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들이 보는 프로그램은 항상 정해져 있더라. 누구의 아빠는 뉴스를 누구의 아빠는 야구를, 우리 집에 있는 아빠는 요리, 미식 프로그램만을 본다. 한식대첩, 맛있는 녀석들, 최근에는 성시경의 먹을텐데까지. 그렇다 보니 나도 혼자 있을 때도 자연스럽게 요리 프로그램을 보게 된다.
순수히 먹는 방송인 먹방 스타일보다도 주방을 정리하고 재료를 받아서, 요리를 통해서 손님에게 내는 과정까지를 담은 방송들을 더 좋아한다. 정갈하게 한 상 담는 한식들도, 큰 고기를 덥석 썰어서 양파와 고수를 올려 내는 타코. 수려한 손길로 하나를 쥐어 내는 초밥. 각자의 음식들이 담는 것은 맛이 전부가 아니었다.
밥정은 임지호 요리연구가의 누군가의 어머니를 위해 요리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다큐에서는 어머니들이 못 먹는다는 것들을 먹을 수 있다며 손수 하나씩 따서 요리해서 내놓는다. 우리들 눈에는 그냥 잡초처럼 보이는 풀들을 잘 무쳐서 내놓는 식이다. 긴 시간 인연을 맺어왔던 할머니와 할아버지께 요리를 해드리고, 다음을 기약하는 인사를 건네며 장면을 마무리되었다.
줄거리에 대해서는 다른 브런치작가분들과 많은 글들이 있으니 이쯤 줄인다.
아래 부분에서는 결말을 이야기하는 글들이 포함되어 있다~
제작진 분들이 요리사님의 작업실을 방문하시며 다음 장면은 시작된다. 흐린 날씨에 말을 꺼내는 제작진의 모습에서 슬픔을 짐작하신 것 같다. 작업실 뒤 편에서 담배를 하나 태우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요리를 해주셨던 시골집에 찾아가신다. 새벽도 아닌 전날 밤부터 정성을 다해 직접 모든 제사 음식을 다 해내셨다. 손수 모든 재료를 다듬어 제를 올리는 아침까지 완성해 내는 요리사의 손길이 압도적이었고, 너무나도 존경스럽고, 그렇기에 슬펐다.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의 동기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누군가를 위한다는 동기만큼 큰 게 있을까. 추모의 방식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점에 무력감을 느낀 글을 적은 적이 있는데. 요리사님은 요리사님의 일을 묵묵히 해내시는 방식으로 추모를 하셨다.
그리고 다큐의 여운을 유지한 채로 지금은 어떻게 살고 계신가 프로필을 검색해 봤을 때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는 기사를 볼 수 있었다. 착 가라앉은 나의 마음에 아쉬움이 더해졌던 것 같다. 요리사님이 걸어온 길에 대해서 알아볼 수는 있지만, 다음 행보를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마치 그런 기분이었다. 미술관에 가서 정말 마음에 드는 작품을 본 뒤, 작품설명을 읽었을 때 작가님의 생년월일과 작고하신 날짜가 적혀있을 때. 아쉽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마음. 특히 내가 늦게 미술분야에 입문했고 한국전쟁 이후로 작업하신 분들이 이제는 원로작가. 혹은 이미 별세하신 분들이 있기 때문에 더 아쉬웠다. 아예 근대 작가라면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최근까지도 작업을 하시고 유작을 남기신 분들을 보면 내가 한 발 늦었나라는 생각이 들어 더 아쉽다.
특히 작가의 경우 작품을 통해 어렴풋이 만나볼 수 있지만, 요리라는 것은 결국 먹어봐야 아는 것이기도 하니까... 남기신 영상으로나마 만날 수 있었다.
이 다큐를 본 지 1년이 좀 지난 것 같다. 아직도 마지막 장면을 생각하면 조금 떨리는 기분이다. 너무나도 인상 깊은 영상에 더 좋은 글을 적고 싶어 미루고 미뤘지만, 더 좋은 생각이 났을 때 한 번 더 적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