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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거래빗 Jul 20. 2024

12시간 비행 괜찮을까?

헝가리행 비행기 탑승후기

"경비는 내가 다 댈 테니 같이 가주기만 해줘~"



엄마의 평생소원은 유럽 한번 가보는 것이었다. 나는 그 소원을 이뤄드리고 싶었다.

엄마는 올해로 63세_허리 디스크 통증이 악화되고 있어 자꾸 미루게 되면 못 가는 거 아닐까?

마음에 계속 차오르는 조바심에 더는 미루고 싶지가 않았다.



아빠가 59세의 이른 연세에 당뇨 합병증으로 돌아가셨기에 더욱더 후회할 일들을 만들고 싶지가 않았다.

임종을 지켜보지도 못한 채 마당에서 쓰러져 싸늘하게 식어버린 아빠의 몸,

간발의 차이로 방에 있다가 아빠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한 엄마...모든게 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동백이 질 때는 통째로 툭_하고 떨어지듯 아빠는 찬란하게 꽃피고 툭_하고 다른 세상으로 날아갔다.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 차가운 영안실에서 구멍 뚫린 양말을 신고 있고, 다 헤진 허름하고 남루한 반팔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있던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아빠의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나는 그 뒤로도 계속 악몽에 시달다.

아빠가 눈물 흘리는 모습... 아직도 아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거다.

아직... 난... 아빠랑 풀어야 할 숙제가 많았는데...그걸 다 풀지도 못하고 내 삶의 한조각에서 떼어져 나간 거다. 그걸 어떻게 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빠는 아직도 내게 짙은 어둠이다. 하지만 그 큰산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있었을까. 어디서나 책임감 강하고 주관이 뚜렷한 내가 있을 수 있었을까?

미움도 분노도 옅어지고 지금은 아빠의 인생 한 구석의 슬픔이나 분노 절망 같은 것들을 말없이 찾아가서 토닥여줄 정도로 내가 자랐다. 올해 나이 마흔 하나_아빠의 힘든 삶에 어깨를 내어줘도 되는 나이 이제는 미움도 분노도 다 털어내고 싶다.


 

그래서 더욱더 엄마와의 시간을 한시도 헛되이 보내고 싶지가 않았다. 풀어야 할게 있으면 풀고 같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하고 싶었다. 단 둘이_2022년 겨울 자유여행으로 오키나와에 다녀 온 이후로 엄마와의 '두번째 여행'이다. 지난 여행에서 우리 캐미가 너무 좋았기에 이번 여행도 기대가 되었다.







여행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행동으로 개시할 때가 되었다. 나는 여행 사이트와 최저가 검색 등을 하며 신중하게 여행사를 선택했고 몇 달 전부터 아예 확정예약으로 계약을 했다. 이전에 북유럽 예약을 했다가 최소된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엔 비용이 더 들더라도 확정예약을 하고 싶었다. 확실히 확정예약을 하고나니 마음이 편했다. 취소될 걱정도 없고 그냥 정해진 날짜에 가면 그만이었다. 패키지라서 그런지 자유여행 때와는 다르게 잔신경 쓸 일도 없고 생각 없이 그냥 그렇게 느슨하게 몇 달이 흘러갔다.






그러다 여행 한 달 전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비행기 타는 동안 호흡곤란이 오거나 기절하면 어쩌지?'

'혹시 내가 죽는 건 아닐까?'


머리속으로 최악의 상황들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애써 마음을 달래며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애쓰고 스스로 초조한 마음을 다독였다. 행기 소음을 유튜브로 들어보기도 하고, 명상 호흡 훈련도 했다. 그건 평소에도 많이 하던 거다. 가슴이 두근댈 때마다 호흡하는 훈련을 해왔다. 후하_


기내식은 어떨까_검색도 해보고 가서 먹게 될 동유럽 음식들도 검색해 봤다. 평소 먹는 걸 엄청나게 좋아해서 이렇게 가서 먹게 될 음식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은 안정이 되었다. 내가 비행기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건 미리부터 이런 훈련들을 했기 때문이다. 머리속으로 미리 상황을 연습하는 것만으로도 긴장과 두려움이 누그러졌다.






여행 전날, 엄마는 시골에서 출발해서 점심때쯤 도착했다. 터미널로 엄마를 모시러 가서 같이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고 집에 들어왔다. 여행 전날인데도 엄마랑 식당에서 밥을 먹으니 벌써부터 여행 기분이 났다. 우리는 소풍 전날 마냥 신이 난 소녀가 된 기분이었다.


