이한 걸 발견했다. 대한제국의 상징이 4가지 - 오얏꽃, 무궁화, 태극기, 매라는 것.

국립고궁박물관 대한제국관의 벽면에 있는 '대한제국 상징 문양' 소개


지금은 국가상징을 국기, 국가, 국화 이렇게 크게 3가지*로 분류하는데 대한제국은 그런 체계 없이 그냥 4가지였다. 특히 그중 꽃이 2가지나 되는 것이 현대인의 시각에는 독특하게 느껴졌다. 낯선 대한제국... 13년이 채 되지 않은 나라의 상징 중에 국화가 2가지나 되는 걸까? 그런데 오얏꽃은 뭐지. 옛말 같기는 한데...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끈을 고쳐 쓰지 말라’ 할 때의 그 오얏인가? 어쨌거나 상징이 4가지라면 트럼프카드 만들기에 딱 이겠는데?



4년 동안 트럼프카드를 만들기 위한 사전 프로젝트가 6개


국가상징이라면 정형화된 형태가 있겠거니 했는데, 조사를 할수록 매체마다 제각각이었다. 예를 들면 서류(에 인쇄된 것), 복식(에 자수로 놓인 것), 휘장(처럼 금형으로 만들어진 것)의 오얏꽃 문양이 조금씩 다 달랐다. 13년도 채 안 된 기간 동안 전통의 요소들을 새로운 양식에 맞추기 위해 당시 디자이너(?) 들이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박물관에 얌전히 놓인 국가유산을 보노라면 치열함 마저 전해졌다. 그래서 프로젝트가 생각보다 오래 걸릴 것이라는 느낌이 왔다. K, Q, J의 인물도, JOKER도, 패키지 디자인도 정하기 전이었는데 그나마 빨리 디자인할 수 있을 것 같았던 4개의 문양도 정확한 레퍼런스를 찾고 정리하는 데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빠른 성과보다 제대로 된 결과물을 내놓고 싶었기에 제대로 하고 싶었다.


사전 프로젝트 중 매년 숙제하듯이 진행했던 '오얏꽃 프로젝트'. 피날레가 '대한제국 트럼프카드'가 되도록 기획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트럼프카드 디자인이 완성되기까지 4년 여가 걸렸고, 그 과정 중에 공부한 것들을 중간중간 소개한 크고 작은 프로젝트들이 모두 6개나 되었다. 크라우드 펀딩은 오얏꽃 문양 관련 4번, 무궁화 문양 1번, 그리고 2020 궁중문화축전(대한제국 외국공사 접견례) 포스터 디자인까지.


대한제국의 4가지 상징 중 가장 중요했던 오얏꽃* 프로젝트는 매체별 다른 문양을 찾아 배지나 키링으로 만들어 현재의 우리에게 소개한다는 의미로 4년에 걸쳐 매년 봄에 진행했고, 대한제국의 애국가 표지에 있는 낯선 무궁화 문양으로 한 번, 우연히 한국문화재재단(현. 국가유산진흥원)의 협업 의뢰가 들어온 궁중문화축전의 프로젝트까지... 트럼프카드 하나를 만들기 위해 생각보다 많은 공부가 필요했고, 5년 차에 선보이는 대한제국 트럼프카드는 긴 호흡의 피날레인 셈이었다.


* 오얏꽃 : '오얏'은 자두의 옛 말로, 그 자체로(오얏 리(李)) 조선 왕가를 상징하기도 했다. 삼국사기, 고려사에 모두 기록된 봄 꽃으로 특히 조선왕조실록에는 49회나 언급되었다.



감성보다 논리 : 이것을 여기에, 1907년에.


