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기본 원칙을 되새기고 그 원칙은 지킬 수 있어야
오늘 자 뉴스 중 너무나 기가막힌 소식이 있어서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매체가 교사노조 간부와 인터뷰한 기사에는 요사이 학부모들이 교사를 엉뚱하다 못해 분노가 느껴질 정도의 어이없는 일들로 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고발하는 사례들이 소개되었다다. ‘아이가 자존감 떨어지니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지 말라’거나 ‘자녀가 틀린 문제에 빗금치지 마라’ 등의 사유로 민원을 제기하여 교사가 수업을 하기 힘들게 만들거나나, 심지어 에어컨을 늦게 틀었다고 고발하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작년 서이초 사태이후 교원단체는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에 대한 실효성 있는 조치를 요구했지만 아직까지 현장에서 체감할 정도의 효과적은 대책이 이루어지지는 않고 있어 보인다다.
위와 은 사례들은 대부분 초등학교이 사례가 많지만,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필자도 최근에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고2를 대상으로 진로수업을 하고 있는데, 2학년 담임 중 한 교사가 나에게 찾아와 나지막하게 자기 학급의 학부모가 항의한 내용을 전달해 주었다. 내용인 즉슨, 내가 진로활동으로 학생들의 활동을 지도하면서 진로활동의 일환으로 글쓰기를 제출할 경우 정해진 기한내에 제출하도록 안내했는데 그런 수업내용이 자신의 자녀에게 지나친 압박감을 주어서 학교 다니기 힘들 정도라고 하소연했고 나에게 직접 찾아와 항의하려던 것을 담임이 일단단 막았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얘길 듣는 순간 아연실색하였고, 얼마지나지않아아 화가났다. 그럼 교사가 수업시간에 아무것도 전달조차 하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으라는 것인가!!!. 물론 그 학생의 경우 어느정도의의 특수성을 감안해 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학기초부터 학교부적응 문제로 자퇴를 고려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러한 경우라면 학생이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조치해주는것도 당연히 필요하고 교사의 의무이다. 만약 그런사정을 호소하고 배려를 부탁했다면 제출기한을 연장한다든지의 예외적 조치를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아예 아무것도 제출하기 싫다면 그것도 그 학생의 사정상 발생한 일로 받아들이면 된다. 하지만 이건 분명 다른 경우이다. 배려가 부족해서의 문제가 아니라, 수업자체가 진행되지 못하도록 하는 행위이다. 그 학생이 힘들다고 전체학생에게 분명히 공지해야 할 내용조차 입에 재갈물리듯 전달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은 기본적으로 교육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그럼 도대체 교사가 왜 필요한것인지 모르겠다.)
이러한 학교의 상황에서 대두되는 문제는 부당한 요구와 항의로 인하여 ‘정상적인 수업행위’가 이루어질 수 없게 되는 점이다. 수학시간에 수학문제 풀이를 하는 것과 같은 상식적으로 지극히 정상적인 교수행위를 가로막는 부당한 요구와 민원은 기본적으로 학교의 존립이유를 없애는 행위이다. 아, 그럼 정상적인 수업행위는 무엇인가. 가장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교실내에서 ‘학습’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 (관성적인 teaching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learning이 이루어지게 해야한다.)거기에는 분명 교사의 교수행위도 필요하고 스스로 학습할 수 있도록하는 학생주도적인 활동도 필요하다. 그런데 단순히 개인적인 어려움을 이유삼아 정상적인 교육활동이 이루어질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물론, 여기에서 ‘개별화 학습’ 을 논의할 필요성을 제기할 수 있다. 관성적인 일방적인 교수행위에 하에서 계획에따라 진도가 나갔던 한국의 교실환경에서 ‘개별화학습’은 사실상 요원한 것이였다. 개별화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학생의 개인적인 역량과 상태에 따라 다른 내용을 다른 속도로 학습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 지금도 ‘개별화학습’이 필요하다는것에 매우 공감하지만, ‘입시’위주의 경쟁적 교실환경에서 개별화 학습을 어떻게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할지에 대해서는 솔직이 잘 모르겠다. (그런데 과연 학부모나 학생들에게 개별화 학습을 하겠다고 할 때 그걸 크게 환영할 지도 의구심이 든다. 다른말로 하면 내 아이가 다른아이보다 늦게 진도가 나가고 더 쉬운 문제를 풀 수 도 있는데 내 우려로는 그럴경우 ‘왜 내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덜 배우게 만드냐’라며 항의할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교실에서의 수업은 입시준비의 과정을 서 일종의 ‘사회화’과정이다. 사회생활에 필요한 공동의 원칙을 배우고 준수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상기의 몰지각한 행위들은 자녀의 사회화를 가로막는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결코 자녀를 위하는 행위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이런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학교의 관리자인 교장(교감은 법률상 ‘관리자’가 아니다. 많은 교감들이 그런점을 망각하고 관리자처럼 행세하지만)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초중등법 제20조에는 교장의 책임으로 분명히 ‘민원처리를 책임지며…학생을 교육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내가 같이 일해 본 교장들 중에 이런일이 발생할 때 학생을 직접 교육하는 교장을 본적이 없다. 대부분 담임이나 학생부 교사들 혹은 교감들에게 떠넘기는 경우가 대다수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실제로 작년 하반기 경기도에서는 교장들이 학생지도를 아예 일선 교사들에게 떠맡기도록 명문화하려다 교사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한심하기 그지 없다.)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를 대하는 일에서도 항상 민원 자체를 수그러들게 만들도록 매우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대체로 교사들에게 무마할 것을 종용하는 경우가 아직도 많다. 기실, 교사편에서 교사를 보호해주기 위해서 노력하는 교장을 보는 것은 직장에서 좋은 상사를 만날 확률과 거의 비슷하다. 매우 익숙한 담론이지만, 교장들의 경우 일종의 ‘명예직’으로서 폼나게 근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다. (물론, 그렇지 않은 교장님들도 있을것이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수업은 교사가, 학생지도는 교장이 맡는 미국식 제도까지 바라는 것은 아니다. 법률에 의거한 자신들의 일을 망각하지만 말아달라는 뜻이다. 출장으로 학교밖을 떠돌고, 결과만 재촉하는 것이 교장의 일이 아니란 말이다. 제발 일선 학교의 교장선생님들은 자신들의 역할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일해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