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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모 Nov 08. 2024

성찰

- 어제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는 TV화면 속 '누군가'를 보며 든 생각

작년 9월 하순경, 글쓰기 멘토의 쪽집게 강의로 혼자서는 이룰 수 없었던 '브런치 작가 승인'을 받았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뭐 대단한 위상의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라는 말로 서로를 마음껏 부를 수 있는 이 온라인 글쓰기 공간이 내게는 '뿌듯함'이었지요. 2022년 여름을 더욱 뜨겁게 해주었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지닌 주인공 '우영우'가 그 힘들던 터널을 조금씩 헤쳐 나가던 어느 날, 아빠에게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표현할 적당한 말을 떠올리지 못하다가 매일 힘들기만 하던 자신의 일터, 법무법인 빌딩 자동출입문을 스스로 통과한 후, 불현듯 떠올린 그 단어. 뿌듯함. 누군가에겐 그 한 마디가 그렇게 소중한 단어입니다.


안도현 시인<너에게 묻는다>라는 짧은 시를 아시나요? 아마 여러 방송에서도 소개되어 시 제목은 몰라도 시구는 한번쯤 들어봤을 것입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나는 이 시를 '대동제'라 불리던, 대학 1학년 축제 때 국문과가 기획한 '시 낭송' 프로그램에서-당시 안도현 작가님이 오셨던 것도 같은데-우리 과 2학년 남자 선배가 시낭송을 잘해서 무슨 기념품-상금인 것도 같고-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안도현 작가의 <연어>를 비롯한 이후 출간작들을 잘 챙겨보는 편입니다.


이렇듯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의외로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누군가로부터 공감을 얻는다는 것은 엄청난 부자나 대단한 이력을 소유한 사람만의 특권은 아닙니다. 다만 내가 누구인지 알고 어떤 것을 잘 하고 잘 못하는지를 아는 것, 즉 나에게 집중하여 객관적으로 나를 돌아보는 '성찰'이 필요합니다. 나를 오롯이 돌아볼 수 있어야 남도 제대로 볼 수 있는 법이지요.

어제 정말 오랜만에 TV화면에서 그간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던 누군가를 보았습니다. 분명 '대국민 담화'라는 이름으로 기획된 프로그램이었고, 초반에 어색하지만 고개를 숙이는 장면도 연출되었기에 혹시나 하는 기대도 아주 잠시 품었지요. 그러나 기자들의 1:1 질의 시간에 최대한 절제된 질문을 받으면서도 화면 속 그는 얼굴색 한 번 변하지 않고 뻔뻔한 자기 변명과 심지어 자신이 주장하는 내용으로 국어사전을 재정의하라는 얼토당토 않은 말을 하더군요. 세상에서 가장 심한 욕을 한바탕 쏟아내고 싶지만, 제 눈과 입을 더럽히고 싶지 않아 참습니다.


한 국가를 대표하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 자신이 직접 수화기 너머로 뱉은 말을 부정하는 현실, 그는 '성찰'이라는 단어를 알까요? 어쩌면 그저 사전적 의미로는 이해할 수 있을지 몰라도 현실에서 자신이 그 성찰이라는 걸 해본 적은 없을 것입니다. 철저한 반성이 있어야 성찰도 있을 텐데 그는 자신의 임기 사수의 욕망을 여과 없이 드러냈습니다. 게다가 외신기자까지 와 있던 그 자리에서 대통령 집무실의 대변인을 하인 대하듯 반말로 지시하는 행위는 일반 국민인 제가 보고 듣기에도 민망하여 그 자리를 뜨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외신기자가 열심히 한국어로 설명하는 그 질문에, 자신의 귀를 가리키며 "잘 못 알아듣겠네?"라고 하는 장면에서는 정말 그 입을 틀어막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평소 청력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내 귀에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게 또박또박 질문한 기자가, 그 어색함을 수습하느라 오죽하면 "제가 한국어 능력시험 치르는 기분이네요."-정확한 워딩은 가물가물하다-라고 했을까요? 내신 기자들이 웃으며 그나마 분위기가 좀 나아졌습니다.


어제 그 형편없는 담화 따위를 본방사수한 걸 후회했지만, 평소 나도 지적 허영이나 잘난 척을 하는 건 아닌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니 아주 쓸모없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더 열심히 독서를 해야겠습니다. 늘 그렇듯 독서 후에는 서평쓰기 습관도 이어가야겠지요. 꾸준함이 무기라는 말을 다수의 책,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전해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그쳐 스치는 바람처럼 흘려 들었던 지난날을 반성합니다. 중국 명나라 유학자 왕양명이 제창한 '지행합일(知行合一)'을 그저 글자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이제는 실천할 때입니다. 앎이 아무리 뛰어난들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책이든 남의 말이든 진심으로 공감이 되었다면 그대로 따라 행해보십시오. 조금씩 변화하는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오늘 저는 매일 떠오르는 순간을 미루지 않고 기록해보았습니다. 당장 내일의 글감이 떠올릴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만, 오늘은 우선 이 작은 실천 하나로 뿌듯한 하루 보내렵니다. 매일 하루를 돌아보며 흩어진 순간의 생각 조각을 잘 모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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