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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브리 Oct 26. 2024

내가 꿈꾸던 미국 뉴저지 - 1

현실로부터 지켜진 나의 어린 시절

조금은 고달팠을지언정, 유년기시절을 보낸 뉴저지는 나에게 그리운 공간이다.


나는 숲이 우거진 등하굣길을 참 좋아했다. 계절에 따라 변하는 나무들 틈 사이로 자전거를 타던 나의 모습이 그립다. 봄에는 싱그러운 향기와 함께 겨울잠에서 깨어났는지 사슴과 다람쥐가 돌아다니고 여름이면  집 앞 빨간 열매가 열리던 나무를 탔다. 가을이면 바스락 거리는 나뭇잎 소리와 겨울에 뽀득거리는 눈밭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었다.


자연과 맞닿은 등굣길을 지나 학교에 도착하면 푸근한 인상에, 산타를 닮은 교장 선생님, Mr. Post 께서 매일 아침 인사를 건네주셨다. 그분은 전교생의 이름을 외우시고는 일일이 인사해 주셨다. 1 학년, 나는 생애 첫 담임 선생님이셨던 Mrs. Ruth를 많이 따랐다. 그분의 따듯한 손을 잡고 줄반장을 서는 날은 운이 아주 좋은 날이었다.


알록달록한 스페인어 교실을 기억한다. 영어 선생님께서는 향기 나는 칭찬 스티커를 주셨는데, 빨간 폴더에 하나도 빠짐없이 모으며 뿌듯해했었다. 학교는 즐거웠다. 쾌활했던 음악 선생님, 그리고 재밌게 배운 돌림 노래. 가끔 시간이 남으면 유행하는 팝송을 들려주셨는데, Fireflies - Owl City를 처음 접하고는 신세계를 발견한 듯했던 때가 있었다.


다른 학생들보다 손이 조금 더 야무졌던 나는 학교 사랑을 주제로 포스터를 만들어 일등을 해 몇 년 동안 복도에 걸리기도 했다. 종종 미술시간에 그렸던 그림들이 벽에 걸리기도 했다. 지나칠 때마다 뿌듯함을 감추기 어려웠다.


학교 신건물로 향하는 시원한 복도 냄새와 카페타리아에서 풍기는 초코칩 쿠키 냄새를 기억한다. 가끔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마주칠 때면, 나는 금세 향수에 젖는다. 가끔 점심시간에 쿠키를 사 먹기 위해 용돈을 받았는데, 그런 날은 하루종일 점심시간만 기다렸다. 점심시간은 항상 즐거웠다. 다른 아이들은 샌드위치 하나 달랑 들고 올 때, 나는 여러 가지 반찬과 응원의 쪽지까지 넣어두는 엄마 덕분에 매일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학교 초반에는 엄마의 쪽지를 읽으며 눈물을 참았던 기억이 있다.


학교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다양한 공연을 했는데, 그날은 학교 대대적으로 들떠있었다. 연극, 마술, 과학, 미술 등 색다른 분야를 경험하고 배울 수 있었다. 어느 날은 요요 전문가가 와서 한동안 요요에 꽂혀있기도 했다.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나름 열심히 유행을 따라가기도 했다. 학교 컴퓨터 수업 중 자유 시간에 인기가 많던 Poptropica라는 게임을 알게 되어 몇 년을 열심히 했던 기억도 있다. 또 학교에서 유행하던 모양 지우개와 silly band라고 불리는 모양 고무줄을 수집해 친구들과 교환하며 거래했었다. 당시 silly band는 한 묶음에 열개로, 인기가 없는 모양은 $1, 인기가 많은 모양은 좀 더 비쌌는데, 엄마는 $1짜리만 사주셨다. 덕분에 나는 거래 수완이 늘어 결국 학교에서 최고로 꼽히는 돌고래와 해 모양 silly band까지 손에 넣었다.


어느새 시간이 지나며 친구들과 추억을 쌓기 시작했다. 친구 집에 놀러 가 트램펄린을 타고 놀다가 지하실에 내려가 나의 꿈의 인형인 My American Girl 인형을 가지고 놀던 기억, 친구 따라 휘핑크림을 입에 짜 먹었다가 너무 느끼해 입맛을 버렸던 기억도 있다.


생일 파티를 딱 한번 했었는데, 당연히 기숙사에 부를 수도 없거니와 놀이장소를 빌릴 여력은 없었기에 부모님께서 한 가지 묘수를 내셨다. 대학원 홀을 몇 시간 빌려 음식을 두고 주변 지인들에게 한복이나 제기 등을 두고 아이들이 한국 전통 놀이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신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왔었고, 기대 없이 온 학부모들도 놀라셨다. 모두 만족스러운 생일날이었다. 돌아보면 많은 부담이셨을 텐데, 부모님께 너무 감사하다.


어쩌면 내 기억보다 더 차가웠을 현실로부터 나의 어린 시절을 지켜내 주셨다.


다음 주에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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