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림어린이 Jul 19. 2023

울었어?

< 제18회 보령의사 수필 문학상 은상 >


“울었어?”


아내가 아들을 낳고 수술 방에서 나오던 날 나를 보자마자 가장 먼저 한 말이었다.


수련을 받던 병원에서 만삭인 아내가 검진을 받던 날 교수님은 예정보다 자궁경부가 많이 열려 있어 아기가 언제 나와도 이상하지 않으니 진통이 오면 바로 병원으로 오라고 하셨다. 진료실을 나오자마자 철이 없는 예비 엄마는 마지막 만찬으로 초밥을 먹고 싶다 하였고 더 철이 없던 나는 뻔한 전공의 월급으로 고급 초밥 집을 급하게 예약하였다. 만삭인 배를 본 셰프님은 먹고 싶은 초밥을 말만 하면 바로 만들어 주셨고 한참을 맛있게 먹던 찰나 아내가 말했다.


“나 배 아파, 아기가 나올 것 같아.”


예정일보다 빠를 것이라 생각은 하였지만 이건 너무나 빨랐다. 그날이 오늘일 것이라고는 차마 생각지도 못한 우리는 급하게 응급실로 향했다. 언제 나와도 이상할 게 없다는 산부인과 전공의 말을 처음 듣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우리는 내심 뜨끔했고 아내는 급히 분만실로 향했다. 아내는 꼬박 12시간 진통을 견디다 태아 심박수가 떨어지니 제왕절개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교수님의 판단 하에 수술 방으로 향했다.


대학 병원 수술 방 입구가 비단 산모를 위한 통로가 아니니 보통의 남편들은 수술 방을 들어가는 여러 중환들과 보호자들의 걱정 어린 분위기에 압도될 법도 하지만 나는 나의 직장에서 대기한다 생각하니 그나마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무사히 출산하였다는 소아과, 산부인과 그리고 마취과 선생님들의 K 메신저를 듣고 나와 장모님 그리고 장인어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아내는 회복실에서 한참이나 시간을 보낸 뒤 수술 방에서 나왔다. 나오자마자 평소 눈물이 많던 아내는 아들을 만난 감격적인 순간의 나의 눈물 여부를 물었고 나는 “울었지”라고 답했지만 사실은 울지 않았다.


인터벤션 전임의 시절 일과 시간이 끝나고 한적한 저녁 동료 선생님과 담소를 나누던 중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 너머의 산부인과 전공의 목소리가 몹시 다급했다. 산모가 산후 출혈로 응급실에서 심정지가 와 심폐소생술 후 회복하였고 급하게 자궁 동맥 색전술(자궁으로 가는 혈관을 막아 출혈을 멈추게 하는 시술)을 의뢰한다는 이야기였다.


“선생님. 그런데 그렇게 환자 상태가 불안정할 때는 수술적 치료를 먼저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요?”라는 내 말에 산부인과 전공의는 “수술 방을 여는 도중 환자가 사망할 것 같습니다.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라고 답했고 나는 다시 급하게 답했다.


안 돼요, 올라오지 마세요! 수술 방을 여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저희도 팀을 불러서 준비하는데 시간이 걸려요. 환자 상태 나빠지면 여기보다는 응급실에서 대처하시는 게 더 좋지 않겠어요? 제가 빠르게 준비해서 다시 전화드릴 테니 그때 올려주세요.”


산부인과 전공의는 “‘우선’ 알겠습니다.”라고 전화를 끊었고 약 1분 뒤에 환자와 대규모 의료진이 혈관 조영실로 밀려 들어왔다. 산부인과 전공의 선생님은 CT를 찍으러 가던 중 내게 전화를 하였고 환자 상태가 좋지 않아 바로 혈관 조영실로 방향을 튼 것이었다. 갑자기 열 명 남짓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나와 동료 선생님은 순간 멍했지만 바로 우리 팀을 호출하였고 “‘혹시’ 몰라 병원에 있었습니다.”라는 답을 받았다.