대한제국의 상징과 트럼프카드 아이콘을 연관시키며 시작된 프로젝트인 만큼,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된 순서대로 오얏꽃, 태극, 무궁화, 매를 각각 스페이드, 다이아몬드, 클럽, 하트에 대입했다. 최대한 많은 사람이 납득할 수 있는 논리를 원했다. 트럼프카드의 4개 아이콘 스페이드(♤, Spade), 다이아몬드(◇, Diamond), 하트(♡, Heart), 클럽/클로버(♧, Club/Clover)의 순서는 따로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한국에서는 주로 ‘스다하크’로 줄여 부르는 문화가 있기에 이를 준용했다. 자료들을 조사하면서 가장 많은 도움이 된 레퍼런스는 다양한 우표들이었다. 자수로 놓인 문양들은 그래픽으로 옮기기에 어려운 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대한제국의 훈장 역시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4가지 문양으로 트럼프카드를 디자인 한 과정 만으로도 책 한 권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디자인을 할수록 트럼프카드의 화려하고 쨍한 색감이 이번 프로젝트와는 맞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정제되고 세련된 톤, 제한된 색감이 더 어울렸다. 그래서 처음 강렬한 아이디어를 주었던 국립고궁박물관 대한제국관의 벽면 자체로부터 영감을 받아 아이콘을 검은색과 금색, 이렇게 2가지로만 디자인했다. 캐릭터들도 원색(빨간색, 파란색, 노란색)이 아닌 다양한 톤의 검은색과 금색으로만 완성하기로 했다. 금색도 다른 나라가 떠오르는 화려한 색감의 옐로 골드 계열이 아닌 빈티지한 느낌의 그린 골드로 정했다.


그리고 K, Q, J에 대입할 대한제국의 역사적 인물을 정하는 것은 비교적 쉬웠다. 각 직책에 맞게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인물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J(Jack)는 ‘신하’라는 뜻으로, K(King)의 고종, Q(Queen)의 명성황후에 이어 대한제국에서 가장 유명한 신하인 흥선대원군을 선정했다.


트럼프카드의 또 다른 얼굴이자 가장 화려한 그래픽이라고 생각하는 패키지에 어떤 디자인을 넣을지 찾아야 했는데, 대한제국과 이번 프로젝트를 상징하는 하나의 매개체가 필요했다. 대표성을 띄고 격이 높으며, 디자인도 화려한 대한제국 만의 무언가가 있을까 하다 발견한 이것! 1900년 4월 17일에 발표된 대한제국의 훈장조례에서 답을 찾았다. 훈격이 제일 높은 ‘대훈위 금척대수장‘은 자체로도 존재감이 있으면서, 오얏꽃, 태극 등 대한제국의 다양한 상징이 포함되어 이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하나의 표상으로도 적절했다. 패키지와 카드의 뒷면 등에 유기적으로 활용하였고 이어지는 대한제국 세계관의 프로젝트였던 '대한제국 여권케이스'에도 쓰였다.



마지막 남은 난관은 하나, 조커카드! 전통 관련 트럼프카드에서 조커로 선정하는 것은 보통 탈이다. 광대 이미지의 조커와도, 한국 특유의 문화유산인 점도 잘 어울리기는 하는데 코래픽의 대한제국 트럼프카드에 어울릴지는 의문이었다. 더군다나 시대적 배경을 떠올리면, KBS드라마 ‘각시탈’이 연상될 것 같아 전반적으로 다른 IP를 참고한 것으로 보일 것 같았다. 그러던 중 'JOKER'에는 ‘와일드카드’라는 뜻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장의 카드, 최후의 수단인 와일드카드! 그렇다면 역사적 사실과 연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다 떠오른 것이 바로 ‘헤이그 특사’였다. 고종의 손발이 묶인 상황에서 비밀리에 파견한 특사! ‘와일드카드 : 조커’로 딱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이 프로젝트의 시대적 배경을 명확하게 ‘1907년’으로 설정할 수 있었고 이를 포괄적으로 표현하는 부제, ‘새로운 선택(Into The New World)’ 까지 결정할 수 있었다.



위에서 말한 역사적인 표상과 인물, 사건들을 디자인으로 담을 때의 톤 앤 매너를 잡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나는 역사학자도 아닌데, 전통에 관심이 많고 박물관 가는 것을 좋아하는 디자이너라는 것 만으로 이 프로젝트를 해도 될까? 누구를 가르치거나, 특정 인물이나 시기를 미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이후 정말 지겨울 정도로 듣게 되는 질문 ‘왜 하필 망한 나라로 디자인을 했나?’에 대한 질문을 미리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이 워딩 그대로 질문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다.) 다양한 논의가 아직도 필요한 나라. 현대와 가장 가깝기에 오히려 시험에서는 다소 소홀했던 시기. 누구를 가르거나 미화하거나 비판할 수는 없지만, 나의 디자인으로 ‘한 번 더 떠올려보자’고 할 수는 있겠다 싶었다. 전통의 요소를 새로운 양식에 맞추어 치열하게 리디자인 했던 선배 디자이너 분들을 떠올리며 말이다. 이러한 방향성을 정리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던 심용환 작가님께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일방적으로라도)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시대적 배경을 염두하여 장점과 단점을 구분 지어 담백하게 알려주셨던 작가님의 강연을 몇 번이고 찾아 들으며 균형을 잡으려 노력했고 무지를 지식으로 채웠음은 물론, 덕분에 시대와 인물들에 푹 빠져 디자인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무산된, 나의 첫 펀딩

