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작이 Nov 20. 2024

사이버 머니, 너의 이름은 월급

주제: 당신에게 월급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누구에게나 그럴 테지만, 제게 월급은 사이버 머니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이버 머니는 사이버 상에서 존재하는 돈을 말합니다. 실제 현금으로는 교환이 불가능하지만 사이버 상에서는 현금과 똑같이 사용할 수 있다고 하는군요. 가령 온라인쇼핑몰이나 게임 사이트 등에서 회원가입을 목적으로 적립해 주는 마일리지 성격의 보너스점수 같은 것 등이 있다고 합니다. 마치 현금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게 사이버 머니의 가장 큰 역할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해당 사이트에서 물건을 구매하거나 게임 혹은 정보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같은 경우엔 매월 17일이 월급날입니다. 세전 기준으로 약 10%의 세금을 제하고 나옵니다. 뭐 사실 이건 저도 어찌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소득이 너무도 명확한 데다 애초에 나라의 녹을 먹고 있는 셈이니 왜 이렇게 많이 떼어 가냐고 어디 따질 데도 없습니다. 게다가 13% 정도의 금액이 연금 적립을 위한 기여금과 의료보험료로 이 금액만큼을 제하고 나옵니다. 예를 들어 명세서엔 5백만 원이라고 찍혀 있다고 해도 실제로 제 손에 들어오는 돈은 385만 원인 셈입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입니다. 보험료, 카드값, 아파트 관리비, 통신 요금 등으로 빠지는 금액이 세전 월급의 1/3쯤 됩니다. 바로 이 돈이 제겐 사이버 머니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물론 그냥 나가는 돈은 아닙니다. 우리가 그만큼 썼기 때문에 나가는 돈이란 걸 알지만, 그래도 제겐 마치 현금 같아 보이지만 현금이 아닌 돈, 현금으로 교환할 수 없는 돈 같이 여겨집니다.


그렇게 해서 월급 총액 중 남은 3~40%의 돈으로 가족 용돈과 생활비로 충당하곤 합니다. 다시 말해서 6~70%의 금액이 제겐 사이버 머니 같다는 얘기입니다. 아이들의 교육비도 다 이곳에서 씁니다. 게다가 매번은 아니라도 생존해 계신 처가 어른들의 용돈도 여기에서 나갑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명색이 월급이랍시고 받아도 무늬만 월급이란 생각이 강하게 들기만 합니다. 막상 월급 전체 금액의 6~70%는 단돈 1만 원도 인출해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월급은 제게 매월 같은 날에 들어오는 사이버 머니 같을 뿐입니다. 녀석이 제게 말을 걸어옵니다.

"봤냐? 이번에도 들어왔다."

"아, 그래. 잠시만 있어 봐."

월급이 들어왔으니 어디 한 번 만져볼까 마음먹던 그 짧은 찰나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어디 인출 얼마, 또 다른 어디 인출 얼마, 하는 식으로 통장에 녀석의 흔적만 짙게 찍혀 있을 뿐입니다. 현금이 아닌 숫자로만 남아 있다는 얘기입니다.


언젠가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생전에 그런 말을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얼마 되진 않아도 노란 봉투에 지폐를 담아 건넬 때에는 그렇게도 뿌듯하기만 하더니, 통장으로 들어오는 시대가 되고 나니 영 재미없더라고 하시더군요. 월급 받는 기분이 전혀 들지 않더라고 하셨거든요. 다른 날은 몰라도 그날만큼은 뽕이라도 넣은 듯 한껏 어깨가 부풀려지곤 했던 그때가 그립다고 하셨습니다. 어차피 저는 처음부터 월급을 통장으로 받던 세대였습니다. 그 와중에도 초임 때 찍혔던 88만 원이라는 실수령액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네요.


어찌 되었건 간에 정년이 연장된다는 소리가 있으니 아직 이 사이버 머니를 150번 정도는 더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월급날이 기쁜 날이고 나름 보람이 느껴지는 날이기도 하지만, 월급날 가장의 어깨가 쫙 펴지는 날이 언제쯤 오게 될까요? 과연 먹구름만 가득한 이 삶에도 희망이 드리워지는 날이 오기는 할까요? 애꿎은 통장만 만지작거려 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글을 쓰는 참 멋진 공간, 라라크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