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무원파이어족 Aug 20. 2023

공직 조기퇴직의 명분과 통보시점

20년의 공직생활을 끝내고, 회사에 퇴직통보 시점과 명분들..


조기퇴직 결정을 앞두고..


40대 초반에 제2의 또 다른 인생을 살아보자며, "공직 조기퇴직 10개년 계획"을 수립하였다.


남은 인생의 방향을 이렇게 설정하고, 차근차근 세부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어느순간 확신이 들어 당초의 10년계획이 3년으로 확 줄어들었다. 욕심을 좀 덜어내고, 하고 싶은 일을 좀 더 빨리 하고 싶은 욕구가 합쳐진 결과이다. 이런 결심이 섰을때 쐐불도 단김에 빼라고 회사에 바로 퇴직통보를 해서 빼도박도 못하게 굳히기를 할 생각이었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둘수가 있으니...


이제 회사에 조기퇴직을 알려야 할 시간이 왔다. 


20년간 나에게 안정적인 삶을 보장해 주었던 이 직장과 깔끔하게 아름다운 이별을 하고 싶었다. 회사에서 괜찮은 구성원이었던 한 사람이 피치못할 이유로 그만두게 되었고, 떠날때 작은 박수정도는 받고 싶은 심정이었다.


뒤말 없이 기분좋게 이별하기 위해 은근한 고민이 생겼다.


첫째는 언제 회사에 명예퇴직 통보를 해야할까?

두번째는 조기퇴직을 하는 이유를 뭐라고 얘기해야 할까?


이까짓게 뭔 고민거리냐라고 할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기관에 20년간 몸 담아 오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존재감이 있기에 다른 직원들에게 목받지 않고 소리소문없이 퇴사하고 싶었다. 



명예퇴직 결정, 언제 통보할까?


 제일먼저 명예퇴직계획을 회사에 언제 통보할지가 고민이었다. 


여러 책들과 퇴직카페에서도 거의 언급이 없어서 좀처럼 갈피를 잡기가 어려웠다.


 명퇴계획을 너무 빨리 회사에 알려버리면 마치 레임덕처럼 회사에서 투명인간 내지는 무존재감으로 굉장히 소외감을 느낄것이다. 반대로 너무 늦게 말해버리면 갑작스레 빠지는 나로 인해 인원충원계획을 세우는데 문제가 생길수도 있다. 만일 후자의 경우가 생긴다면 아름다운 이별은 커녕 생각없이 퇴사하는 이기적인 놈으로 낙인찍힐수도 있다.


 모든 일에 출발이 중요한데, 조기퇴직의 첫발을 내딛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하나 대충할수는 없었다. 신중한 고민 끝에 부서 정기인사이동 3개월 전을 D데이로 설계했다. 내가 빠짐으로 인한 공백을 최소화하고 차기 인사시 후임자를 마련할 시간으로 충분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보고할 때는 팀장 - 부서장 - 인사부서 담당자 순으로 같은 날 한 시간만에 보고를 끝냈다. 워낙 순식간에 기습적으로 보고하다 보니, 그들 입장에서 말리고 자시고 할 겨를조차 주지 않았다. 


 이에 앞서 해마다 연초에 내려오는 당해년도 명예퇴직 계획은 출력해서 신청기간, 관련서류 등은 숙지하고 챙겨놓아서 번거로운 행정절차는 그들 대신 내 스스로 챙겼다. 


이렇게 보고후 퇴직까지 남은 기간은 3개월! 


 명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20년차 특별휴가가 20일 있을 것이고, 거기다 10년차 남은 휴가와 당해연도 남은 연가를 합치니 주말빼고, 거의 두달간의 휴가기간이 생겼다.


사실상 명퇴계획 보고 후 휴가기간을 빼면 실제 근무기간은 한달 정도밖에 되지않았다. 이 한달 동안은 괜히 나혼자만 동떨어져 생활하는 듯 어색했다. 이 기간동안 20년 회사생활을 모두 나름대로 정리하고, 모든 개인 짐도 미리 다 정리했다.


