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3주
# 수능
목요일, 수능이 있었습니다. 일요일, 브런치 글을 올리고 잠깐이나마 수능을 앞두고 있는 아이들을 만나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각자의 목표와 현실 사이에서 걱정하기도, 자신감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괜한 얘기는 되도록 아끼고 그간 고생했다는 말을 해주려 노력했습니다. 그래도 중간중간 의도치 않은 압박을 주기도 한 것 같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조금은 반성했습니다.
15년 전, 저도 수능을 보았습니다. 그즈음은 대체로 희미한 기억인데도 수능 전날과 당일은 또렷합니다. 날씨가 어땠는지, 수능은 어디서 봤는지, 시험을 마친 후 엄마가 교문 밖에서 서성이고 있던 창밖 풍경, 그날 저녁 먹은 양념 돼지갈비까지도 선명합니다. 3년 동안 치른 모의고사 포함 제일 높은 성적을 받았던 저는 제 예상에는 없던 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보상심리 때문이랄지, 자만이랄지, 아무튼 뒤늦은 사춘기에 학과 공부를 내려놓았던 저는 어정쩡하게 놀고, 어정쩡하게 방황하며 대학 생활을 보냈습니다.
아쉬움은 있지만, 후회는 없던 대학 생활을 마치고 제 삶에 펼쳐졌던 가시밭길은 지금 다시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더러는 20대가 아쉬운 모양이지만, 저는 그런 생각 별로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혼돈 속에서 저는 많이 겸손해졌고, 이해의 폭이 이전보다 넓어졌으며, 생각지 않은 삶의 길로 걸어간다 하더라도 꼭 나쁘지만은 않다는 배움도 얻었습니다. 목요일 수능을 마친, 첫 제자 06 아이들을 만나 함께 했던 시간은 20대의 마지막, 그간 고생 많았다고 받은 선물이라 생각합니다.
아이들 모두가 원하는 결과를 얻진 못했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승리의 자축을, 누군가는 패배의 자조를 하고 있겠지요. 섣부른 격려나 위로는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제껏 그래왔듯 아이들이 자기가 처한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고, 자신만의 방법을 통해 잘 헤쳐나가길 바랍니다. 가야 할 때를 아는 자의 뒷모습은 아름답다고 했던가요. 저는 이전보다는 멀찍이 떨어져서, 가끔은 만나 신나게 떠들며, 그저 응원하는 마음으로 아이들 각자의 항해를 저의 배에서 지켜보려 합니다.
# 루틴
월, 화, 목, 금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줌을 켜 화상으로 글쓰기 스터디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건 없고 그냥 얼굴이 보이게 화면을 켠 채 글을 씁니다. 소설 진도가 하도 나가지 않아, 자율이라는 변명으로 농땡이 피우는 제 자신이 견디기 어려워 ^^; 시도해 본 방법인데, 나름의 효과를 느낍니다. 다른 사람이 들어오든 안 들어오든 저는 매일 그 시간은 의자에 앉아 있고, 한 문장이라도 쓰고자 애씁니다. 어떤 날은 생각보다 많이 쓰기도, 어떤 날은 꽉 막혀 몇 자 못 쓰기도 하지만, 그 시간에 앉아 노력했다는 그 자체가 주는 만족감이 제법 충만합니다.
8월 빡세게 굴렸던 루틴은 9-10월 학교 수업을 나가며 약간 흔들렸지만, 11월이 되어 다시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남은 2주가 있어 섣불리 잘하고 있다고는 말 못 하겠습니다만, 저번 달보다는 확실히 나은 상황입니다. 글쓰기도 글쓰기지만 제 삶의 질을 조금은 올려주는 다른 규칙적인 일들도 하루하루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떤 형태로 일하든 저를 조금은 더 안정되게 하고, 종종 즐겁게 하는 루틴은 잘 유지하고 싶습니다. 행복이라든가 평안은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부지런을 떨어야 조금이나마 제게 깃든다는 사실을 아주아주 조금은 알게 된 덕입니다.
# 빅뱅
지디가 나왔던 유퀴즈를 본 이후로 요즘 빅뱅 노래를 많이 듣습니다. 왜 이렇게 좋고, 추억 가득한 노래가 많은 건가요? 장롱 속도 아니고 창고 속ㅋㅋ에 넣어 두었던 먼지 켜켜이 쌓인 앨범을 찾은 기분입니다.
아주 짧고 굵게 빅뱅에 미쳐있던 시간이 있습니다. 2007년 가을에서 겨울, 고1 2학기의 일입니다. 특별한 계기라기보다 '거짓말'이라는 노래 때문이었습니다. 99년 정도부터 많은 아이돌 그룹 노래 들어왔지만, '거짓말'은 확실히 무언가 달랐습니다. 그래서 그다음 미니앨범 <Hot Issue>를 샀고, 빅뱅 다큐를 다 봤고, 중간고사를 망쳤습니다 ㅎㅎ 제가 좀 식어갈 때쯤 '하루하루'를 들고 나온 그들은 어느새 국민 그룹이 되었고 20년 좀 안 되는 시간 동안 다사다난한 일을 겪으며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사건이나 감정은 가라앉고 노래는 남나 봅니다. 특히 <We belong together>, <눈물뿐인 바보>, <Always>, <바보> 같은 저 만의 원픽 노래를 들을 때면 더욱 남다른 기분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이 정도 추억을 선물해 준 답례로 공로상이라도 안겨주고 싶지만 ㅋㅋ 아직 현역이거니와 저에게 그런 자격 같은 건 없으니 참겠습니다. 아무튼 이김에 그 시절 좋은 노래들을 많이 많이 들어보려 합니다. 그리고 혼자만의 응답시리즈이긴 하지만, 언젠간 우리 세대의 추억을 소재로 재밌는 소설이든 시나리오든 꼭 써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