위의 단계들이 일련의 과정으로 매끄러이 진행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좌충우돌 그 자체였고, 그 와중에 스톡 이미지(저작권이 있는 이미지를 구매하거나 무료로 제공하는 온라인 리소스)를 쓰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에서 나온 것으로 완성하고 싶어, 인물들의 털 한 올 한 올, 눈주름 하나하나 일일이 다 그렸기에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흥선대원군의 안경같이 동그란 눈두덩이 주름과, 꼬불꼬불한 수염의 선을 딸 때(특히 밤에 작업하면) 왜 그런지 오싹할 때가 많았다.

그렇게 혼자 4년여의 시간 동안 파고들어 너무 지난하게 느껴지는 이 프로젝트를 끝내고 싶어 틴케이스나 다른 구성품 없이 오직 대한제국 트럼프카드 단품 한 개만 가지고 2022년 2월에 크라우드 펀딩을 오픈하게 되었다. 텀블벅의 에디터픽 프로젝트로 선정되고 1주일의 공개예정 기간 중 유료광고를 하지 않았음에도 알림신청이 300에 임박하는 등 사전 반응 자체는 나쁘지 않은 편이었으나 펀딩은 무산되었다. 다른 프로젝트의 성과만 지켜보며 목표금액을 너무 높게 잡았나 했지만, 트럼프카드의 MOQ(최소주문수량)와 단가가 생각보다 높고 제조사를 찾기도 쉽지 않아, 낮추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면 상세페이지의 내용이 ‘여러분, 저 이렇게 4년 동안 열심히 했어요. 알아주세요’가 주였던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많았을 뿐, 예비 후원자분들이 보고 싶은 부분, 카드 플레이어분들이 알고 싶은 내용들이 많이 빠져있다. 그렇게 4년 동안 준비한, 대한제국 프로젝트의 피날레가 무산이 되었고, 이는 코래픽에서 진행한 펀딩 중 최초 실패라 상당히 좌절했다.



디자인을 잘 못하나? 내가 좋아하는 것은 남들에게 별로인가(지금도 하는 고민이기도 하다) 등등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브랜드를 계속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다만 프로젝트 진행 기간 중 중앙일보에서 전통을 재해석하는 MZ세대와 관련된 꼭지로 인터뷰를 하게 되어 오히려 기분이 이상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상황으로 기억한다.



코래픽의 첫 오프라인 입점이 무려 DDP?

DDP는 내가 디자인스쿨에 입학한 첫 해에 개관해서 그런지, 개인적으로 더욱 관심과 애정이 가는 공간이다. 그래서 갈 때마다 들렀던 디자인스토어에서 ‘여기 이 이쁜 물건들은 도대체 누가 만드는 걸까?’ 늘 궁금하기도 하고,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대한제국 트럼프카드 펀딩이 무산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DDP디자인스토어 우수디자인제품 입점 공모가 올라왔다.


처음 입점했을 땐, 코래픽(KORAPHIC) 제품이 DDP디자인스토어에 판매되고 있는 것이 어색해서 제대로 못 쳐다보고 왔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자포자기하는 심정과 기대감은 반비례해 오히려 가벼운 마음으로 제출할 수 있었다. 그래서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았는데 1차 서류심사와 2차 실물심사를 거쳐 코래픽(KORAPHIC)의 첫 오프라인 입점을 무려 DDP디자인스토어에 하게 되었다. 너무 영광이었지만, 펀딩은 무산되었기에 설마 잘 팔릴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디자인 한 (내 눈에는) 이쁜 물건’이 맞지만 이게 ‘남들도 좋아하는 잘 팔리는 물건’ 일 지는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온라인에서는 상세페이지를 통해 어디에서 영감을 받아 어떤 레퍼런스로부터 어떻게 재해석했는지에 대한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공감하며 봐주실 분들이 계셨지만 별다른 설명 없이 상품만 딱 있는 오프라인에서, 그것도 감도 높은 디자인 상품들이 모여있는 DDP디자인스토어서 무채색에 가까운 내 트럼프카드가 눈에 띄기나 할까 싶었다.



