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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알 Mar 04. 2024

좀 더 적극적으로 헤어져 보자

이별을 마주하는 자세

“누나, 나랑도 한 번만 사귀자. 나도 외국 나가고 싶어.”


얼핏 보면 연하남의 수줍은 고백 같지만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건 외국에 나가고 싶다는 대목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내가 만나던 남자들은 공교롭게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두 외국으로 떠났다. 미국, 캐나다 어학연수, 아르헨티나 유학, 호주 워킹홀리데이까지. 떠나보낸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 나랑 사귀고 해외로 갔다는 점? 사주에 亥水(해수)를 깔고 앉아 본래 역마살을 타고난 운명이라는데. 내가 만나는 남자들이 내 역마살을 가져가기라도 하는 건지 꼭 사귀기만 하면 해외로 가버린다. 농담 반. 진담 반. 해외에 나가고 싶으니 자기랑 사귀자는 지인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

 

사실 어린시절 떠나는건 언제나 내 쪽이었다. 부모님을 따라 멋모르고 처음 외국에 나갔을 때가 그랬고, 그곳의 생활에 겨우 익숙해졌을 즈음 다시 호주로 유학 갔을 때, 또 갑작스럽게 한국에 들어와야 할 때도 그랬다. 이별은 언제나 나의 선택이 아니었다. 천재지변과도 같았다. 벌어지면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것. 그래서일까. 나는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여행지에 적응할 즈음 떠나는 여행자처럼 삶의 터전이 익숙해질 때쯤 떠나야 했던 난, 마음 한 켠 조용히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다시는 친구들을 볼 수 없을 거란 직감 때문이었을까?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친구들이 써준 롤링페이퍼를 읽으며 엉엉 울었다.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고 슬프지 않은 건 아니니까.

 

떠나는 사람에서 떠나보내는 자가 되었을 때 이별은 오히려 쉬운 것 같았다. 특히 롱디는 비자발적인 이별을 하기에 너무나도 좋은 핑계였다. 내가 헤어지자고 했지만 해외로 가버린 건 너니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우리는 그냥 피치 못할 상황 때문에 헤어진 거야. 친구들도 마찬가지. 참 신기하게도 내 친구들은 하나같이 너무나도 글로벌했다. 떠날 사람만 쏙쏙 골라서 만날 운명인 건지. 아니면 이것도 역마살의 영향인 건지. 다들 미국, 캐나다, 호주, 아일랜드, 이탈리아 등 세계 각지로 떠나버렸다. 이런 일이 빈번하게 반복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슬프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 시작했다.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서 우리가 다시는 못 만날 건 아니니까.


생각해 보면, 진짜 슬픈 이별은 그것이 영원한 헤어짐이라는 사실이 전제되었을 때인 것 같다. 서로 다른 가치관이나 바꿀 수 없는 부분으로 인한 결별, 믿었던 사람의 배신으로 인한 파국 등을 경험하며 세상엔 비자발적인 이별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 자발적으로 결단을 내려야 하는 힘든 이별도 있다는 걸 점점 알게 되었다. 특히, 온전히 내 마음을 다 주고 난 뒤 완전한 이별을 맞이했을 때의 상실감은 너무나도 컸다. 그래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언제든 작별할 마음의 준비를 하며 사람을 만나야겠다 싶었다. 그편이 내가 상처를 들 받을 테니.


하지만 당연하게도, 마음을 먹는다고 내 뜻대로 되는 건 아니었다. 세상사 혼자 사는 게 아니다 보니 잘 맞는 사람도 있고 마음을 안 주려고 했지만 어느새 정들어 버린 사람도 있었다. 반대로 소중하게 생각했던 이의 의외의 면에 상처받고 실망하는 일들도 생겼다. 그럴 때마다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정신을 차려보면 다시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그들이 부디 좋은 사람들이길 염원하면서. 사람은 결국 겪어보지 않는 이상 모르니까. 만나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만 만나면 되지. 많은 부분 비자발적 이별로 점철된 인생이지만 조금은 더 자발적으로 또 적극적으로 헤어져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헤어질 결심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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