 퇴직의 행정적 절차는 정말로 간단하다. 20년간 쌓아온 흔적들이 명퇴서 한장에 그냥 깨끗이, 순식간에 놀랍도록 간단한 절차로 마무리되었다. 내가 퇴직과 관련하여 한 일이라곤 단 한장의 명퇴서 제출과 마지막 휴가기안이 전부였다.  형식적 업무가 많은 공직사회에서 명예퇴직은 어찌 이리도 간단히 이뤄지는지 정말 신기할 정도였다.


이어 두달간 말년휴가 후 마지막날 하루 출근해 관서장을 비롯해 직원들과 간단히 인사하는 것으로 20년 공직생활은 단촐하게 막을 내렸다.


40대 중반 조기퇴직자의 퇴직명분!


 명퇴계획을 얘기하면 부서장 포함 대부분 물어보는 질문은 한결같다. 나가서 뭐할거냐고, 왜 나가려하느냐고? 하도 같은 질문을 많이 받다 보니, 질문의 의도가  두부류라는걸 알수 있었다.


 첫째는 정말 나가는 이유가 궁금해서 물어보는 부류이고, 나머지 한 부류는 그냥 마지막 인사치레 정도로 가볍게 물어보는 부류이다. 두번째 부류 사람에게는 그냥 형식적인 답을 하면 그걸로 끝이다.


 문제는 첫번째 부류의 가까운 지인들이 물어보는 질문인데, 짧은 시간에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매번 곤란함을 느낀다. 내 조기퇴직의 사유는 노트 수십장 적으래도 적겠지만,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설명하기엔 참 애매하다. 장문의 글로 적기는 쉽지만, 단한마디의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주도적인 삶이 어쩌니 하는 이런 뚱딴지 같은 소리는 정년퇴직 외에 다른 삶을 생각해 본적 없는 그들에게 속으로 꼴값떤다는 소리만 들을 뿐 통하지 않는다.


 무엇때문인지 모르겠으나 당시에 공식적인 퇴직의 변으로 삼은게 몸이 아파서 요양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우리 나이쯤 되면 대부분 몸 어디 한군대는 성치않을텐데, 그래서 그냥 몸 핑계대고 휴식과 치료 좀 하면서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어 퇴직한다고 말했다.


 조기퇴직은 내 사정상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명분을 갖다 붙이는게 제일 깔끔할것 같았다. 몸이 아파 조기퇴직한다는데 그 누구도 뒤말을 하지 못할것이란 생각이었다.


 나중에 직장 동료들을 통해 들은 것이지만 내가 퇴직한 이유가 죽을병 걸려서 가료차 나갔다는 소리와, 부동산 재벌이 되어서 월급따위는 성에 안차서 나갔다는 두 가지 설이 나돌았다고 한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소문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퇴직 후에도 여전히 왜 나왔습니까?



 퇴직 후에도 나는 다양한 일에 도전하는게 목적이었기에 이력서만 문서, 전화, 문자포함 50군대 이상 보냈고, 면접도 수없이 봤다. 새로운 일을 통해 만나는 사람도 대부분 뭐하다 왔냐고 물어보는데, 애써 숨기지 않고 20년간 공직에 있었다고 밝힌다.


그러면 왜 그만뒀냐는 소리가 자동적으로 따라온다.


 특히, 노가다, 택배상하차, 이사짐 알바같이 힘쓰는 일 하는 곳에 가면 이런 일 할 사람 같이 않아 보인다는 소리를 몇 번 들었다. 공무원이라고 했을때 그제야 얼굴이 공무원처럼 생겼다고 한다. 원래부터 공무원처럼 생겼다 소리를 많이 듣는데, 퇴직해도 마찬가지다.


 이런 알바는 한달 꼬박해야 월급이 200만원 정도 밖에 안되는데, 왜 괜히 나와서 땀흘려 가며 고생하느냐고 의문스럽게 물어본다. 첨에는 공직에 오래있어서 다양한 사회 경험하고 싶어서 나왔다라고 말하지만, 역시 고개를 갸우뚱하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공감을 얻지 못한다. 


역시 짧은 몇 마디 말로 설명하기는 무리이고, 괜히 어색함만 더해진다. 이런 상황이 몇 번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아예 전 직장에 대한 얘기자체를 하지 않는다.


이제 공직경력은 이력서 상에나 존재하는 먼 과거의 일이 되어 흔적조차 지워버렸다.


20년 공직생활과 완전하게 이별하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획기적인 인생업무보고서를 위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