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했지만 가난을 대물림 받지 않았다
물론, 내 자식은 나와 같은 강박으로부터 자유롭고, 조금 더 오랫동안 아이다운 아이로 크길 원한다. 하지만 내 인생은 후회 없다.
지난주 1편에서 이어집니다.
내가 가난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었던 이유는 사실 부모님 덕분이다. 부모님은 가난을 선택하셨기 때문이다. 당신이 추구하는 인생이 있었고, 그에 맞추어 재산을 처분한 후 미련 없이 가지고 계신 모든 것을 내려놓으셨다. 내가 기억하는 모든 순간 두 분은 그 길을 묵묵히 걸어오시고 계신다. 때때로 답답하고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그분들의 고집은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생각이 들었고, 자연스럽게 가난이란 선택을 존중하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 가난은
대물림이 아니라 희생이었다.
부모님으로부터 익힌 가난은 궁핍한 것이 아니라 겸손한 것이었고 나는 결핍이 주는 배움을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었다.
옷 한 벌 새로 사지 못해도, 화장실이 지하에 있어도, 넷이서 삼겹살 2인분을 눈치 보며 먹거나, 집에 온수가 안 나와도, 집에 세탁기 하나 없고, 물도 흙탕물이 나오고, 집에 바퀴벌레와 개미떼가 있거나, 심지어 전기나 물이 끊겨도, 나는 삶이 궁핍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참 신기한 일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가난은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사회에서 뜬구름 잡는 소리 같겠지만, 나는 진심이다. 부모님은 지갑은 가난할지언정 마음은 풍족한 분들이기 때문이다. 돈 때문에 가정에 불화가 일어난 적이 없다. 오히려 두 분은 돈에 대해 더 각별히 주의하셨다.
부모님께서는 아주 작은 것이라도 욕심내지 않으셨다. 때문에 욕심 많은 딸만 안달 나기도 했다. 두 분은 자랑하는 법이 없었고 등 떠밀려 얘기하게 되더라도 최대한 부가설명을 빼고 말씀하셨다. 당연히 자식 자랑 하는 법도 없어서 내가 잘하면 잘할수록 입을 더 다무시는 바람에 서운하기까지 했다. 이제는 포기했다.
돈을 가지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것과, 가질 수 있지만 가지지 않은 것에 차이가 아닌가 싶다. 부모님께는 충분한 능력과 배경지식이 있었다. 그 부분을 확실히 알고도 포기했기에 더 마음의 여유가 있으신 게 아닐까 싶다.
두 분의 또 다른 특징은 돈이 없다고 해서 안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배움에 있어서는 아끼지 않으신다. 부모님 두 분 모두 현재도 학업을 이어나가고 계신데 그것이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 꾸준히 공부하신다는 것은 그만큼 생각이 발전하고 열려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부모님과 나와의 소통에도 크게 도움을 준다. 부모님과 의견을 서로 나누고 가끔은 대립하며 다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
솔직히 말하건대, 나에게 부모님과 같은 삶을 살 수 있냐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아니요”이다. 하지만 나는 가난한 부모님 덕분에 얻은 게 많다.
어쩌면 가난이 대물림 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삶의 방식이 대물림 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