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브리 Nov 09. 2024

자존감은 공짜니까 가난해도 돼 - 1

첫째지만 옷을 물려 입었던 이유

나는 새 옷을 사본 적이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체구가 작은 편이었던 터라 주변의 또래 아이들이나 언니들에게로부터 옷을 물려 입었다. 돌아보니 누군가는 옷을 물려 입는 것이 수치스러울 수도 있겠다.


몇 년 전, 미국에서 알고 지내던 또래 친구를 몇 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사근 사근하고 친화력이 좋은 친구는 어색할 법도 한데 금세 도란도란 수다를 떨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미국에 살던 때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자신은 본인 부모님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고. 남들 다 하는 거 돈 없어서 못하고, 아무 지원 없이 커왔던 것, 심지어 어릴 적 옷도 다 얻어 입은 것이 너무 싫다고. 눈물지었다. 그러며 너는 괜찮냐, 물었다.


솔직히 조금 당황했다. 내 입장에서 단편적으로 바라볼 때, 그 친구네 집은 우리 집에 비해 더 넉넉했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 친구는 기숙사 빌라가 아닌 예쁜 가정집에서 살았고, 반려동물을 키울 만큼의 여건이 되었으며, 내가 원하는 물건들도 다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는 그 친구 옷을 얻어 입기도 했다! 아마 본인도 그걸 알기에 나에게 공감을 예상하고 질문한 것일까, 싶었다.


그런데 나는 정말 이상하리만치 괜찮았다. 내가 가난을 원망했던 일은 단연코 단 한번, 대학 입시 때였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돈이 없으면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있다는 것을 몸소 경험했었다. 억울했지만, 조금씩 극복해 나갔다. 하지만 나는 옷을 물려 입는 것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떻게 보면 정신승리라 할 수 있겠지만은, 나는 나에 대한 자신감이 상당해서 옷 때문에 기죽은 적이 없었다. 어차피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니까 당당했다. 마음에 드는 옷을 운 좋게 얻게 되면 주변에 자랑하고 다녔다. 누군가 내가 입고 있던 옷을 보더니 “이거 내 거 아니야? “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별생각 없이 ”엄마가 이 옷 받아왔다 했는데 네 거였나 보다! “ 했다. 그랬더니 오히려 그 친구가 내가 그 옷을 가져간 걸 아쉬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아서 눈치 보고 참을 일이 많았다는 건 인정한다. 남편을 만나고 나서야 깨달았지만 나는 돈에 대한 강박이 심했다. 학창 시절 남편과 사귈 때, 학교 선생님이셨던 남편 부모님과 저녁식사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아버님께서 “너는 레스토랑에서 메뉴판을 보면 무엇을 보고 고르니?”라고 물어보셨는데, 나에겐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 뇌를 거치지 않은 대답이 즉각 나왔다.


“제일 싼 거요.” 


‘…’ 순간, 정적이 흘렀다. 어머님께서 나지막이 “우리 애들도 좀 본받아야 할 텐데…”라고 말씀하시며 가까스로 정적이 깨졌다. 남편이 나를 못 말린다는 듯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나의 발언이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가 전혀 가지 않았다. 너무나도 당연한 결론이지 않은 가! 제일 싼 게 아니면 대체 뭘 시킨단 말인가!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내가 나도 모르게 얼마나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깨달았다.


독립 후에도 한동안은 아주 사소한 물건 하나만 사도 ‘혹시 필요 이상으로 돈을 쓴 건 아닐까’, 나아가 ’ 나에게 이 만큼의 돈을 쓸 가치가 있는 가‘, 까지 따지며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옆에서 보다 못한 남편이 나의 생각을 몇 번이고 바로 잡아 주며 조금씩 내 마음도 누그러뜨려지기 시작했다. 덕분이 이제는 너무 흥청망청 쓰지 안 더록 조심해야 할 만큼 변했다. 이게 맞나?


나도 나름대로의 고충은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가난은 내가 이뤄낸 하나의 성과였다. 물론,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과 이해를 바탕으로 쓰는 글이기에 모두에게 같은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절대 아니다. 누군가는 내가 제대로 힘들어본 적이 없어서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할 말이 없다. 확실히 나는 배를 곪을 만큼 크게 어려웠던 적은 없었다. 먹고 싶은 걸 양껏 먹지는 못해도 끼니는 다 챙겨 먹었다. 감사한 일이다.


가난하기에 사람들이 부모님을 무시할 때 오는 속상함과 서러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가난 자체는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겼다. 나를 더 강하게 만들고, 나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지금도 그렇게 믿는다. 헌 옷을 물려 입으며 살짝 앞서나간 빈티지 스타일을 추구할지언정, 어디 가서 든 꿀리지 않으니까!


물론, 내 자식은 나와 같은 강박으로부터 자유롭고, 조금 더 오랫동안 아이다운 아이로 크길 원한다.


하지만 내 인생은 후회 없다.


다음 주 2편으로 이어집니다.
이전 13화 내가 꿈꾸던 미국 뉴저지 -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