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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삭제 Jan 28. 2024

축제.3

연극이 끝난 후

콧물에 주근깨에 일자 눈썹, 코 옆에는 왕서방만 한 점. '달려라 하니'의 홍두깨 부인보다 더 두꺼운 입술. 엉망으로 분장을 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자 창피함에 웃음밖에 안 나왔다.

"부끄르브 하지마라! 연습한 대로만 하모된다! 15분만 딱 눈 깜꼬 미친 척 무대위서 신나게 노라보자!!"

축제의 마지막 날, 이제 우리의 놀이터는 무대가 되었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댄스가수 터보의 '검은 고양이 네로' 가사에 충실히 맞춘 동작으로 변사가 무대 위 화려한 조명 밑으로 등장한다.

애드리브처럼 들리는 순발력 있는 대사를 치며 무대 위를 크게 한 바퀴 돌아 한쪽 끝에 가서 선다.

철부지 아낙네들이 머리엔 빨랫감을 이고 궁둥이를 한껏 흔들며 나루터로 모여든다.


변사가 저 밑바닥에서부터 끌어올린 과한 감정으로 멘트를 날리면, 엉덩이에 수건을 넣어 한껏 부풀린 글래머스한 아낙들이 반경 180도로 힘껏 엉덩이를 흔들며 들어온다.

변사의 조금씩 바뀌는 톤에 따라 나루터에 앉아 빨래를 하는 아낙들이 벌 갈아가며 입이 찢어지게 크게 벌리며 뻥긋거리며 대화를 나눈다.

그때 한 아낙이 무언가를 꺼내 빨래 위로 한참을 쏟아붓는다.


"아니, 저것이 무어냐 말인가? 조금만 넣어도 거품이 콸콸 나오는 슈퍼타이가 아니던가!! 저리도 쏟아부으면 저 많은 거품이 어디로 흘러간단 말인가? 저것이 또다시 누구의 입으로 들어간단 말이던가!! 아~~ 비통하고 침통하도다~ 벌써 물 위로 떠오르는 물고기 새끼들을 보아라 눈물을 뚝! 뚝! 흘리고 있지 아니한가~~"

변사는 마치 깔딱 고개 위를 오르듯 숨이 넘어가라 대사를 치고 있다.  그러든가 말든가 슈퍼타이 모형을 든 아낙은 세제를 펑펑 쏟아내는 동작을 최대한 크게 해서 멀리 있는  관객들도 알아볼 수 있게 한다.


그때 또 다른 아낙이 묶었던 머리를 풀어헤치고 헤드뱅잉을 격하게 하고는 머리 감기에 돌입한다. 빨래 바구니에 넣어 온 샴푸통 모양의 커다란 종이를 머리에 막 뿌리면서.

"하이고~~~~ 우째쓰까잉? 미친 머리 산발을 한 저 정신 나간 아낙네가 개면활성제가 잔뜩 들어간 샴푸로 샤워를 할란갑소~~~"

변사가 이번엔 거의 통곡을 하며 무대 위에 철퍼덕 주저앉아 마이크를 안 쥔 손으로 바닥을 연신 쳐댄다.

"저것들을 도저히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구나!! 그를 불러야겠구나. 자연을 괴롭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오는!! 도와줘요 그린맨~~!!"

변사의 우렁찬 부름에 천둥번개가 치는 효과음이 들리고 번쩍번쩍 조명이 번갈아 비추는 무대 위로 물건 쌀 때 쓰는 보따리를 여러 개 연결해서 만든 빨간  망토를 메고 초록색 체육복을 입은 그린맨이 나타난다.

"하. 하. 하~, 나는 환경을 지키는 그린맨, 환경을 망치는 곳이면 어디라도 나타난다."

변사는 굵고 힘 있는 저음의 목소리로 뻥긋거리는 그린맨과 입을 맞춘다.

무분별하게 세제와 샴푸를 써대는 사람들을 향해 주먹과 다리를 풍차처럼 사방으로 막 휘두르는 그린맨에 의해 빨래와 머리를 감고  있던 아낙들이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진다.

그렇게 그린맨은 지역 강물을 오염시키는 아낙들을 물리치고 유유히 사라진다.

변사는 환경을 보호하자는 표어 같은 대사를 마무리로 극은 끝이 난다.





각자의 역에 빠져 즐기며 한바탕 논 우리들에게 쏟아지는 환호와 박수가 축제 마지막 날 강당 지붕을 날려버렸다.

나를 버리고 다른 사람이 되어 미친 척 날 뛴 15분이란 시간이 선물한 환호와 갈채를 받으며 무대 위에서 바라본 객석은 정말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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