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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r O Sep 19. 2024

한 번도 못 간 것보단 한 번이라도 갔다 오는 게 낫지

 3년 전 이혼을 준비하는 나에게 미혼인 18년 지기 친구가 건넨 첫마디였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뱉기 어려운 말을 이 친구는 아무렇지 않게 하더랬다. 친구의 MBTI가 대문자 T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사회생활 가능한가?’ 싶을 만큼 그녀의 공감능력이 의심되던 순간이었다. 이게 이렇게나 라이트 할 수 있는 주제인가 싶었지만 한편으론 그녀의 태도가 어이없기도 하고 꽤나 쌈박한 접근이라는 생각에 이내 실소를 터트린 나였다.


 자의로 결정지은 헤어짐이지만 뒤따르는 아픔과 자책의 무게는 매우 컸다. ‘나는 왜 남들처럼 무난하게 살아내지 못했을까’, ‘나의 외로움과 나약함이 결국 이 비극을 만들어낸 건 아닐까’, 스스로를 미워하며 채찍질해 댔다. 죄책감과 실망, 상심 등은 오랜 시간 나를 들볶으며 쫓아왔다.


 어려운 건 단순히 내 마음을 다독이는 일뿐만이 아니었다. 마냥 홀가분할 줄만 알았던 선택이지만 의외로 여러 부분에서 많은 것들을 고민해야 했다. 내 상처를 돌보는 것은 차치하고 당장 지인들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는 게 맞는지부터 생각해야 했다. 여기에 이 이야기를 전해야 하는 사람들의 범위도 정해야 했다. 어느 정도로 친분이 있는 사람이어야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할 수 있을지 말이다.


 어떤 사람에게까지 말을 해야 하나 정하지도 못했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와 같은 사소한 부분도 신경을 써야 했다.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내가 먼저 선수를 쳐 추후 발생할 불편한 상황(이번 명절엔 시댁 언제 가냐는 오지랖 섞인 질문을 듣는 것과 같은)을 미연에 방지하는 게 옳은 선택일지, 대화상대가 “남편 분은 잘 계시죠?”와 같이 화두를 던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나을지도 고민이 되었다.


 결혼식을 준비할 때만큼이나 선택해야 할 것들이 넘쳐났지만 괴로워하긴 일렀다. 나의 충격적인 근황이, 가볍게 안부나 전할까 싶어 잘 지내냐 묻는 사람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 것 같아 미안했다. 반대로 대뜸 연락해 “나 이혼했어.”라고 고백하는 것도 너무 느닷없는 일 아닌가? 그렇다고 말을 안 하고 있자니 그것 나름대로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결혼 중인지 묻지 않았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뿐인데 마치 상대를 속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결혼하셨어요?”라는 물음에 “아니오.”가 정답일지, “한 번 다녀왔어요.”가 정답일지는 3년이 지난 지금도 답을 내리지 못했다.


 누군가와 새롭게 친분을 쌓게 되는 상황에서도 내 소개에 이 내용을 포함시켜야 할지, 얘기할 필요가 있다면 언 털어놔야 할지, 밝히는 순간부터 상대가 나에게 부담을 갖는 건 아닌지, 첫 만남이니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의도치 않게 연이 이어진 누군가에게 고백 타이밍을 놓쳐 일부러 숨긴 것처럼 보이는 건 아닌지... 한 번 시작된 고민은 멈출 줄 모른 채 쏟아졌고, 이로 인해 나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려 하다가도 한 발짝 물러서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3년이 지난 지금, 꼬인 이어폰 줄 만큼 엉켜있던 속내가 얼마나 풀렸는지 살펴본다. 시간이 꽤 걸렸지만 조금은 끌러진 마음의 실마리는 과연 무엇이었는지 톺아본다. 추를 달아 바닥까지 내려버린 낚싯대에 가벼운 손목 스냅을 간간이 주어 물고기를 낚듯 무겁게 가라앉은 현실에서 간간히 살아가며 나를 끌어올려주자. 나를 아끼는 누군가의 그 우스운 말 한마디 덕분에 나는 오늘도 삶에 1mm 더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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