존중하며 버티기 : 펀딩 무산에서 DDP 1등으로


코래픽의 문화상품이 부피가 크지 않기 때문에(작고 귀여운 편이다) 직접 입고할 때가 많다. 찾아뵐 때마다 직원분들께서 잘 팔리고 있다고 알려주시는데, 으레 하시는 말씀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상품들은 얼마나 팔리는지 모르기에 비교를 할 수 없으니, 그저 꾸준히 판매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 입점하고 나서 DDP디자인스토어 온라인에서 베스트셀러 섹션에 계속 오르길래(12주 연속/자체 산출 기준) 영 안 팔리는 것은 아니구나 했을 뿐. 그러다 서울디자인재단의 홈페이지의 공지사항을 통해 외국인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문화상품으로 뽑힌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단일 품목 판매 1위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DDP디자인스토어의 대표제품으로 이를 알리는 이미지에 삽입되어 매우 영광으로 생각했다.


이어서 DDP개관 10주년 행사에 이벤트 상품으로 선정되었다. 그냥 선정된 것뿐만이 아니라 보도자료에 제품사진까지 실리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첫 오프라인 입점이었던 DDP디자인스토어 이후 한국문화재재단(현. 국가유산진흥원)의 수탁공모에 선정되어 국립고궁박물관, 국회박물관, 인천국제공항,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한국의 집에서도 선보이고 있으며, 이어서 계속 도전하여 더현대 서울(여의도), 전쟁기념관, 롯데마트 서울역점(제타플렉스) 등에도 입점했으니 코래픽(KORAPHIC)의 앞길을 열어준 문화상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전통문양을 그대로 옮기는 굿즈 브랜드가 아닌 나름의 감각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디자인 브랜드임을 알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펀딩을 또...? 두려움을 (까먹고) 마주하기

대중적으로 알려진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이 우리나라에 크게 2군데 – 와디즈, 텀블벅이 있는데, 개인적인 성향이나 디자인 특성이 텀블벅이 더 어울린다 생각해 주로 진행했었다. 그런데 독도체인배지와 키링이 2024 대한민국 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수상하며 다양한 부문의 컨설팅 기회가 주어져, 와디즈의 그룹장님께도 코래픽을 소개할 수 있었다. 사실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며 읽어본 펀딩과 상품기획 관련된 책의 저자이기도 하셔서 더욱 긴장되었다. 그 과정에서 펀딩 외에 ‘프리오더’라는 카테고리가 생겨, 이미 선보였거나 판매 중이라도 새로운 구성이 가능할 경우 와디즈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다고 알려 주셨다. 그리고 코래픽의 제품 중에 트럼프카드를 우선적으로 추천해 주셨다. ‘틴케이스 같은 새로운 구성품과 기획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감사하게도 이미 다양한 곳에서 선보이고 있지만, 첫 선을 보였던 펀딩 자체는 무산이 되었던 것이 가슴 한 켠에 아직도 아리게 남아있었다. 와디즈와는 결이 맞을 것 같지 않다고 혼자 막연히 생각했지만 그룹장님께서 적극적으로 장점을 발견해 주신 점도 있고, 이번 기회에 다양한 구성품들을 만들어 더 많은 분들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컸다. 지난 텀블벅 펀딩 때 못 만들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이 ‘틴케이스’였다.(어떻게 아셨지...?) 그리고 대한제국 트럼프카드의 지난 성과를 정리하며 새로운 상세페이지를 만들어야 할 때이기도 했다. 신제품이 아닌 프리오더로 선보이기에 기존의 재고를 배송할 수 있어 빠르게 전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다가왔다.



왜 그렇게까지 케이팝처럼 디자인해보고 싶어


전통과 관련된 문화상품을 선보일 때에, 내러티브까지 전달한다는 의도로 진행하려고 하는데 많은 참고를 하는 것이 케이팝의 결과물이(면서도 내가 핑크블러드이)다. 특히나 이번 프리오더 프로젝트는 다양한 상품기획을 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까지 더 잘 준비해서 선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대한제국 트럼프카드와 프리오더의 특징을 함축적인 이미지로 만들어본 티저 3종


이제까지도 티저 이미지와 프로젝트 포스터는 종종 만들었는데, 사양 이미지는 처음 만들어보았다. 보통 ‘앨번 사양 이미지’라고 해서 앨범 버전이나 포토카드, 추가 굿즈의 종류를 나열하는데 앨범 콘셉트를 한눈에 알 수 있는 방향으로 디자인되고 있다.


