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작이 Nov 20. 2024

낭비되는 세금

299일 차.

해마다 이맘 때면 멀쩡한 보도블록을 파 뒤집는 일이 발생하곤 합니다. 어제까지 수시로 다니던 길이었으니 어떤 상태였는지 모를 리가 없습니다. 완벽한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깨진 곳 하나 없던 곳이었습니다. 내구연한이 어느 시점까지인지는 모르겠으나 최소 몇 년은 거뜬히 사용하고도 남을 만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바삐 길을 걷다 보면 사람들이 보도블록을 파 내고 있는 걸 보곤 합니다. 적게는 두 사람에서 많을 때는 다섯 명 이상이 달라붙어 작업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아침부터 요란한 소리를 내 가며 작업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단단히 박혀 있던 보도블록을 파 내는 것도 모자라 멀쩡한 상태의 것을 깨뜨리기도 하더군요.


살아오면서 한두 번 본 게 아닙니다. 심한 경우에는 집 주변에서 여러 곳에 걸쳐 목격할 때도 있습니다. 보행에 불편한 게 문제가 아닙니다. 왜 그렇게 자주 교체하는지 궁금했습니다. 꼭 10월 이후에 부쩍 많이 그런다는 것도 말입니다. 어릴 때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나니 이해할 수 없는 논리로 그 현상을 설명하는 누군가를 봤습니다.


사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다음 해의 예산을 받으려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해야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습니다. 예산이라는 건 세금으로 책정되는 것입니다. 그 말은 곧 최소한 낭비되는 부분은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처럼 자주 목격하는 모습을 보면 세금이 낭비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한 해의 예산을 쓰다 보면 남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꼭 써야 하는 곳에 사용하지 않고 지나쳤다면 문제겠지만, 그만큼 알뜰하게 살림을 살았다는 것이니 그건 오히려 칭찬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산을 쓰다가 남으면 어떻게든 그 해에 다 써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때는 반드시 써야 할 곳인지 하는 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산의 전액 집행이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쓰지 않아도 되는 일에 돈을 쓰게 된다는 것입니다. 멀쩡한 보도블록을 파 헤치는 게 이런 경우에 해당합니다.


1년 동안 살림을 살고 나서 세금이 남으면 반납하고 내년에 다시 세금을 교부받으면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묘한 메커니즘이 숨어 있더군요. 가령 저희 학교의 1년 예산이 10억 원이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꼭 써야 할 곳에만 쓰고 5천만 원이 남았습니다. 일단 그 돈을 반납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다음 해에 예산을 신청하는 순간이 옵니다. 예산 사용 계획안을 할 때 다시 10억 원을 달라고 하면, 교부처에서 '올해 너희는 9억 5천만 원 썼으니 왜 다음 해에 10억이 왜 필요하냐'라고 하며 아무리 많이 줘 봤자 9억 5천만 원 이하로 내려준다고 했습니다. 즉 최소한 같은 액수의 예산을 받아내려면 그 해에 받은 예산은 어떤 수를 쓰더라도 전액 집행해야 하는 셈입니다.


어젠가 아무 생각 없이 버스를 타고 학교로 오다가 군청에서 철교로 이어지는 도로가 너무 깔끔해진 것을 봤습니다. 가만히 보니 아스팔트를 새로 깔았더군요. 차선을 넓힌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차선을 변경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왜 멀쩡하게 있던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새로 깔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군청 앞의 그 길이 부디 특별한 목적도 없이 낭비된 예산으로 닦인 길이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세금은 국민의 혈세입니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먹고 싶은 것 못 먹고 입고 싶은 것 못 입은 채로 뱉어낸 피 같은 돈입니다. 그런 돈이 낭비되는 일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0교시 마지막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