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루퉁한 스핑키>, 윌리엄 스타이그
오늘은 좀 솔직하고 과격하게 말할게요. 이번 그림책이 제 안의 비뚤어지고 덜 자란 자아의 심기를 건드렸거든요.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오직 하나였어요. ‘씨발, 그래서 어쩌라고?’ 무엇 때문에 화가 난 줄도 모르겠는 스핑키에게 온 가족이 와서 절절매는 모습이란 웃기지도 않았답니다. 필라델피아가 벨기에의 수도가 아니라고 했다는 걸로 형에게 토라진 모습이란 정말이지 멍청하고 한심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네네, 필라델피아가 벨기에의 수도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의 말이 남들의 의견과 동등한 지위를 갖지 못한다는 게 분했던 거예요. 뭐 어린 시절의 미묘한 감정들을 이해받고 싶은 그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겠죠. 하지만 정말이지 ‘어쩌라고?’ 그 이상의 감상평을 내놓을 수가 없는 책이었네요, 제게는.
누구에게나 그렇듯 제 사춘기 시절에는 아주 놀라운 경험이 많았어요. 엄마랑 싸우고 울적해진 친구의 모습을 목격한 것도 그중 하나였죠. 정말 그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조금도 잊히지가 않아요. 어느 날 친구가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표정으로 학원 책상에 고개를 푹 숙이고 누워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너무 심각한 일이 벌어진 것 같다는 생각에 친구에게 물었죠. 무슨 일이 있느냐고.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이 이거였어요. “엄마랑 싸웠어.”
맙소사. 전 그때까지 세상에서 그렇게 한가롭고 평화로운 말은 들어본 적이 없어요. 엄마한테 욕을 듣는다, 엄마한테 처맞는다, 엄마한테 죽여 버린다는 협박을 듣는다 이런 게 아니라 엄마‘랑’ 싸운다?는 개념이 가능한 것도 놀랍고, 그게 친구를 그렇게까지 우울하게 만든다는 사실도 놀라웠어요. 그게 도무지 왜 그리 우울할 일인지 납득이 안 되더라고요(사실 지금도 안 돼요). 아빠가 엄마의 목을 조른 걸 본 것도 아니고, 엄마가 아빠한테 맞다가 쓰러진 것도 아니고, 아빠한테 맞고 사는 엄마가 술 먹고 나한테 유리그릇을 던진 것도 아니고, 때리는 아빠 피해서 엄마랑 교복만 겨우 챙겨 나와 여관을 전전하며 사발면으로 연명하는 처지도 아닌데 대체 그게 왜 그렇게 우울했을까요?
개인에게는 자신만의 세계가 있고 그 세계의 모양은 모두가 다르다는 걸 아는 지금에도 그때의 충격은 가시질 않습니다. 아마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나 봐요. 그리고 이렇게 제 안의 어느 부분이 덜 자란 상태로 남아있게 된 건 스핑키처럼 사소해 보이는 감정도 사랑으로 보듬어 주는 가족이 없었기 때문이었겠죠(생각할수록 분하네요, 내 부모에게).
이 책은 아마 사회가 말하는 정상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가족의 틀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큰 감동을 줄 거예요. “아무도 스핑키가 자기만의 생각과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중심 주제도 그 아이들에겐 잘 받아들여지겠죠. 하지만 저처럼 소위 말하는 ‘멀쩡하지 않은’ 가정사를 가진 아이들에게는 전혀 와닿지 않는 이야기일 겁니다. 그림책의 주인공들을 자세히 보세요. 전부 백인에 옷차림을 보아하니 못 사는 것 같지도 않고(최소 중산층인 것 같아요) 누나랑 형도 동생을 달래주러 오고(보통 저 나이에는 사이 안 좋잖아요, 싸우느라) 아빠조차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아빠, 엄마, 아이들과 할머니로 이루어진 그야말로 ‘정상 가족’. 으으, 평생을 사회가 정한 ‘정상’의 틀에서 조금씩 벗어난 채로 자란 저는 다시 봐도 너무 싫네요.
부디 이 책을 아무에게나 선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꼭 엄마, 아빠 두 분이 계시고 가정의 경제력은 중간 이상은 되며 가족 간 싸움이란 보통 ‘방 정리‘와 같은 주제로 소소하게 벌어지고 사랑한다고 쉬이 말하는 가정 내에서 자라는 정신 건강한 어린이에게만 추천하시길! <Okay for Now>의 주인공 더글라스에게 이 책을 쥐어준다면 아마 첫 페이지만 읽고는 “Terrific”하며 하수구에 던져 버릴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