집에 도착해서 엄마가 들고 온 짐들을 풀고 캐리어에 짐을 싸기 시작했다. 마한테 이번에는 캐리어를 들고 갈 거니 많이 챙겨오라고 했더니 진짜 많이 들고 오셨다. ㅎㅎㅎ 엄마 짐만으로도 삼분의 이 이상이 꽉 찼다. 여행가서 짐때문에 고생하고 싶지 않아서 캐리어를 집에 있던 큰거 하나만 가져가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가방에 둘의 짐을 싸려니 조금 빠듯하기는 했다. 그래도 최대한 꼼꼼히 싸고 안되는 건 배낭에 넣기도 하니 어찌어찌 짐이 꾸려졌다. 오키나와때는 둘다 배낭을 매고 갔었지만 이번에는 엄마가 허리가 아프기도 하고, 나도 작년부터 어깨통증이 시작되어서(지금은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아무래도 캐리어로 가는 편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여행가기 전 (개인적인 걱정들)이 있어서 조금 초조하기도 했지만 난_엄마와의 시간을 일분일초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여행을 가면 얼마나 더 가겠는가... 후회 없이 엄마와의 여행을 최고의 여행이 되게 하자고 마음속으로 돼 내었다. 다른 걱정들은 접어두자!





새벽 5시경 알람소리에 잠에서 깼다. 사실 여행 가기 전날이라 왠지 모르게 싱숭생숭하기도 하고, 가슴이 두근대서 자다 깨다 해서인지 아침엔 거의 비몽사몽이었다.


욕실에 가서 냉수마찰로 잠을 털어냈다. 밖에서 소리가 들리니 엄마도 문을 열고 슬며시 나왔다. 역시나 잘 못 잔 얼굴이다. 짧게 자른 파마머리가 까치집을 짓고 붕붕 떴는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하마터면 웃음이 나올 뻔했다. 훗_


둘 다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힘을 내서 준비를 하고 미리 챙겨둔 짐을 싸들고 얼른 밖으로 나왔다. 6시 10분차를 타야했기 때문이다. 서둘러 터미널로 가서 공항버스가 오길 기다리면서 편의점에 들러 간단한 요기거리를 샀다.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며 수다 떨고 있으니 금새 공항버스가 진입했다.


공항버스도 계속 타보니 노하우가 생겼는지 짐도 척척 싣고 티켓도 척척 찍고, 순조롭게 자리에 탑승하여 부푼 마음으로 공항을 향해 나아갔다. 중간에 휴게소에 내려서 바람도 쐬고 편의점에서 산 요기거리를 먹기도 하고 하다보니 공항으로 가는 3시간이 너무 짧게만 느껴졌다. 어느새 우리는 공항가는 바다 위 다리를 지나고 있었다.



5월 13일 오전 9시 10분 인청공항 제2터미널 땡땡풍선 카운터 부스_공항에 도착하니 월요일 오전이라서 그런지 생각했던 것 보다는 사람들이 덜 붐볐다. 약속했던 장소로 캐리어를 끌고 가서 계약과 관련된 서류 등등을 받고, 2주간 함께 동행할 가이드님과 인사도 했다. 사실 부스에 계셔서 인사는 했는데, 가이드님인지는 몰랐다. 가이드님이 모든 걸 다 하시는 거였다. 부스에서 설명회도 인솔도 모든 걸 다 하고 계셨다. 헝가리 공항에 가면 노랑 우산들고 기다리겠다고 하셔서 그냥 엄마새 쫓아다니는 아기새가 된 마음으로 편안하게 수속준비를 시작했다. 캐리어 짐은 오래간만에 부치는 거라 조금 긴장이 되었지만 체크인 안내 부스에 있던 공항직원분이 비행기 좌석도 좋은 곳으로 지정해 주셨고,(미리 체크인을 했는데, 좌석이 떨어져 버렸다. 그래서 혹시 바꿀수 없냐고 했더니 좋은 곳으로 바꿔주셨다. ㅎㅎ)짐 부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순조로웠다.



 



출국장 가기전 늘 있는 일_


엄마의 지문은 몇 번을 찍어도 안 찍힌다. 늘 있는 일이라 엄마는 지문 찍으러 갈 때마다 "안 찍히면 어떡하지?"를 반복했고, "엄마~ 안 되면 직원 분이 안내해 줄 거니 안심하세요~"를 반복했다. 그런 일을 이렇게 여러번 겪고 나니 엄마도 조금은 무덤덤 해져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난 마음속으로는 엄마가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으면 지문이 닳아서 안 찍힐까? 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 한 켠이 짠했다. 엄마의 인생은 얼마나 고단하고 힘들었을까? 그런 엄마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 아닐까? 코끝이 찡해졌다.


보안검색대를 무사히 통과하고 출국장으로 향했다.  국장에 가서 앉아있으니 이제 정말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진짜 가는구나...'






생각보다 시간은 빨리 흘러갔고, 12시 30분쯤 되니 탑승구가 열렸다. 우리는 창가쪽 자리에 내가 엄마가 가운데석 그리고 끝쪽에 아저씨 한분이 앉았다.  아무래도 밖이 보이는 창가쪽에 앉아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늘 저가 항공기만 타서 그런지 대한항공기가 이렇게 쾌적하고 넓은지 몰랐었다. 예정된 시간이 왔고, 비행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에 무지막지한 속도로 달릴 때가 가장 긴장이 되는데, 여러번의 경험을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는 긴장이 덜 되었다. 마음속으로 '엄청난 속도로 달려간 다음 위로 날아 오를 거야.' 라면서 미리 생각을 해두니까 훨씬 마음이 편안해졌다. 유럽행은 영상도 볼 수 있고 음악도 들을 수 있어서 더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멀미약이 신의 한수였다. 탑승구에서 멀미약을 먹어서인지 비행기를 타자마자 졸음이 오기 시작했다. 약간 졸린 느낌에 긴장이 확 풀렸던 것 같다. 내가 먹었던 약은 이지롱. 잘 들어요. 참고하세요~!)


