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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비 Jun 28. 2023

작은 고양이가 열어준 큰 세상 (1)

꼬마 고양이 길들이기

젖먹이 아기고양이는 식구들의 사랑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 한 달 사이에 제법 고양이 다운 면모를 뽐내었다. 어설프게 돋은 털은 더 어설프게 자라 민들레 홀씨 같은 모습이 되었지만 제법 고양이 같은 외모로 변하게 됐고, 엉거주춤 비틀비틀 거리며 걷던 모습은 오간데 없고 이젠 제법 잘 걷고 심지어 폴짝폴짝 잘 뛰기까지 하는 꼬마 고양이가 되었다.



갓난쟁이가 꼬마로 자라는 그 사이,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 고양이에게 꽤 많은 것을 알려 주었다.



제일 먼저 분유를 탈출하고 이유식 먹기.


사람 아기도 이유식을 먹듯이 고양이 아기도 이유식을 먹는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 동물병원 의사 선생님께서 돌콩이는 장이 예민하고 (분유 농도를 조금만 다르게 조절하거나 물 온도가 바뀌면 바로 설사를 하곤 했다) 또 워낙 약하게 태어났으니, 바로 아기고양이용 사료를 먹이지 말고 분유에 잘 불린 사료를 먼저 먹여볼 것을 권하셨다.


고양이 이유식을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더 재밌는 일이었다. 아빠는 소꿉장난을 하는 것 같다고도 하셨고, 엄마는 우리 어릴 적이 생각난다며 가슴 뭉클해하기도 하셨다.


먼저 따뜻한 분유를 만들고 거기에 정량만큼의 아기 고양이 사료를 넣는다. 사료를 알알이 잘 불린 다음에 살짝 으깨서 주면 끝! 이 간단하고 단순한 요리가 돌콩이에게는 꽤나 만찬이었던지, 식구들이 분주하게 사료를 꺼내고 분유를 타는 소리가 들리면, 저 멀리서도 뽈뽈거리면서 달려와서 빨리 내놓으라고 졸라댔다.


얼마 전만 해도 죽네 사네 하던 아기 고양이가 쑥쑥 자라서 빨리 밥을 달라고 보채는 것을 보는 일은 아직까지도 내 마음속에 남아 가끔 꺼내보며 웃을 수 있는 오래오래 애틋한 추억 중 하나가 됐다.



그다음으로 가르쳐 준 일은 스크래쳐 하기.

돌콩이는 스크래쳐 사용하는 법을 하나도 몰랐다. 심지어 스크래쳐가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도 잘 몰랐던 것 같다. 아기 고양이는 엄마 고양이를 보며 생존 스킬을 획득한다고 하는데, 돌콩이에게는 엄마 고양이가 없으니 내가 엄마 고양이가 되어 직접 보여주어야 했다.


고양이들을 위한 스크래쳐에는 크게 박스형과 기둥형이 있다. 그리고 벽에 붙여 쓸 수 있는 스티커 형태, 식탁이나 의자 다리에 감아 쓸 수 있는 형태도 있다.


그 당시 우리 집에서 썼던 스크래쳐는 조그만 기둥형이었다. 나무 모양의 스크래쳐였는데 가지가 달려있고 조그만 생선도 달려있는 등 아주 귀여운 디자인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뭇가지에 왜 생선이 달려있나 싶긴 하다.)


스크래쳐 사용법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면 고양이는 자기 마음에 드는 장소가 어디든 간에 아랑곳하지 않고 스크래칭을 한다. 날카로운 발톱으로 온갖 것들을 다 헤집어 뜯어 놓는다는 소리다.


특히나 고양이는 한번 마음에 들면 그 마음을 잘 바꾸지 않는 아주 고집 센 동물인지라, 한번 발톱의 먹잇감(!)이 되면 그 신세를 벗어나기 어렵다. 의자가 망가지고 벽지가 찢어지고 소파가 터지는 등의 불상사는 인터넷 이곳저곳에서 많이 발견된다.


인터넷에 떠도는 의자 망친 고양이.ㅠㅠ



이러한 불상사를 막기 위해 적재적소에 스크래쳐를 많이 배치해 두고 우리는 스크래쳐 사용법을 가르쳐 주기로 했다. 스크래쳐 교육이라고 해 봐야 거창한 것은 아니었지만 꼬마 고양이를 앞에 앉히고 내가 직접 스크래쳐를 뜯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실 이렇게 보여주고 바로 따라 할 거라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만약 바로 따라 하지 않는다면, 나는 직접 이 꼬마 고양이의 발을 쥐고 스크래처를 뜯어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꼬마 고양이는 내가 하는 모습을 한참을 지켜보더니 곧이어 자기도 같이 뜯기 시작했다.


서툴지만 힘차게 발톱을 뜯는 돌콩이를 지켜보던 그때의 그 감동은 아마 우리 부모님이 내가 처음 걸음마하던 그 순간의 기쁨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 꼬마 고양이가 이렇게나 자랐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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