좌 : ‘키’ 님의 미니 3집 pleasure shop 앨범 사양(中 Glass Package Ver.) / 우 : 대한제국 트럼프카드 사양(와디즈 Ver.)


이번에는 드디어 코래픽(KORAPHIC)도 다양한 구성품(한/영 병기 디자인설명서, 틴케이스, 금박스티커, 고종 어진 포토카드)이 있기 때문에 이를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는 그런 사양 이미지를 만들어 공개했다. 특히 샤이니 ‘키’ 님의 미니 3집 pleasure shop 앨범 사양(中 Glass Package Ver.)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가지고 있는 이미지의 재료가 워낙에 다르기에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결과물이 만들어졌다. 대한제국 트럼프카드는 검은색과 금색이 메인인 제품이다 보니 어쩐지 카지노 홍보 포스터의 느낌이 살짝 난다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좋은 레퍼런스에서 영감을 받아 첫 사양 이미지를 만들어 본 것에 뿌듯함을 느꼈다.


외에도 와디즈에서는 펀딩을 준비하며 담당 PD님께 작은 부분까지 물어보면서 진행할 수 있어 좋았다. 체험 이벤트를 하면 좋을지, 얼리버드와 일반 상품구성은 어떻게 나눌지, 수량은 얼마나 정할지, 기간은 어떻게 설정할지 등등. 그리고 프로젝트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썸네일도 지난 펀딩에서처럼 일러스트레이션으로 하지 않고, DDP를 통해 많이 노출되었던 목업 이미지로 할 생각이었으나 그룹장님의 의견으로 원래의 일러스트레이션이 있는 이미지를 우선적으로 선정했다. 또한 내가 보여주고 싶은 대로 만들었던 스토리를 서포터 분들이 궁금해하실 것으로 예상되는 내용들 위주로 배치한다거나, 중복되는 부분과 용어 정리, 미세한 단어나 멘트 수정 등 많은 도움을 받은 것 같다.



와디즈 1등으로, 7년여 만에 정리된 챕터1


솔직히 와디즈 서포터 분들이 보시기엔 좀... 오타쿠 같은 프로젝트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디자인 트럼프카드에 대한 수요가 있긴 할까?라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전통이 전반적인 힙한 트렌드가 되었지만 대한제국에서 영감을 받은 트럼프카드라는 점을 생뚱맞게 여기지 않을까 자문하게 될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그룹장님의 안목에 (마음속으로 혼자) 기대 보기로 했다.

걱정을 하면서도 (디자인할 것이 생겨) 또 신나게 만들어 프로젝트를 오픈하게 되었는데, 와디즈에는 지지서명과 응원을 해 주시는 문화가 있어 그 한 줄, 두 줄에 상당히 위안이 되었다. 아무도 없는 광장에서 ‘여러분(0명)!’을 외치는 느낌이 될 줄 알았는데, 오픈예정 기간부터 기대와 응원을 글로 남겨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남들이 친구나 가족을 동원한 줄로 알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열심히 준비를 했지만, 신제품이 아닌 프리오더이기에 ‘낯선 플랫폼에서 더 많은 분들께 선보이자’는 마음으로 임했는데 펀딩 기간 중 실시간 랭킹 2위, 종료 후에는 와디즈 트럼프카드 역대 1위(디자인 트럼프카드 단품, 2025년 1월 기준)를 달성하며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오프라인(DDP)과 온라인(와디즈)에서 각각 1등을 차지한 기록 자체도 값지지만 ‘전통의 요소를 현대의 양식에 맞추어 리디자인 한 선배 디자이너 분들(조상님)을 떠올리며 이 시기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해보자’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것이 아닐까 한다. 시대로는 익숙한 '조선시대'도 있고, 전통문양으로는 대중적인 '단청'도 있는데 왜 하필 망한 나라로 트럼프카드를 만들었냐는 숱한 질문. 대한민국 이전까지의 망한 나라 중, 가장 최근에 망한 나라이기에 오히려 잘 알아가면 좋지 않을까?라는 머쓱한 답변으로 – 트럼프카드 하나에 너무나 비장했던 - 2018년부터 시작된 긴 호흡의 프로젝트의 첫 단추를 7년여 만에 잠가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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