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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믿음과 상상 Aug 03. 2024

삶이란 존재합니까?

신과의 대화 5

나 : 요즘에는 정말 의심이 듭니다.

신 : 무슨 의심이 든다는 것이냐?


나 : 제가 살아온 인생이 과연 있었나 하는 것이요.

신 : 네 나이가 꽤 되지 않느냐? 그렇다면 살아온 것이 맞지 않느냐?


나 : 그런데 말입니다. 제 기억 속에는 제가 살아온 삶이 다 들어있지 않습니다. 파편적으로 몇 가지만 기억이 납니다. 가끔씩은 돌아가신 부모님과 과연 같이 살았는지 하는 의심도 듭니다.

신 : 너의 머리가 노화돼서 그런 것 아니냐?


나 : 제 머리가 노화돼서 그럴 수도 있는데, 어쨌든 우리가 살아온 인생은 제 머릿속에 있는 기억 아닙니까? 이 기억이 없다면 제 인생의 실체도 없어지는 것 아닐까요?

신 : 네가 경험하고 체험한 인생을 단지 기억이 안 난다고 부정한다면 지금까지 삶이 너무 의미 없지 않으냐?


나 : 맞습니다. 지금까지의 삶이 너무 의미 없어 보입니다. 제가 만약 기억 상실증이라도 걸린다면 제 인생은 남아 있지 않게 되는 것이니까요.

신 : 너의 말은 결국 기억이 인생이다라는 것이군. 기억나지 않으면 삶이 존재하지 않는다.


나 : 맞습니다. 기억되지 않은 것은 의미 없는 것이 됩니다. 

신 : 그렇다면 어떤 것이 기억나고, 어떤 것은 기억나지 않느냐?


나 : 주로 인상적이거나 새로운 것들이 기억나고, 반복적이고 새롭지 않은 것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신 : 그거야 내가 너희들의 육체를 그렇게 기억하도록 창조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기억한다면 너희 머리는 터져 버릴 거야. 그래서 매일 밤 잠을 잘 때 많은 것을 머릿속에서 삭제하도록 설계했다. 삭제되지 않는 것들은 강렬한 기억이나 장면이나 소리와 함께 기억되는 것, 그리고 반복적으로 들어온 정보들이다. 


나 : 우리들의 뇌가 한계가 있어서 특별한 것들만 기억되도록 만들었다는 것입니까?

신 : 그렇다. 그래야 너희들이 살아갈 수 있으니까. 슬프거나 부끄러웠던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잊어먹게 만들었다. 그래야 너희들이 우울증에 빠지지 않을 테니까.


나 : 그러면 신께서 창조하신 이 육체를 벗어나는 방법은 없을까요? 아니 이 육체를 초월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저는 신이 창조한 이 육체의 프로그램 데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슬퍼하는 것이 너무 싫습니다. 가끔 어떤 일을 하며 즐거울 때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내 육체가 미리 프로그램된 데로 도파민이 발생하는 일이라 내가 즐거운 것이 아닐까? 인간이 생존할 수 있도록 창조한 신의 프로그램 데로 반응하는 것은 아닌가? 

신: 육체에 있을 때는 그 육체에 맞게 행동하면 안 되느냐? 꼭 그렇게 따져야겠느냐? 네 육체가 반응하는 데로 가슴 떨리고 재밌는 일들을 하고, 네 육체의 반응대로 슬픈읠을 겪으면 맘껏 울면 안 되겠느냐? 그냥 즐기고 체험하라!


나 : 싫습니다. 제가 느끼는 모든 감정이 의심이 듭니다. 제가 느끼는 것인지 그렇게 느끼도록 프로그램된 것인지. 저는 이제 당신이 만든 세상의 법칙을 초월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세상에서 울고 웃는 연기자로 살기 싫습니다. 

신 :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나 : 저는 새롭게 모든 것을 정의하겠습니다. 제가 살아가는 인생은 지금만이 생생하게 느껴지므로 저는 과거를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아니 못 믿겠습니다. 과연 내가 그렇게 살아왔는지 아니면 그런 기억이 있을 뿐인지. 이제 기억을 믿지 않겠습니다. 아니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만 삶으로서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만든 희로애락을 다 의심하겠습니다. 남들이 즐거워할 때 즐거워하지 않고 남들이 슬퍼할 때 슬퍼하지 않겠습니다. 인류를 생존하게 하기 위해 만든 당신의 프로그램을 거부하겠습니다. 

