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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k parks at the park Sep 29. 2023

시골견(犬)심

요사이 시골인심이 예전같지 못하다하는 말이 있지만 시골견심은 여전하다.

뜻하지않게 시골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시골생활에 대한 현실을 확실하게 체감하고 있다. 이전에도 주말에는 주로 시골로 와서 생활했지만 평일에도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시골생활의 좀 더 많은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참고로 본격적으로 시골에서 생계를 영위하는 것은 아니다.) 시골이란 곳에 대해서 익숙하지 않거나 약간의 동경을 가진이들에게 시골이란 곳을 체험해 볼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마도 자연풍경일 것 같다. 도시보다 많은 산과 나무 그리고 풀들(인간이 가꾼 논과 밭도 당연히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시골생활의 장,단점은 분명히 있으나 익숙한 시골의 한 모습 중 유독 나에게 많은 생각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있다. 모든 집들은 아니지만 많은 시골집에 존재하는 그 무엇 바로 시골개들이다 (물론, 동네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요사이는 고양이들도 많다. 하지만 시골의 경우 동네를 배회하는 자유로운(?)고양이들은 많지만 집안에서 사료주면서 캣타워에서 키우는 고양이들은 거의 없다.)


시골개. 요사이 밈으로 유행하는 시고르자브종이란 말도 있지만 사람들의 생각에 시골개들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모습이 있을게다. 대체로 익숙한 모습의 시골개는 진돗개와 비슷한 체형과 모습의 백구,황구들과 소위 발발이라고 부르는, 조금은 체구가 작고 짧은 다리를 가진 누르스름한 믹스견들이 대다수이다. 사람들에게 시골개들은 익숙한 전원풍경의 한 부분으로서 자연스럽게 여겨질 수 있지만 한편으로 약간은 감정이입을 해서 관찰해보면 익숙하면서도 자연스럽지 않은 부분이있다. 


그런말 들어본 적 있을거다. 시골인심이 예전같지 않다고. 그런데 나는 사실 그말은 잘 모르겠다. 일단은 예전, 옛날 비교대상이 되는 그 원형이 될만한 시골인심이란게 정확히 어떤건지 정의하기도 힘들고 체험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그러기에 요즈음 시골에 사는 분들의 언행에서 뭐가 더 예전시골인심과 다른건지 그런건 모르겠다. (사실 전적으로 시골에서 생계를 꾸리고 사는게 아닌 일종의 전원생활처럼 시골에 거주하는 나로서는 애초에 그런걸 얘기하는게 말이 안될 수도 있다. ) 아무튼 그런건 모르겠고, 우스개소리삼아 말하자면 적어도 시골견심만큼은 예전과 똑같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아, 나는 애니멀 커뮤니케이터가 아니다. 시골개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마음을 안다는 말이 당연히 아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적어도 '시골에 사는 개들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별반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시골개들이 사람들에게 느끼는, 그 상상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마음도 변한게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여전히 이번 추석 혹시 당신이 혹시라도 시골을 방문할 때 지나쳐가거나 보게 되는 시골개는 당신을 향해 꼬리치거나 짖거나하고 있을 것이다. 그 익숙한 시골개들의 모습에서 나에게는 익숙해지지 않는 한 현실이 있다.


예전에는 애완견이라고 부르던 우리나라의 개들이 언제부터는 반려견이라는 말로 더 많이 불리면서 폭발적으로 늘었다. 최근(2023년)에 나온 '2023한국반려동물 보고서'란 내용을 보면 반려견 숫자가 대략 500만 정도는 될 것이라고 한다. 앞으로 더 늘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옛날에 비해서는 엄청나게 늘어난 숫자인것 만큼은 틀림없다.그런데 보고서의 내용을 대충 훑어보니 거기에 나오는 반려견에 시골에 키우는 소위 시골개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사람으로 치면 인구통계에 잡히지 않는 투명인간 같은 존재들이 시골개들이다. 시골개들은 개들이지만 반려견은 아니고 그냥 '시골개'이다. 시골개는 시골에서 어떤 존재일까? 키우는 사람마다 시골개란 어떤 존재일까 라는 물음에 대해서 생각이 다르겠지만, 대체로 내가 느끼는 시골개에 대한 단상을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알람(경계)기능이다. 집 안팍에서 사람이나 짐승의 기척이 날 때 짖어서 알려주는 경계기능을 수행한다. 둘째, 대부분 시골개들은 평생을 묶여서 산다. 그들에게 운신의 공간은 평생 몇 평 내외이다. 셋째, 요사이는 시골개들도 사료를 많이 먹는다. (집집마다 사정이 다르다.) 물론, 이 사료들은 대부분 사료의 성분이 정확히 표기되지 않은 최저가의 사료들이다. (대부분 이런 사료들은 알갱이가 매우 동글동글하다.) 넷째, 여전히 많은 시골개들은 자기가 살 던 집에 끝까지 못사는 경우가 많다.(뭐, 얘기하지는 싫지만 팔려간다. 어디로 가는지는 나는 알지만 말하기가 싫다.) 


