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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명이와 지덕이 Sep 10. 2024

6화. 통근버스로 통학하다

20대 후반, 회사 신입사원 시절 서울 강남에서 경기도 이천까지 매일 통근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매일 새벽 시계 알람소리를 듣고 부스스한 얼굴로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입었다. 그리고 집을 나와 통근버스 출발장소로 갔다. 출발장소에는 이미 여러 명의 직원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며 서있었다. 통근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려 한 시간 반을 이동해야 비로소 회사가 나타났다.


1988년, 나의 대학교 신입생 시절도 신입사원 시절과 비슷했다. 학교버스로 왕복 5시간 거리의 학교에 가야 기 때문에 새벽에 일찍 일어났다. 그리고 옷을 대충 입 아침식사를 한  집에서 나왔다. 그런 후 버스 탑승장소로 갔다. 학교까지 가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었다. 교직원들이 타고 다니는 교직원 전용 통근버스, 학생들이 타고 다니는 통학버스, 지하철 3호선 강남터미널역 근처에서 출발하는 태화관광이라는 버스가 있었다.


H대학교로 통학하는 첫날, 아버지는 학교에 함께 가자고 말했다. H대학교 분교 교수인 아버지는 학교까지 교직원 통근버스를 타고 다녔다. 아버지가 운전기사에게 말해서 내가 아침마다 통근버스를 타고 통학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학교까지 가는데 버스로 걸리는 시간은 2시간 반. 대개 통근버스가 아침 일찍 출발하기 때문에 교통이 별로 막히지 않았다. 하지만 명절과 가까워지거나 전방 도로에 교통사고가 났을 때 교통이 막힐 때가 있었다. 문제는 교통이 막혀서 정체했을 때 용변이 마려우면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용변을 참거나 심하면 버스를 멈춰 세워야 하기 때문이었다. 혹시 모를 이런 난처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집에서 나오기 전에 아침식사는 매우 간단히 먹었다.    


아버지와 나는 통근버스가 출발하는 장소로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출발장소에는 버스가 있었고 운전기사가 주변에 앉아 있었다. 아버지가 운전기사에게 다가가서 말을 건넸다. 그 말은 '우리 아이인데 아침에 버스 좀 함께 타고 가게 해주세요'라는 말 같았다.  


운전기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아버지는 나에게 다가와 버스를 타라고 말했다. 그리고 뒤쪽으로 가서 앉으라고 말했다. 버스를 타고 뒤쪽으로 걸어가다 보니 앞쪽에는 나이가 많으신 교수나 교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중간쯤에는 중년으로 보이는 분들이 앉아 있었다.


나는 맨 뒤쪽에 가서 앉았다. 버스는 출발했고 몇 군데 경유지를 거쳐 학교에 도착했다. 종암동, 마장동, 과천 등 몇 군데 경유지에서 버스가 정차했고 사람들이 탔다. 그중에서 버스를 탈 때마다 나와 마찬가지로 맨 뒤쪽으로 걸어가 앉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매일 아침 가방 하나를 어깨에 메고 티셔츠, 청바지 등 수수한 복장 차림으로 버스 경유지인 마장동에서 버스를 탔다. 버스 속에는 일부의 사람들이 코를 골면서  대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는 좌석에 앉은 후 바로 잠이 안 오는지 잠시 창 밖을 쳐다보다가 이내 눈을 감았다.  


'저 남자는 교직원일까 학생일까?'


그의 정체가 궁금했다. 하지만 생각만  뿐이었다. 이른 아침시간의 기상으로 인한 피로를 풀기 위해 잠을 자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오전 수업시간에 피곤해서 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내성적인 성격이라 그에게 말을 한번 걸어보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그런데 그도 나를 가끔씩 슬쩍 쳐다보곤 했다. 그럴 때마다 그도 나를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유난히 버스에 사람이 많이 타는 날이었다. 그날도 그는 마장동에서 버스를 탔다. 그런데 그는 이미 사람이 많이 타서 자리가 별로 없어서인지 내 옆자리에 앉았다. 그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였다. 그래서 말을 걸었다.


"저기... 교직원이세요? 학생이세요?"


그와 나는 6개월 이상을 서로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아침마다 통근버스를 타고 다녔다. 갑작스러운 나의 질문에도 그는 나를 태연히 쳐다보았다.


"저도 궁금했어요. 매일 같이 타는데 알고 싶었어요. 물어보기도 좀 그렇고..."


그도 내가 학생인지 교직원인지 궁금했다는 것이었다.


"여기 우리 말고 학생은 없는 것 같은데, 보니까 우리랑 비슷한 나이의 여자들도 타는 사람이 있네요"


그가 말했다. 버스에는 교직원인지 조교인지는 모르겠으나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여자 두 명이 항상 내가 타는 버스를 탔다. 그 두 명의 여자는 내 주변에 앉았는데 서로 잘 아는 사이인 듯 버스 속에서 이야기하다가 눈을 붙이곤 했다. 


그는 회계학과를 다니는 나와 같은 88학번의 대학생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교직원이라서 아버지와 함께 버스를 타고 통학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쪽에 앉아 있는 어떤 중년의 남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우리 아버지가 저기 앉아 계세요"


그러고 보니 그도 나처럼 아버지 덕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와 나는 주말을 제외한 거의 매일 아침 통근버스를 타고 다녔다. 그래서 그와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간혹 그가 버스를 타지 않으면 무슨 일 때문에 타지 않았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통근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은 등교할 때만 이용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하교 시에는 학생들이 타고 다니는 통학버스를 이용하라고 말했다. 학교 근처까지 지하철이 다니지 않았으므로 서울까지 가는 통학버스 노선은 비교적 다양했다.


왕복 5시간씩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하교 시 도로가 정체되어 버스 속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더욱 그랬다. 이럴 때는 버스 속에서 잠을 실컷 자도 여전히 도로였다. 때때로 운전기사가 틀어주는 가요를 들으면서 공상 속 세계에 빠져들곤 했다. 이렇듯 학업을 위해 군대 가기 전까지 2년 동안이나 통근버스와 통학버스를 이용해 등하교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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