신 : 거부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나 : 자손을 만들기 위해 만든 이성 간의 사랑의 감점과 성행위가 우습고, 유전자를 전달해 주는 부모에 대한 사랑과 유전자를 전달할 자식에 대한 집착을 버리겠습니다. 

신 : 그거야 뭐 네 선택이다.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단다.


나 : 이렇게 우스운 트릭들을 제가 못 찾아낼 거라고 생각했나요? 이제 주변을 둘러보면 이 트릭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친구를 만나고 집단을 만들고 도파민이 나오는 행동을 하며 즐거워하고, 부모를 그리워하고 자식을 사랑하고, 원시시대에 겪었던 사냥의 변형이 된 스포츠나 게임을 하며 몰두하는.....

저를 창조할 때 좀 더 다른 세상은 못 만들었을까요? 뻔히 보이는 데로 움직이는 세상밖에는 창조를 못하십니까?

신 : 너는 참 불만이 많구나! 그런데 네가 놓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처음 네가 겪은 세상은 내가 만들었지만, 그 세상에 살면서 체험하기를 바란 것은 너의 선택이다. 그리고 이 허점투성이 세상을 다르게 바꿀 수 있는 능력도 너에게 있단다. 내가 만든 세상에 한탄하지 말고 네가 새로운 트릭을 만들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너만의 세상을 만들어라. 


나 : 저 만의 세상을 만들라고요?

신 : 그래. 그러면 되지 않느냐? 내가 만든 세상의 희로애락이 싫으면 그것을 초월해서 살아라. 인간을 생존하기 위해 만든 부모, 자식에 대한 관계가 싫으면 그것에서 벗어나서 살아라. 너를 가슴 뛰게 만들었던 운동이나 글쓰기, 책 읽기가 내가 미리 만든 네 육체의 프로그램된 것처럼 느껴진다면, 네 육체를 초월해서 가슴 뛰는 것들을 찾아봐라. 네 몸에서 나오는 도파민이나 옥시토신 같은 화학물질이 싫으면 그것 없이 행복해져라. 


나 : 그러면 신께서는 이 세상을 왜 만들고 저를 왜 만들었나요?

신 : 내가 만든 세상에서 다양한 체험을 하며 희로애락을 겪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체험이 없으면 경험하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다. 두려움이 없으면 담대함이 없고, 지루함이 없으면 흥미지진함이 없다. 슬픔이 없으면 즐거움이 없다. 난 너희들이 슬픔도 체험하고 그것을 통해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지도 체험헤게 하였다. 미움을 체험해서 사랑을 느끼게 하였다. 난 이 세상에 서로 반대되는 개념들을 창조하여 너희들이 느끼도록 하였다. 어둠이 있어 밝음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끔 너와 같은 인간들이 생겨난다. 내가 만든 체험을 하다가 문득 이것의 본질을 궁금해하며 그 너머에 있는 것을 찾는 인간들이다. 그러면 그렇게 찾아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기억나지 않는 것들은 인생이 아니라고 인정하고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네가 죽으면 어차피 나에게로 돌아와서 느끼는 것들을 왜 거기서 찾는지 모르겠다. 그 체험을 하고 싶어서 거기에 갖다면 그냥 체험하고 느끼면 될 것을... 왜 죽고 나서 할 수 있는 것을 살아가면서 하려 하느냐? 그냥 내가 만든 프로그램 데로 살면서 많이 느껴봐라. 그리고 체험해 봐라!


나 : 죄송합니다. 그렇게 하기에는 신이 만든 세상이 너무 완벽하지 못하고 결점이 보입니다. 이것들을 무시하고 그냥 살 자신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이런 체험을 많이 해야겠지만 이제는 그것에 초월해서 다른 것들을 체험하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태어날 때는 당신이 만든 세상의 트릭을 제가 모르도록 좀 더 완벽하게 만들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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