비행기가 안정권에 들어가고 나는 영상을 이것 저것 뒤적이다 별로 관심가는게 없어서 음악을 들었다. 이루마님의 곡들이 있어서 듣기도 하고, 좀 듣다보니 지루해져서 영상을 뒤적뒤적 거렸다. 그런 동작들을 하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훨씬 풀렸다. 이제 전처럼 숨이 막힐 것 같다거나 당장 뛰쳐내리고 싶다는 느낌은 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갑자기 기류가 불안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한항공기는 저가항공기보다 기류변동에 유연했고, 흔들림이 훨씬 적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가운데 통로석 탈 걸 그랬나? ;;;ㅎㅎㅎ"


그 말을 여러번 반복했다. ㅎㅎㅎ;;


엄마는 생각보다 화장실을 자주 안가셨는데, 난 그래도 조금 긴장했는지 자꾸 화장실이 가고 싶어져서 창가쪽에 있었던지라 옆 좌석들을 지나갈 때마다 끝쪽에 있던 아저씨에게 자꾸만 눈치가 보였다. 흐흐...;;; 엄마도 왠지 모르게 눈치가 보이는지 나를 보면서 슬쩍 민망한 표정을 보이셨다.


그럭저럭 또 시간이 흘러갔고, 어두웠던 실내가 서서히 환해지기 시작하더니 기내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승무원님들은 어찌나 다 예쁘고 멋지던지...승무원 한분은 남자분이셨는데, 근육질 몸에 미남이셨다. 훗~ 그냥 눈호강을 하는 것만으로도 무장해제가 되었고, 긴장이 확 풀렸다.


어느새 우리 순서가 되었고 나는 양식을 엄마는 한식을 주문했다. 기내식 체험도 처음인지라 접시에 담긴 음식들을 보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야~~~엄마~ 왜 대한항공이 좋은 건지 이제야 알겠네요~~~기내식 퀄러티가~~~"


나는 뒷말을 잊을 정도로 입이 떡 벌어졌다. 소고기 스테이크에 웨지감자, 연어 샐러드와 통밀 크래커 그리고 미니 케이크와 식전빵이 나왔고 음료는 파인애플 주스를 마셨다. 엄마는 제육볶음과 밥 상추와 고추, 과일, 오이지 반찬, 미역국 그리고 후식 빵까지 나왔다. 대한항공의 기내식에 반해버렸고, 음식 하나 하나가 정갈하고 너무 맛있었다. 계속 앉아있어서인지 생각보다 금새 배가 찼지만 그래도 이런 호사를 언제 누려보겠냐며 전부다 먹었다. 기분 좋은 포만감이 들었고, 다시 영상시청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나니 12시간 중에 6~7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잘 버텨준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남은 시간도 잘 보낼 용기가 생겼다. 한두시간이 더 흘러가고 간식시간이 되었다. 샌드위치가 나왔는데, 그 샌드위치란 아이가 또 너무 맛났다. 비행기 안에서 먹는 샌드위치 맛이란! 훗~ 샌드위치와 파인애플주스(파인애플은 과일도 음료도 너무 너무 좋아한다.)를 먹고 나서 이번에도 다시 영상시청...ㅎㅎㅎ 먹고 보고 밖에 한번씩 보고...아는 언니가 유럽행 비행기를 타면 사육 당하는 느낌이라고 하더니 그게 완전히 실감이 되었다. 불꺼지면 좀 나른해지다가 불켜지면 밥시간...ㅎㅎㅎ


그렇게 12시간이 지루하고 길었지만 생각보다 잘 지나갔고, 착륙 1~2시간 전쯤에 마지막 식사가 나왔다. 현지 시간에 맞춰서 식사가 제공되는 것 같았다. 헝가리는 저녁을 향해 가고 있었고, 그러니까 현지시간으로는 저녁이 나왔다.


저녁을 먹고 나서 집중해서 못봤던 영상 한편을 보고나니 착륙 몇분전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엄마가 전에 오키나와에 다녀왔을때 착륙할때 귀통증을 호소한 적이 있어서 껌도 씹으라고 하고 물도 마시게 하고 착륙을 위한 준비를 했다. 미리 준비했던 귀마개가 있었지만 엄마는 이어폰도 도움이 되지 않겠냐며 이어폰을 끼고 계셨다. 엄마는 다행히 귀통증 없이 무사히 착륙을 할 수 있었다. 나도 비행기가 공항 활주로에 발을 내리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크게 한번 쉴 수 있었다.






먹는걸 좋아해서 버틸 수 있었던 12시간 비행_후기...무사히 헝가리에 도착했습니다. 스스로도 너무 대견해요. 그동안 열심히 책도 읽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명상 호흡훈련 등을 한 보람이 있었어요. 다음 후기에는 헝가리 야경이야기 들려 드릴게요. 여러분의 응원이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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