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의 자녀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열리는 것들
부모라면 누구나 겪는다.
“왜 이렇게 공부를 안 하지?”
“조금만 더 하면 잘할 텐데…”
“저 모습 보니 불안해 미치겠다.”
아이의 성적표나 시험 결과를 볼 때, 머릿속에서 수십 가지 걱정과 비교가 한꺼번에 올라온다.
그 순간 우리의 마음은 이미 결핍 모드가 된다. 그런데 어느 날, 나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내가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내 기준으로 재단하려 해서 내가 힘든 건 아닐까?”
그 질문이 시작이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한다.
열심히 하는 아이가 ‘정상’이다.
집중 잘하는 아이가 ‘괜찮은 아이’다.
게으른 아이는 문제다.
하지만 진짜 현실은 전혀 다르다. 아이마다 에너지 패턴이 다르고 움직이는 속도가 다르고 관심사가 다르고
배움의 방식도 다르다. 어떤 아이는 몰입형이고 어떤 아이는 천천히 익히는 스타일이며 어떤 아이는 한 가지에만 관심을 보인다. 부모는 자신의 기준으로 아이를 바라본다. 그러니 거기서 충돌이 난다.
이 질문이 부모를 가장 힘들게 한다
예를 들어보자.
중2 아들이 방에 들어가 스마트폰만 붙들고 있는 모습
초등 고학년 딸이 수학 문제집 두 장을 못 넘기고 짜증 내는 모습
고1이 인강을 켜놓고도 멍하니 창밖을 보는 모습
부모는 이 장면을 보는 순간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이런 판단이 일어난다.
“저렇게 해서는 안 돼.”
“이러다 대학 못 가겠다.”
“공부를 왜 저렇게 느긋하게 할까?”
그런데 이 판단의 ‘기준’은 사실 우리의 어린 시절, 우리의 방식, 우리의 불안에서 온다. 그 불안이 마음을 조이기 시작하면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문제로 보인다.
아이를 바꾸려 하면 할수록 부모가 먼저 지친다. 그 순간 필요한 건 “포기”가 아니라 **“수용”**이다.
수용은 이렇게 말하는 태도다.
“이 아이는 원래 이런 리듬을 가진 아이구나.”
“당장 변하지 않아도 괜찮다.”
“얘만의 속도와 방식이 있다.”
이렇게 바라보는 순간 부모의 마음이 먼저 부드러워진다. 그 편안한 마음이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부모가 이렇게 말해준 적이 있다.
“전에는 성적표 나올 때마다 미칠 것 같았는데, ‘우리 아이는 지금 이 속도로 배우는구나’ 이 마음을 가지니까 아이가 훨씬 편안해 보이더라고요.”
또 한 부모는 이렇게 말했다.
“잔소리를 멈추니, 이상하게 아이가 먼저 공부 얘기를 꺼내요. 예전에는 제가 자꾸 몰아붙여서 아이가 저를 피한 거였더라고요.”
수용은 아이를 게으르게 만드는 게 아니라 부모의 압박이 빠져나가면서 아이에게 여유와 자율성이 생기는 과정이다.
우리가 아이에게 원하는 건 결국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그 행복은 성적을 잘 받거나 남들보다 앞서거나 빡세게 달려서 얻는 게 아니다.
가장 먼저 필요한 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힘이다. 그리고 그 힘은 부모가 아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할 때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전염된다.
부모가 하는 수용은 단순한 태도의 변화가 아니라 아이의 자존감을 키우는 가장 강력한 방식이다.
아이의 오늘 하루가 게으름으로 보이던 무기력으로 보이던 무관심으로 보이던 그건 ‘문제’가 아니라 그 아이가 세상을 배우는 방식이다. 아이의 속도를 인정해 주는 순간 부모의 마음이 먼저 평온해지고 그 편안함이 아이에게 닿아 조금씩 변화가 시작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이를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가 가진 고유한 속도와 방향을 믿어주는 것이다.
그 믿음의 시선이 아이를 한 걸음씩 앞으로 움직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