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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시(詩)어터 프로그램 참여기

신중년은 시 쓰기 딱 좋은 나이다

by 선명이와 지덕이

여러 가지 이유로 예술을 접하지 못한 사람들이 예술을 접하면서 예술에 대해 호의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경우를 본다. 예술을 접하면 즐거움을 얻고 무료한 일상에 활력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에게 예술은 생활의 윤활유와 같다. 2024년 가을에 내가 참여했던 즉흥시(詩)어터 프로그램은 금요일마다 느낄 수 있는 생활 속의 윤활유 같았다.


2024년 8월 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주관한 아르떼 아카데미 연수 중에서 '자기배려:나를 위한 예술(즉흥연극)'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1박 2일의 기간 동안 참여자들은 자신의 삶을 즉석에서 연극이라는 예술극으로 표현했다. 이러한 연극에 대해 다른 참여자들과 공감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참여자들은 연극을 통해 각자의 삶에 대해 생각하고 돌아볼 수 있는 기회였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니 좋은 프로그램을 한 번만 경험하기에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강사님 중 한 분이 9월부터 10주 동안 진행하는 즉흥연극 프로그램이 있는데 참여자를 모집한다고 말했다. 프로그램명은 '즉흥시(詩)어터 시 쓰기 딱 좋은 나이'였다. 창작집단 지구별여행자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50세 이상의 신중년이 대상이었다. 딱 내 나이에 맞는 프로그램이었다. 내용을 확인하고 신청링크로 신청했다. 하지만 혼자 가기에는 멋쩍을 것 같았다. 그래서 때때로 만나던 지인에게 추천을 해서 함께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지하 일층 공간에서의 처음 보는 사람들과의 어색한 만남. 참여자들은 서로 닉네임을 부르고 이름을 알리지 않았다. 공간 내부는 소극장처럼 아기자기해 보였다. 강사들의 강의를 듣기만 하고 소통이 적은 프로그램들과 달리 즉흥시(詩)어터 프로그램은 참여자들의 생각을 나누고 연극으로 표현하는 것을 지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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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차 수업부터 4주 동안 참여자들은 수업 공간을 거닐면서 주변에 보이는 사물들 중 하나를 선택했다. 가랜드(Garland), 빔 프로젝터 등 참여자들이 선택한 사물들은 다양했다. 선택한 사물에 대한 마주침, 관찰, 만남, 헤어짐을 주제로 한 주에 하나씩 시를 창작했다. 나는 주변을 돌아보다가 사물 중에서 전자기타가 눈에 들어왔다. 왠지 고급스러워 보이고 곡선이 멋있어 보였다. 선택한 사물에 대해 시를 작성할 짧은 시간이 주어졌다. 참여자들은 자신만의 연륜이 묻어 난 경험과 생각을 시에 반영하여 작성했다.


전자기타

지하 공간을 걷다가
문득 눈에 띄었다.
So So 약간의 어색함.
사람들이 걷고 있고 주변이 산만하다.
시각적 끌림이 있었다.
좋아 보였다. 비싸 보였다. 마음이 움직였다.
크지 않고 곡선이 멋진 제품.
그래서 탐났다.


참여자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로 익숙해져서 수업에 불참한 사람이 생기면 궁금해하기도 했다. 사물에 대한 것만을 시로 표현한 것은 아니었다. 6주 차 수업부터는 빨강, 파랑, 초록에 대한 이미지를 찾아보고 자신의 생각을 연결하여 시를 창작하는 시간을 가졌다. 참여자들은 스마트폰을 열어 제시된 색깔에 대한 내용을 검색한 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글로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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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중에는 몸짓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하여 스스로를 몸치라고 생각하여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관객들 앞에서 혼자 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나도 그렇다. 강사님들은 나를 포함한 이러한 부류의 참여자들을 배려하였다. 이로 인해서 수업이 융통성 있고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될 수 있었다.


어렸을 때의 추억을 떠올려 시를 쓰기도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함박눈이 내리던 밤, 집 마루에 걸터앉아 하늘에 떠 있는 달을 쳐다보았다. 손수 도화지로 매우 엉성하게 만든 망원경으로 말이다. 달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동화 속의 모습이 떠올랐다. 달에는 공기와 물이 없어서 생물이 살 수 없다. 하지만 동심으로 바라본 머릿속에는 토끼와 계수나무, 금도끼, 은도끼가 상상되었다. 시를 쓰면서 동심으로 돌아간 듯했다.


망원경과 달

눈 오는 날 볼록렌즈를 통한 달에는
금도끼 은도끼를 든
계수나무 밑의 토끼가 내 눈에 들어왔지.
망원경 렌즈 속에는
곰보 같은 형상이 보였지만
내 눈에는 동화 속의 토끼가 보였지.
비록 도화지로 만든
망원경의 렌즈가 땅에 떨어져 깨졌지만.


10주 차 때는 참여자들이 지인들을 초청해 즉흥연극을 보여주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기 위해서 9주 차 때 발표를 위한 리허설을 했다. 마지막 10주 차가 되었을 때 참여자들은 공간을 꾸미고 작은 공연을 했다. 작은 공연이란 초대된 지인들이 시를 창작하고 작성한 시 내용을 바탕으로 참여자들이 즉흥적으로 연극을 하는 것이었다. 초청한 지인들 앞에서 연극을 하니 평소보다 힘이 났다.


10주 동안의 수업을 들으면서 참여자들이 쓴 시를 듣고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공감하며 소통할 수 있었다. 또한, 매 주마다 그럴듯한 시 한 편을 쓸 수 있다는 점과 연극을 통해 삶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즉흥시(詩)어터 프로그램을 통해 참여자들은 관객이 되었고 연기자가 되었다. 그리고 시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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