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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그 부츠의 불편한 진실

저작권의 양면성

by 아브리
‘어그’ 부츠를 아시나요?

어렸을 적 내가 가장 갖고 싶었던 신발을 꼽으라면 단연 어그 부츠일 것이다. 미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였다. 날씨가 쌀쌀해질 때쯤이 되면 여자 아이들은 모두들 약속이라도 한 듯 어그 부츠를 신고 왔다. 나만 없는 어그 부츠. 너무나 갖고 싶은 마음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부츠를 사러 갔지만, 터무니없는 가격에 브랜드 없는 저렴한 부츠를 가지고 돌아왔다. 주모님의 사정은 이해하지만 아직까지도 그때를 생각하면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걸 보면 나는 어그 부츠에 진심이었나 보다.


그래서일까? 재작년 가을 남편과 시카고로 여행을 갔을 때 마침 블랙프라이데이가 겹쳐 상가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때 나의 눈에 들어온 매장은 다름 아닌 어그 매장이었다. 다른 매장에 비해서도 한참이나 더 줄이 길었다. 구경해보고 싶다는 나의 말애 남편은 흔쾌히 응했다.


그렇게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렸다. 나의 뒤로 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섰다. 엄청난 할인이라도 하나, 궁금해하며 드디어 나의 차례가 돌아왔다. 매장 안으로 들어서 주변을 둘러보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1년 중 가장 큰 세일을 한다는 그 유명한 블랙 프라이데이에, 어그는 아무런 할인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매장에 들어가려 줄을 서고 있었다니. 그러나 그것도 그럴 것이, 할인을 하지 않는다고 사람들이 사지 않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마다 종이 가방 서너 개를 거뜬히 채워 나가는 모습을 보며 나도 실망감은 뒤로 한 제품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사실 이미 한참 전부터 점찍어둔 제품이 있었기에 답은 이미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클래식하면서 나의 니즈를 완벽하게 충족하는 제품. 남편은 그런 나를 보며 원하던 부츠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주겠다 하였다.


단 1%로의 할인도 없이 원하던 부츠를 구매하였다. 비싸도 너무 비싼 가격에 눈을 질끈 감고 결제를 해야 했지만 기분이 좋았다. 어릴 적 꿈을 손에 넣은 기분이었다.


휴일이 끝나고 다음 날, 회사에 어그 부츠를 신고 갔다. 사실 까먹고 있었는데 주변 반응이 뜨거워 괜히 더 기분이 좋아졌다. 나를 따라 회사 동료 두 명이 똑같은 부츠를 샀을 정도니 말 다 했다.


얼마간 지난 뒤, 나를 따라 똑같은 부츠를 구매한 동료가 그 후 어그 부츠에 꽂혀 이번에는 타즈를 구매하려고 한다고 했다. 아주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는 말에 나 또한 타즈를 눈독 들이고 있었는지라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이게 웬걸, 동료가 보여준 웹사이트는 짝퉁 판매 업소였다. 동료는 로고까지 똑같이 찍어 주는 곳이라며 신이 나 있었다. 같이 사자는 제안에 거절했다. 그러자 동료는 대기업은 브랜드 이름을 팔아 품질 낮은 제품을 비싸게 팔아먹는데, 그에 비해 품질값에 상응하는 짝퉁을 사는 것은 문제 되지 않는다며 변호했다.


일정 부분 동의하는 바이다. 똑같은 기능을 하는 물건임에도 순전히 이름값을 위해 더 많은 금액을 지불하는 것은 사치이다. 보다 저렴하면서 유사한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밥 하나까지 똑같은 디자인에 유명 브랜드와 똑같은 로고를 산다는 것은 마음에 걸렸다. 차라리 로고나 네임벨류가 없는, 독단적인 제품을 사고 싶었다. 대기업에 반항하고 싶은 마음도 이해하나, 그렇다면 카피보단 작은 기업을 응원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 싶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미술 전공의 룸메이트 덕인지 저작권에 대한 인식은 철저한 편이다. 남 일 같지 않기 때문이다. 실수도 아닌 고의로 저작권을 침해하는 것은 고민할 가치도 없는 문제였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디자인이라는 창작의 영역을 존중하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그들의 저작권을 지켜주고 싶었다.


그렇게 타즈를 향한 나의 마음은 잠시 접어두었다. 그로부터 1년 뒤, 나의 어그 사랑은 계속되어 돌아 올 겨울을 대비해 다시 타즈를 눈독 들이고 있었다. 그때는 미처 몰랐다. 내가 다시는 어그를 거들떠도 보게 되지 않을 줄이야.




제품에 대해 좀 더 알아보면서 ‘어그’라는 회사에 대해 찾아보게 되었다. 약간의 검색만으로 나는 곧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저작권의 양면성을.


우리가 흔히 아는 ‘어그’ 부츠는 미국의 대형 회사인데, 본래 호주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호주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서핑을 즐겨하기에 이때 발을 따듯하게 보호해 줄 목적으로 어그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미국의 한 대기업은 이 어그를 보고 가능성이 있다 판단하여 브랜드화시켜 성공을 시킨 것이 지금의 어그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미국의 대기업이 어그를 상업화시킨 것까지는 좋으나, 그들이 ‘어그’라는 영문 단어 자체를 상표화 시키며 독점해 버린 것이다.


호주 입장에서는 굉장히 황당했던 것이, 호주에서 ‘어그’라는 단어는 일종의 ‘운동화’와 같은 명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미국 대기업이 단어를 상표화 시켜버리는 바람에 ‘어그’를 ‘어그’라 부르지 못하고 ‘양털로 만든 신발’이라는 식으로 풀어 설명해야만 어그 부츠를 판매할 수 있었다. 홍길동 신세가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자신의 문화를 한 순간에 빼앗겨 버린 호주는 당연히 이를 바로 잡으러 나섰으나. 돈으로 휘감은 미국의 대기업을 이기기는 역부족이었다. 호주에서는 승소하였지만, 미국에서는 패소하는 바람에 오늘까지 호주의 어그 매장들은 호주에서 운영하는 현지 매장을 제외하고는 온라인상을 포함한 매장에서 제품을 어그라고 명명하지 못한다.


저작권은 좋은 방패가 되는 만큼, 날카로운 무기도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너무나 뚜렷한 실체가 있는 것이었다. ‘ㅋ누군가의 고유한 것‘이지만 파는 사람 없이도 살 수 있는 것이었다.


어그 부츠의 실체에 대해 알게 된 후, 호주 매장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진짜 어그‘를 판매하는 것에 자부심을 가진 회사들이었다. 호주에서 처음 만든 어그의 목적 그대로, 편안하고 따듯하게 100% 호주산으로, 양가죽으로 만든 진짜 어그. 그중 내가 원하는 기준에 가장 부합하는 제품을 골랐다.


해외 배송임에도 빨리 도착해 놀랐다. 디자인도 마음에 들고 만족스러운 구매였다. 무엇보다 대기업의 저작권도, 도리어 그들이 빼앗은 호주의 저작권도 모두 존중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타즈 스타일의 호주산 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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