환자는 운이 좋았다. ‘우선’과 ‘혹시’가 만나 시술은 빠르게 시작됐다. 


개인적으로 산후 출혈의 세 가지 조건이라 생각되는 산모의 창백한 낯빛 옆에서 피를 짜는 주치의시술 방 전체에 퍼지는 비릿한 피 냄새와 함께 시술은 시작되었고 동료 선생님은 당직도 아닌데 같이 들어왔다.


시술이 시작되고 10분 남짓 “나도 같이 하자.”라는 말에 뒤를 돌아보니 교수님이 서 계셔서 연유를 여쭤 보니 “퇴근하는 길에 복도에 흘린 피를 따라왔어.”라는 말은 정말 웃지도 울지도 못할 답변이었다. 그렇게 밑에서는 열심히 자궁으로 가는 동맥을 막고 위에서는 열심히 피를 쏟아부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닌 밑을 막으며 한 물 붓기는 시간이 지나자 효과를 보였다. 혈관을 막으며 30여 팩이 넘는 수혈을 하고 나니 환자 혈압은 점차 올라왔고 환자의 낯빛 또한 조금은 불그스름해졌다. 우리는 해야 할 임무를 마친 뒤 시술방 밖으로 퇴장을 하였고 산부인과 선생님의 진찰이 시작되었다. 채점을 기다리는 어린아이마냥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우리에게 산부인과 선생님은 “흘러나오는 출혈은 더 이상 없습니다.”라는 그 순간 가장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산모를 살리기 위해 혼신을 다한 열 명이 훌쩍 넘는 의료진의 피로도가 한순간에 씻기는 순간이었다. 응급실에서 심폐소생술까지 시행하였던 그 산모는 5일 후 건강하게 두 발로 걸어 퇴원하였다. 혹 추후 산후 조리원 동기들 모임에서 “나 애 낳다가 죽다 살아났어요.”라고 무용담(?)을 말한다면 그건 정말 사실이었다.


당직을 서며 받는 응급콜 중 출혈은 대부분 응급이기 때문에 지체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산후 출혈은 조금 더 특별한 경우라 느껴진다. 기저 질환이 없는 젊은 산모가 삶의 가장 소중한 선물을 얻는 그 순간 산후 출혈로 사망을 한다면 의료진에게도 그리고 보호자에게도 쉽게 납득할 만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과 같은 상황은 정말 극단적인 예지만 몇몇의 산후 출혈을 겪고 나면 출산은 정말 위대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아이를 품고 만나게 되는 일련의 과정과 출산의 순간은 아내의 인내와 희생이 가장 큰 것이었음을 다시 한번 알게 된다.


전임의 시절 당직 중 돌도 안 된 아기와 아내 둘만 집에 두기가 마음에 걸려 지방의 처가에 아내와 아기를 맡기고 혼자 고속도로를 운전해서 올라올 때 가끔씩 이런 생각을 했었다. ‘왜 나는 굳이 인터벤션을 전공해서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는 것인가. 응급과 당직이 없는 영상의학과 의사의 삶을 충분히 살 수도 있었는데…….’ 하지만 이따금씩 만나는 이러한 순간들은 아직은 여러모로 한참이나 부족한 나에게 선택의 확신을 주고 내가 걷는 길을 스스로 존경할 수 있게 해 준다. 또한 여러 분야에서 환자를 위해 고군분투하시는 대부분의 선생님들 역시 비슷하실 거라 미루어 짐작한다.


시술이 끝난 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혈관 조영실을 나서던 찰나 밖에 있던 남편을 마주쳤다. 아이와 처음 맞이한 순간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 그는 산부인과에서 급하게 나오느라 양손에 산모의 짐들을 가득 들고 있었다. 만감이 교차한 그의 눈빛을 마주한 순간 아내의 그때 그 말이 떠올랐다. “울었어?” 순간 나는 아들을 낳은 그날로 돌아갔다. 나는 눈가에 눈물이 글썽이는 채로 아내에게 답했다.


“울긴 왜 울어.”


배경: 사랑하는 아들의 신생아 시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