분명 시골개들도 전통적인 관점에서 주인과 유대감을 나눈다고 생각한다. 시골에서 키우는 개들에게서 분명 주인들은 혼자가 아니라는 채워줌을 받을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시골개들은 주인들과 물리적 접촉을 거의 나누지 않는다. 주인들은 묶여있는 개들을 지나쳐가고 쳐다보는 시간이 많고, 애써 다가가서 재롱을 유도하거나 개들의 반가운 꼬리사위에서 사랑스러움을 느낄 시간이 없는 경우가 많다. 


아, 한가지 분명히 해 두어야 할 것은 시골에서 개를 키우는 분들이 개를 잘못키우고 있다고 비난하는게 아니다. 시골에 가보면 그런말은 사치처럼 들릴 수 있다. 많은 시골개의 주인분들은 고령에도 여전히 농사일을 하시면서 바쁘게 생활하시는 분들이 많다. 농사일은 (나는 해보지 않았지만) 결단코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런 분들에게 도시인들처럼 자신들의 개에게 대해줘야 하지 않나라고 기대하는 건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시골개를 쳐다볼 때 드는 나의 측은함은 솔직이 어쩔 수 없다. 여전히 한국에서 시골개는 반려견도 아니고 유기견도 아닌 매우 독특한 지위를 차지고 있는 개들이다. 반려동물이든 가축이든 구별을 하고 다른 인식을 가지는것에 반감을 가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무튼 최소한 요사이 반려견과는 매우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가령, 갈수록 더워지는 지구의 날씨에 사람도 더 고통받지만 아마도 개들도 더 고통받을 것이다. 그러나 시골개의 생활환경은 똑같다. 시골개는 예전에도 밖에서 작은 집앞에 묶여져 키워지는 개이기에 날씨가 더 더워져도 역시나 뙤약볕 아래에서 묶여서 잘 살아야하는 그런 개들이다. 


나도 개를 키우고 있다. 물론, 정확히는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누리고 계신 부모님이 키우는 개이지만 상기한 바와 같이 시골에 머무를 시간이 많아져서 키우는 개와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이 녀석은 진도에서 진돗개인데 사실 성품은 그다지 마뜩잖은 구석이 많다. 분명 개인데 내가 보기엔 고양이 같은 성품이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만지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사냥개 본능이 강해서인지 경계심도 매우 강하고 사교성도 별로 없다. 그래도 주인이라고 어디갔다오면 펄펄 뛰면서 반갑게 맞이해주는 모습에 평소의 그런 불만이 사르르 없어지기는 하지만.  


이 녀석을 데리고 가끔 집 주변의 얕은 산으로 산책을 가는 길에 내가 말한 '시골개'들을 마주치게 된다. 말한 바와 같이 모든 개들이 묶여있고 나와 우리집 개가 함께 지나갈 때 최초의 한 마리가 짖기 시작하면 주변의 모든 개들이 동시에 짖기 시작한다. 근데 그 중 한 녀석은 가까이 다가가게 되면 짖음이라기보다는 신음에 가까운 소리를 내는 놈이 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의 소질은 없다. 그런데 그 소리가 '경계'나 '싫음'이 아니라 '욕구'의 표현인 것은 알 수 있다. '나도 이 좁은 견장에서 나가서 같이 걷고 싶어요'라는 소리인건 굳이 개들의 언어를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가끔 개들을 마주치는 정도의 사람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애절하게 끙끙거린다. 그때 내 감정은 복잡미묘한 상태에 빠진다. 쉽게 비유하자면 배고픈 아이옆에서 맛있는 크림빵을 들고 있는 심정이랄까. 내가 키우는 개는 '반려견'으로 분류된다. 그래서 내가 산책을 시키고 있지만, 그 산책길옆에 묶여있는 시골개들은 똑같은 개들임에도 묶인삶에서 부럽게 그 산책하는 개를 보고 있다. 이럴때 느끼는 한없는 미안함과 안타까움은 상당히 깊고 오래간다. 

가끔 시골개의 목에 묶여있는 그 '짧은' 줄에 얽혀있는 질기고 '긴'  한국의 시골개라는 멍에를 그 짧은 줄과 함께 끊어버리는 방법은 없을까 곰곰히 생각해본다. 이번 긴 추석연휴에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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