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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Dec 24. 2024

1/3의 여정

333일 차.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어딘지도 모르는 멀고 먼 길을 떠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죽음이라는 종착지를 향해 갑니다. 출발점은 서로 달라도 모든 사람에게 주어져 있는 그 죽음으로 말입니다. 다만 흥미로운 건 이 험난한 길이 언제 끝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고, 금방 도달할지 혹은 꽤 긴 시간이 소요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먼 길을 여행할 때면 지난 발걸음의 자취를 더듬어 보게 됩니다. 당초에 계획했던 대로 순탄한 여정을 걸어왔는지 살펴야 합니다. 더러 아쉽거나 어긋난 행로는 없었는지를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그건 지금 걷고 있는 길에 대한 점검 혹은 확신임과 동시에 남은 인생 여정에서 더 나은 길을 가려는 다짐인지도 모르니까요.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지금까지 그 길을 잘 밟아 왔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적어도 사람이라면 그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잘못 들어선 길이 있다면 더 멀리 가기 전에 어서 되돌아 나와야 합니다. 너무 멀리 가 버리면 되돌아 나오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간혹 조금 더 살펴보고 싶었던 부분은 다시 가서 꼼꼼하게 눈과 마음속에 담아 둘 필요도 있습니다.


올초에 저는 매일 1편씩 1000일 동안 글쓰기를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스스로 이 길고 긴 길을 나서겠다고 다짐한 격입니다. 오늘로써 딱 1/3에 해당하는 지점까지 왔습니다. 하루하루 닥치고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여기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생각할수록 아득합니다. 마치 한 편의 꿈 같이 여겨집니다. 아직 다 온 건 아니라고 해도 벌써 이만큼 왔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1000일 글쓰기를 하면서 잘한 부분은 딱 한 가지 있는 듯합니다. 어쨌거나 처음에 계획했던 대로 첫날부터 333일째가 되는 오늘 이 순간까지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최소 1편씩의 글을 써왔다는 점입니다. 글의 완성도를 떠나 일단 제 자신과의 작은 약속을 충실히 이행해 온 점은 잘한 듯합니다.


글이라는 건 분명히 그런 것 같습니다. 글을 쓰는 실력이 느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는데, 쓰면 쓸수록 글은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물론 제가 그렇다고 해서 글쓰기를 우습게 봤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말이 쉬워 1/3의 지점까지 왔다고 했지만, 돌이켜 보면 말처럼 그렇게 수월한 여정은 아니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긴 합니다.


쓰기 싫었던 순간도 분명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삼백 서른세 번의 결심과 실행을 앞두고 아마도 한 다섯 번 정도는 쓰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오는 동안 어느 하루와도 같지 않은 글을 쓰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써야 했으니까요. 막상 글을 써 나가는 데 있어서는 큰 무리가 없었으나, 매일 아침 지하철과 기차 안에서 어제와는 다른 글감을 찾기 위해 몸부림쳐야 했습니다.


어차피 글은, 그리고 글쓰기는 생각난 낱말 하나, 그리고 누군가가 던져준 단어 하나에서 시작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저는 이 까다로운 장애물을 잘 넘어온 듯합니다. 그 덕분에 이제 저는 그 어떤 글감을 만나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지금의 마음 같다면 앞으로도 큰 문제없이 남은 2/3의 여정도 소화할 수 있을 듯하고요.


어쨌건 간에 하나의 목표를 보고 달려온 저에게, 오늘 저는 작은 위로를 건네볼까 합니다. 중간중간 돌아보면 아쉬운 점도 많고, 각각의 글도 이 정도의 수준밖에 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만, 일단은 생각하지 않으려 합니다.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그저 잘했다며, 수고했다며 제 어깨를 두드려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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