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풍자만화가인 제임스 서버라는 사람이 한 말입니다. 풍자만화가라는 사람이 무슨 글쓰기와 관련한 말을 하는가 싶을 테지만, 한때 잡지 <뉴요커>의 편집부장을 지낸 그는 평생 동안 소설·만화·수필·우화·동화·희곡·사회시평 등 장르에 구애되지 않고 다양한 작품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잠시 여기에서 글을 쓰는 방식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을 소개하려 합니다. 편의상 그를 김 씨와 이 씨라고 지칭하려 합니다. 먼저, 김 씨는 글을 쓸 때 매우 진지하게 쓰는 것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김 씨는 아무리 짧은 길이의 글을 쓰더라도 깊이 사색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필요하다면 메모도 하고 글쓰기에 필요한 자료도 오랫동안 찾곤 합니다. 단 한 줄의 글도 허투루 쓰지 않는 그는 항상 깊이 생각한 결과를 문장으로 표현합니다. 물론 그렇게 표현했다고 해서 그게 바로 그의 글이 되지는 않습니다. 몇 번이고 뜯어고치는 일을 반복합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당연히 글을 쓰는 속도도 느린 편입니다. 심지어 김 씨는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 며칠을 소요하기도 합니다. 쓰면서 고민하는 것은 보통이고, 다 써놓고도 또 고민합니다. 과연 이 글을 발행해도 될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던 김 씨는 이 정도면 되겠다는 나름의 확신이 설 때 글을 발행하곤 합니다. 몇 날 며칠을 묵혀 세상 밖으로 나온 김 씨의 글은 읽을 때마다 깊이가 남다르게 느껴집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다분히 조금은 어렵다는 생각마저 들게도 할 정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글을 읽으면서 글이라는 건 모름지기 이렇게 써야 한다는 말까지 할 정도입니다. 아마도 김 씨는 글을 쓸 때 패스트푸드처럼 짧은 시간에 뚝딱, 하고 나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이 씨는 김 씨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차이점을 갖고 있습니다. 이 씨는 언제든 어디에서든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글감을 고르는 데에도 채 5분의 시간도 소요되지 않으며, 육필로 쓰든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으로 쓰든 한 편의 글을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써내곤 합니다. 특별히 장소도 가리지 않습니다. 많은 작가들이 추천하는 커피 전문매장에서 쓰기도 하고, 직장에서 일을 하고 난 뒤 남은 시간에 쓸 때도 있으며, 심지어는 지하철이나 기차나 버스 등 대중교통으로 어딘가로 이동하는 순간에도 이 씨는 글을 씁니다. 이 씨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 그의 머릿속엔 온갖 문장들이 여기저기를 떠다닙니다. 아마도 김 씨와 이 씨의 글쓰기 스타일 중에서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글을 쓸 때에는 꽤 집중해서 쓴다는 점일 것입니다.
어쨌거나 이 씨는 가능하면 그 모든 문장들을 일단 옮겨 적습니다. 물론 생각의 속도를 타이핑의 속도가 따라갈 수 없으니 종종 꽤 괜찮은 표현들을 놓칠 때도 있습니다. 처음엔 이런 상황에 대해 이 씨도 안타깝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생각에 젖어 있으면 그 어떤 글도 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놓치는 문장이나 표현에 대해서는 일찌감치 미련을 버리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씨의 글이 가진 최대의 단점이라면 아무래도 속성 스타일이라 그런지 깊이가 얕다는 것이겠습니다.
혹시 여러 작가님들은 두 가지 타입 중 어느 타입에 속하시나요? 네, 맞습니다. 저는 바로 이 씨의 타입에 속합니다. 아니, 저의 평소 글을 쓰는 습관으로 보면 분명 제가 바로 그 이 씨가 틀림없습니다.
물론 저의 글쓰기 방식이 옳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모든 책이나 영화를 봐도 호불호가 갈리듯 글쓰기에 있어서도 각자가 선호하는 방식은 따로 있기 마련입니다. 이건 두 가지를 놓고 어느 것이 더 바람직하다거나 혹은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제단 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 말은 곧 각자가 편하다고 생각하는 방식대로, 혹은 각자가 옳다고 믿는 방식대로 글을 쓰면 된다는 것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또한 그런 욕심은 있습니다. 이왕 글을 써야 한다면 제대로 써야 하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아마도 그건 글을 쓰는 모든 사람들의 작은 욕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만 그 제대로,라는 것이 충족되려면 꽤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점을 반드시 유념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일까요, 제 같은 경우엔 그 '제대로'의 기준이 너무 모호한 측면이 있어, 일단은 닥치고 쓰는 데에 치중하고 있을 뿐입니다.
제임스 서버의 '제대로 쓰려하지 말고 무조건 써라!'라는 말에 제 나름으로 생각한 부분을 더 보탤까 합니다. 아마도 이것은 저의 글쓰기 여정에 있어 하나의 나침반 역할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