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없어>, 키티 크라우더
저는 오후 두 시면 학원에 출근해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에게 영어를 가르칩니다. 매일 학원에 제일 먼저 오는 사랑스러운 학생이 한 명 있어요. 그 어린이는 아무도 없는 교실에 들어와 해사한 얼굴로 제게 인사를 하고는 친구들이 올 때까지 낙서 놀이를 합니다. 칠판에 목적 없는 그림을 그리며 제게 질문을 던지기도 하지만 어떤 날에는 보이지 않는 친구와 대화를 하기도 해요. ‘너는 그랬어?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해. 자, 이건 이런 그림이야.’ 저는 결코 알아듣지 못하는 둘만의 대화를 신나게 이어가죠. 저는 아이와 보이지 않는 친구의 숨으로 가득 찬 교실의 공기를 좋아합니다.
여러분들도 이와 비슷한 기억이 있지 않은가요? 저도 제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니 종종 가상의 친구와 홀로 대화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천성이 내향적인 탓에 내가 만들어 낸 친구가 진짜 친구보다 더 편했어요. 그 친구는 누구보다 내 마음을 잘 알아주었거든요. 아마 ‘나’에게 ‘없어’도 그런 친구인 듯합니다. 언제나 기분이 좋은 없어는 나에게 못된 말을 절대로 하지 않는 친구거든요.
없어는 나에게 누구보다 중요한 인물입니다. 없어와 어울리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다른 아이들의 시선도 상관없습니다. 언제나 걱정이 많은 아빠와 넬리스 아줌마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존재’죠. 네, 없어는 나에게 存在입니다. 나를 제외한 타인에게는 보이지 않기에 더욱 강력하게 있는 없어죠.
라일라는 없어를 엄마가 있었을 때의 기억이 남겨진 곳으로 안내합니다. 헛간은 엄마가 있던 시절 아빠가 신기한 꽃씨들을 싹 틔우던 곳이죠. 아빠는 라일라가 더는 헛간에 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마 이제는 '없는' 엄마의 기억이 짙게 남아 '있기' 때문인 듯해요. 이곳에서 라일라는 엄마가 좋아하는 히말라야푸른양귀비 꽃을 발견합니다. '엄마는 공주였을까? 왜 나는 엄마와 함께 하늘나라로 떠나지 않았을까?' 아빠의 걱정이 옮겨 붙기라도 한 것처럼 라일라도 한껏 풀이 죽습니다.
혼란스러운 마음에 나는 없어에게 못된 말을 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 없어는 감쪽같이 사라지죠. 그래서인지 식탁에 둘러앉은 아빠, 나 그리고 넬리스 아줌마의 얼굴에 걱정이 한 꺼풀 더해졌어요. 없어가 사라지고 며칠 뒤 흰눈썹울새를 만난 나는 없어의 조언처럼 히말라야푸른양귀비 씨앗을 정원에 뿌리기로 해요. 정성을 다해 겨우내 꽃이 뿌리를 무사히 내리도록 보살핍니다. 그리고 마침내 봄이 문턱까지 찾아왔을 때 없어가 정원에 라일락 나무를 가지고 나타난 것을 발견하죠.
이때 없어가 가지고 온 것은 비단 라일락 나무만이 아니었어요. 봄처럼 찾아온 없어의 온기를 따라 엄마의 푸른 꽃이 정원에 얼굴을 내민 거예요. 그림책에는 정원을 가득 메운 푸른색의 소박한 꽃이 참 아름답게 그려져 있어요. 아빠의 고용주도 이 광경에 반해 내년에는 자신의 정원에도 이와 같은 꽃을 심자고 말하죠. 아빠는 그 말을 듣자마자 한달음에 자신의 정원으로 달려갑니다. 아빠가 그동안 못 본 척했던 아내의 부재가 분명하게 '있는' 그곳으로요.
아빠에게 정원은 외면하고 싶었던 죽은 아내의 존재였을 거예요. 그리고 나는 그런 아빠를 바라보며 엄마를 애도하고 싶은 마음과 아빠를 걱정하는 마음속에서 혼란을 겪은 듯합니다. 없어는 버려진 헛간처럼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겪는 나를 이해해 주고 가족의 부재를 받아들일 용기를 주었어요. 없어는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나에게는 결코 외면할 수 없는, 혹은 외면하기보단 오히려 직면하고 싶은 무거운 실존인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