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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브리 Nov 02. 2024

내가 꿈꾸던 미국 뉴저지 - 2

특별해서 특별한 날, 평범해서 특별한 날

어쩌면 내 기억보다 더 차가웠을 현실로부터 나의 어린 시절을 지켜내 주셨다.

지난주 1편에서 이어집니다.



그때는 지금보다 특별한 날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밸런타인데이 때 친구들에게 작은 선물, goodie bags를 나누어 주기 위해 일일이 쪽지를 쓰고 간식거리를 봉투에 담았던 기억이 있다.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쓰는 쪽지는 조금 더 신경 써서 썼었다. 여름에는 교회에서 하는 캠프나 수련회 하나 빠짐없이 여기저기 많이도 쫓아갔었다. 가을에는 핼러윈 때 코스튬을 사 입고 ”trick or treat “ 을 외치며 사탕을 바구니 잔뜩 받아오고는 했다. 겨울에는 크리스마티 연극과 뮤지컬 오디션을 보고 참여하며 솔로곡을 받은 적도 있다. 사실 나이가 어려 원래 지나가는 엑스트라에 불과했는데, 주조연 중 하나가 예기치 못하게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대본과 가사를 통으로 외워버렸던 탓에 그 자리를 메꾸게 되었다. 언니들에게 미움을 샀지만, 나는 그 순간을 즐겼다.


평범한 순간도 특별했다. 2학년 즈음 The Secret Languauge라는 책을 읽고는 감명받아 화단 아래 비밀 공간을 만들고 보물을 묻어놓은 기억이 있는데, 아직까지 나의 보물이 그곳에 있을지 궁금하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서 살림을 도와주러 잠시 오신 적이 있는데, 당시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반가웠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제일 힘들었을 엄마께 숨통이 틜 구멍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우리 가족은 한 달에 한번가량 코스트코에서 쇼핑을 했는데, 구경하는 게 그렇게 재밌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비싸서 엄두도 못 냈던 Foot라는 롤업젤리를 할아버지가 100개나 들어있는 박스채로 사주셨다. 말리는 엄마를 뒤로하고 무척 신이 났었다. 너무 많아 다 먹는데 1년이 걸렸지만 말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실 때 여행을 조금이나마 다녔었다. 워싱턴 DC나, 보스턴, 나이아가라 폭포도 보러 갔었다. 튼튼한 다리만 믿고 고생하기도 했지만 그때부터 여행의 묘미를 배웠던 것 같다.


지인들과 캐나다 캠핑을 갔다가 10시간이 넘게 차를 타자 멀미가 너무 심해 토한 적도 있었다. 텐트를 치고 잤는데 밤새 비가 너무 와 자고 일어났더니 신발이 떠내려갔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지금까지도 다른 건 하나 기억 안나도 그것 하나는 기억이 난다.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기 위해 우리 가족은 박물관이나 미술관도 곧잘 다녔다. 내가 아직까지도 제일 좋아하는 장소이다. 어디 여행을 가면 주변 박물관과 미술관은 꼭 들리려 노력한다. 시카고에 친구들과 여행을 갔을 때, 세 시간이 지나도록 내가 미술관에서 나올 생각을 않자, 결국 나를 끌고 나왔다. 박물관에는 대략 여섯 시간 넘게 있었을 만큼 진심이다.


뉴저지에 살 때 자주 다니던 곳 중 뉴욕 자연사 박물관을 제일 좋아했는데, <박물관이 살이 있다>라는 영화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다양한 전시물을 보고 배우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 부모님은 인생에서 중요시 여기는 것들이 명확했다. 돈 대신 여행과 도전, 곧 경험이 그중 하나였고, 책과 전시, 곧 배움이 다른 하나였다. 일찍이 전시에 눈을 뜨게 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어릴 때부터 경험과 배움에 익숙했던 나는 그 소중함을 안다. 부모님께서는 물직적 풍요보단 정신적 풍요에 초점을 둔 환경에서 자랄 수 있게 해 주셨다.


속 깊은 부모님께는 그만큼 가까운 지인들이 많았다. 나는 모임에 지주 따라나섰다. 학교 주변에 오리 공원이 있었는데 지인들과 함께 그릴과 피크닉 테이블이 있어 자주 고기를 구워 먹었었다. 보통 내 또래 아이들이 있어 우리는 놀이터에서 실컷 놀며 시간을 보냈다.


매주 주말, 아빠의 일정으로 인해 뉴욕에 갔는데, 아빠를 기다리는 동안 부모님 지인분의 집에서 머물렀다. 그 집에는 나와 나이차이가 꽤 나는 쌍둥이 오빠들이 있었다. 나에게 무려 닌텐도를 사준 오빠들이다. (전편 참조: https://brunch.co.kr/@abri/70 ​)​​ 오빠들은 <메이플스토리>라는 만화책을 최신권까지 다 가지고 있었다. 착한 오빠들은 방 한쪽에서 책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나의 첫 만화책이었다. 눈이 번쩍 떠졌다. 얼마나 재밌게 읽었는지. 아빠를 기다리는 시간이 기대되었다.


특별한 순간들도, 평범했던 순간들도 돌이켜 보면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가는 시간들이었다. 분명 상처가 되는 시간들도 있었지만, 뉴저지는 내가 기억하는 아이로서의 나의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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