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DNA화를 부추기는 자료라면
이번 추석에도 대학을 가고자 하는 고3 수험생들은 연휴의 달콤함을 멀리하고 열심히 공부하면서 미래를 기약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학교에 재직하는 교사의 공통적인 업무이기는 하지만 특히 담임, 그 중에서도 고3담임을 하게되면 학급의 학생과 상담을 진행하고, 그 상담의 내용중 상당부분이 대학진학관련 상담에 할애하게 된다. (참고로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학교의 상담구조도 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보다 전문화, 집중화하여 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의 미래를 건설적으로 서로 논의할 때, 모든 학생들의 최종관문이 대학이 될 필요는 없으며. 미래에는 더욱더 대학이라는 상급교육기관은 그 학생의 미래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그러나 선택가능한 옵션 중 하나로 남는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문제는 우리사회가 대학진학을 신호효과를 '극단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그것이 한국식 학벌문화 아닐까) 대학입시의 결과로 결정되는 누군가의 대학은 그 사람의 '사회적 DNA'처럼 낙인 찍혀 평생동안 따라다니게 된다는 것이다. 옛날 소설가 이윤가의 어느 소설에 나온 한 대목 중 이 문구가 기억난다. '에이 그래도 그 사람은 00대학교를 나왔잖아요'. 인종으로 치자면 조상 중 흑인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흑인으로 분류하는 상황처럼 우리는 어떤 대학교를 나오면 영원히 그 대학출신의 인물이 되어버린다. 내가 나온 대학은 대학졸업후의 나의 노력의 결과나 대학졸업을 기점으로 상대적으로 늦게 발현될 수 있는 누군가의 잠재력보다 훨씬 공고하고 길게 그 누군가의 배경을 따라다닌다. 물론, 지금의 한국사회가 예전과 같지는 않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러나, 최소한 고등학교의 교실에서 바라보는 학생들의 시선에서 보여지는 '학벌'은 오히려 기성세대보다 더욱 공고화되고 더 지독하게 세분화되어지는 느낌이 있다. (지금은 대학의 서열이외에 지역간의 단절 즉, 서울권과 지방권으로 나뉘어져 그 분화의 양상이 이중으로 나누어져 있다.)
위의 나의 비유를 이어받아 좀 더 내 멋대로 비유해보자면, 학벌이라는 사회적 DNA가 결정되면 '이기적 유전자'에서 나오는 말처럼 그 DNA속의 유전자(학벌)는(비유의 편의를 위해서 여기서 DNA와 유전자의 포함관계와 차이점은 논외로 하겠다) 자신의 유기체(졸업장을 쥐고 있는 각자)를 이용하여 자신의 존속을 유지하려고 든다는 것이다. 즉, 00대학교 졸업생으로서의 인생이 결정되고 그것은 영구적으로 변치 않는 어떤 속성이되고 지속적으로 사회속에서의 유효함을 유지,존속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단순한 비유긴 하지만 그런 비유를 받아들일때, 상기했던 '나쁜 통계학'으로서의 진학정보가 발현된다. 그때의 진학정보란 대학졸업장으로 영구결정되는 어떤 유전정보를 분류하는 데이터로서 기능하게 되고 이런 분류의 비합리적인 영구결정성(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처럼!)을 위해 기능하는 데이터를 나는 결코 기쁘게 바라볼 수 만은 없다.
유명한 심리학자인 조던 페터슨의 한 유명한 강의에서 IQ에 따라서 직업군을 분류하는 설명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마음이 착잡했었다. 타당성이 있을 수 있으나 만약 그러한 분류법을 그대로 사회에 적용한다면 엄청난 반발이 있을 것이다. (즉, 상관관계에 대한 타당성에는 어느정도 동조할 수 있으나 그것이 인과관계와 같은 '결정론'으로 치닫는다면 거부하게 될 것이다. 적어도 현재의 인간에 대한 이해의 바탕에서는)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인간사회에서 '경쟁'이라는 것의 긍정적 효과를 부인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공정한 과정과 기회를 부여받은 정당한 '경쟁'은 필수 불가결하다. 그러나, 영구결번과 같은 효과를 내는 절대 불변하는 진리로서의 학벌의 부당한 낙인효과에 대해서 경계하며, 특히 그런점이 오히려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므로 (즉, 대학이후의 경쟁에서 거둔 정당한 승리의 가치를 폄훼시킬 수 있는 가능성때문에) 비판하고자 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영화 '가타카'의 내용을 언급하면서 마무리하고자 한다. 나는 가타카라는 영화의 결론은 일종의 열린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우주비행사로서 '부적합'한 자격을 갖춘 주인공이 부단한 자신만의 노력과 속임수를 통해 우주비행에 나서더라도 그 비행이 실제로 부자격자이기 때문에 실패했을 지, 아니면 그의 후천적 노력으로 극복하여 성공하였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선천적, 혹은 기득된 어떤 자격이 영구히 그 사람의 나머지 인생을 재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비합리적일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영화로 부터 읽고 싶다.
누군가의 '과거와 현재'가 미래를 결정하는 함수가 아니라 미래와 경쟁하는 그런 구조의 진행 방정식이라고 생각하기에. 너의 과거와 현재는 지금도 너의 미래와 경쟁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