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말에 판소리 경연대회를 관람했다. 아내가 대회 진행을 도와주고 있어서 대회를 관람하고 싶었다. 장소는 예전에 판소리 공연을 보러 몇 번 가봤던 곳으로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래서 지하철을 타고 어렵지 않게 찾아갔다. 대회는 주말을 이용해 이틀간 진행되었는데 토요일에 예선, 일요일에 본선이 진행되었다. 또한 대회는 전국규모이지만 판소리만 겨루는 대회라서 규모가 크지 않았다.
일요일에 진행된 본선의 경우에 오전에는 신인부와 일반부가 진행되었고 오후에는 장년부, 단체부, 학생부, 명창부가 순서대로 진행되었다. 심사는 7명의 심사위윈 중 최고점과 최저점을 제외한 5명의 점수를 합산하여 순위를 가리는 방식이었다. 일반부 참가자들 중에서 채점결과 동점자가 나왔는데 대회 규정상 연장자가 상위 순위가 되었다.
경연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판소리를 듣는데도 점심식사 직후에 소리를 들을 때는 졸음이 쏟아졌다. 그래서 초등, 중등, 고등학생들이 겨루는 학생부 경연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대회의 하이라이트는 명창부 경연 때였다. 명창부는 다른 경연부에 비해 참가자 1인당 경연시간이 길었다. 참가자들은 15분씩 판소리를 해야 했다. 그들은 심청가의 심봉사 눈뜨는 대목, 상여소리 등 대회를 준비하며 연마한 판소리를 불렀다.
그런데 한 참가자가 판소리를 열심히 부르다가 중간에 갑자기 멈추었다. 그는 당황해하는 모습을 역력히 비추었다. 아마도 본선에서 잘해야 한다는 중압감과 긴장감에 순간적으로 판소리 대사를 잊어버린 것 같았다. 연습 때의 실력이 나오지 못한 것 같았다.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그는 끝까지 하지 못했다.
경직된 표정으로 퇴장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내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15년 전, 아내와 결혼한 후 판소리 경연대회를 관람하러 전라남도 보성군에 갔었다. 그곳에서 개최된 판소리 경연대회에 아내가 참가했다. 이 대회는 판소리 명창부 우승자가 대통령상을 받을 만큼 판소리 대회 중에서 권위 있는 대회였다. 대회는 보성군에 있는 소리전수관과 실내체육관에서 진행되었다. 아내는 판소리 일반부에 참가했는데 경연장은 보성실내체육관이었다.
대회는 이틀 동안 진행되었다. 첫째 날에는 예선을 치르고 둘째 날에는 예선을 통과한 참가자들만 본선을 치렀다. 아내는 일반부에 참가신청을 했다. 일반부는 15분 동안 소리를 해야 하는데 예선은 자유곡, 본선은 제비 뽑기로 선택된 곡을 불러야 했다. 나는 아내가 예선이라도 통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선에 오르기만 한다면 최소한 장려상이라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예선 날이 되었다. 경연장소가 실내체육관이라서 그런지 빈자리가 많아 관람하기에 편했다. 심사위원석에 성창순, 성우향 명창과 같은 유명한 인간문화재 선생님들이 보였다. 이 중에는 아내를 가르치고 있는 스승도 있었다. 아내가 대회에서 부르겠다고 신청한 곡은 춘향가의 '춘향이 그네 타는 대목'이었다. 참가자들마다 판소리를 부른 후에 잠시 기다리면 전광판에 심사위원들이 매긴 점수가 나타났다. 심사위원들이 매긴 점수들 중에서 최고 점수와 최저 점수를 뺸 나머지 점수들을 더한 점수가 참가자의 총점이 되었다.
아내 차례가 되었다. 아내가 북을 칠 고수와 함께 무대에 입장했다. 이내는 목을 가다듬고 고수를 한 번 쳐다보았다. 아내의 표정은 긴장된 듯했다. 오랜만에 참가한 대회이고 규모가 큰 대회여서 그런 것 같았다.
"백백홍홍 난만중 어떠한 미인이 나온다 해도같고 달도같은 어여쁜 미인이 나온다 저와 같은 계집아 다리고 함께 그네를 뛰랴허고 농림숲속을 당도허여 장장채송 그네줄에 휘느러진 벽도가지 휘휘칭칭 잡아매고 섬섬옥수를 번뜻들어 양 그네줄을 갈라쥐고..."
아내는 준비한 춘향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몇 분쯤 지났을까. 춘향가를 부르다가 갑자기 멈추었다. 그러더니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 경연장이 조용해졌다.
"......"
아내가 마음을 진정시켰을까. 아내는 춘향가를 다시 이어서 부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경연 종료소리가 울렸다. 잠시 기다리자 전광판에 심사위원들의 점수가 나왔다. 그다지 좋지 못한 점수였다. 춘향가를 부르다가 중간에 멈추는 큰 실수를 했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수개월 전부터 준비했다. 대사를 외우고 고수의 장단에 맞춰 소리를 하는 연습을 반복했다. 그럼에도 대회에 참가해서 실력을 발휘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판소리 경연대회를 관람하다 보면 가끔은 참가자들의 예기치 못한 실수를 볼 때가 있다. 15년 전 보성판소리 경연대회 일반부 예선에 참가한 아내나 올해 4월 말 개최된 전국판소리 경연대회 명창부 참가자의 실수하는 모습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