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자기 전 내가 해주는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나라고 딱히 아는 이야기들이 많지 않으니 슬슬 소재의 고갈이 있었고 점점 창작 동화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 중 아들이 좋아 하던 것은 ‘땜빵맨’ 이야기였다. 스토리는 단순했다. 아들은 동물 친구들과 놀고 있었고 갑자기 악당이 나타나 친구들을 괴롭혔다. 이때 아들은 바위나 나무 뒤에 숨어 땜빵맨으로 변신하여 양손에 바리캉을 들고 악당을 물리친다는 이야기였다.
산에서 꿀꿀이들과 놀다가 갑자기 나타난 호랑이에게는 호피무니를 따라 털을 깎아 창피함을 줘서 물리쳤고, 들판에서는 양과 함께 놀다 나타난 사자의 머리털을 밀어버렸다. 바다 까지 진출한 땜빵맨은 상어의 지느러미를 공격함으로 해서 친구들을 구해냈다. 그리고 늘 마지막에 “오늘도 지구를 지켰군 땜빵맨~” 하고 사라지면서 이야기는 끝이 났다. 똑같은 스토리에 등장인물만 바꿔서 하기 때문에 창작의 고통에 시달릴 이유는 없었고, 아들은 이 이야기를 맘에 들어 했다. 가끔씩 아들은 “할머니 나 사실 땜빵맨이야” 라고 말했고, 나는 귓속말로 “그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 땜빵맨” 이라고 속삭였다. 하지만 그 땜빵맨은 활동 기간은 두 달 남짓이었다.
아들이 돌이 막 지났을 때 이발을 위해 미용실을 데려갔다. 예상은 했지만 아이 머리를 깎는 게 보통일이 아니었다. 나는 애를 안고 아이는 울며 난리치고 머리카락은 사방으로 다 떨어지고……. 아이의 눈물과 머리카락에 내 얼굴이 범벅이 되자 나는 생각했다. ‘내가 배워서 머리를 잘라주자’
인터넷으로 바리캉을 주문하고 유튜브의 여러 선생님들의 강의를 섭렵한 뒤 처음으로 머리를 잘라주고 와이프에게 “나쁘지는 않은데?” 라는 평을 듣고 1년 남짓 아들 전용 이발사가 되었다. 가위도 추가로 구매하고 조금만 더하면 나을 것 같은 마음에 욕심을 내다 땜빵을 만들기도 하고 손을 베인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한번은 바리캉 앞에 클립을 깜빡하고 마무리를 짓다가 양쪽 뒤통수에 대칭적인 땜빵을 만들어 버렸고, 그날은 땜빵맨의 탄생일이었다. 그 땜빵이 눈에 띄지 않고 사라지기까지 약 2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이렇게 시행착오를 겪다보니. 예전 전임의 시절 교수님이 하시던 말씀이 떠올랐다. “백점 맞으려하다가 안하니만 못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그만둘 때가 언제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는 이제는 어느 정도 자연스러우면 그만하자라고 맘을 먹었고, 가위는 쓰지 않고 모든 것을 바리캉으로 해결하는 스킬이 생겼다. 그 뒤로는 잘 잘랐다는 칭찬도 가끔씩 듣게 되었다.
얼마전 아들 이발을 한 뒤 잠깐 화장실을 다녀오니 와이프가 가위로 뒷머리를 좀 더 정리한다고 층을 내놓고 땜빵을 만들어 놨다.(내가 딱 초보 때 하던 실수다)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하……. 이게 지금 뭐냐면 내가 시술을 마치고 나갔는데 옆에서 보조하던 던 전공의가 내가 좀 더 하면 잘할 거 같은데 하고 망친거야……."
와이프는 “이게 죽고 사는 일이야!” 라고 하면서 무슨 말을 그렇게까지 하냐고 했지만 더 나은 비유를 못 찾을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