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억삭제 Jan 19. 2024

곱슬머리.2

곱슬머리.

나는 소심한 중학교 1학년이었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학교를 다니고 싶었던 아이였다.
그러나 입학 한 달 만에 학생주임 선생님에게 앞머리를 잡히고 말았다.
 
“이 짜슥이, 눈 바리 안 뜨나?”
“아, 쫌, 쫌, 진짜로 아파예!!”
머리끝에서 찌릿하게 전해지는 통증이 두발 끝으로 내려가 동동거리고 있었다. 앞머리가 이제는 거의 뽑힐 지경이었다.
 
“허! 야 봐라이?”
선생님의 입가로 ‘피식.’하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니 1학년이가?”
“그란데예.”

어이없어하는 선생님의 목소리만큼이나 내 목소리도 짜증이 배어났다.
기막혀하는 선생님의 손에 힘이 빠지는 순간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잽싸게 탈출해서 잔뜩 구겨진 얼굴로 잡혔던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문질렀다. 찌릿하게 남아 있는 고통이 어서 사라지라고.
 
아침부터 거울 앞에서 정성스럽게 투자한 앞머리는 엉망으로 망가졌고, 표정은 약이 바짝 올랐고, 입은 삐뚤어 질대로 삐뚤어졌다. 여전히 나를 왜 잡아 세웠냐는 의문의 눈빛은 서늘한 빛을 내고 있었다.
 
“니 앞머리 빠마했제?”
“에? 뭐라꼬예?”
순간 내 눈엔 닭똥 같은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아빠도 곱슬머리 엄마도 곱슬머리, 그 사이에서 나온 내 머리가 곧게 뻗어 나갈 리는 만무했다.
유독 앞머리만 심하게 ‘S’컬의 물결을 그렸다. 앞가르마를 타면 양쪽으로 ‘S’자를 그리고 있는 앞머리는 친구들에게 놀림감이 되었다. 엄마는 그런 나의 앞머리를 길러주지 않았다. 항상 눈썹 위까지 싹둑 잘라주었다. 그 이유는 머리를 잘 묶지 않던 내가 앞머리까지 길면 정신 사납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고집을 피운 끝에 앞머리를 길러보았지만, 길면 끝만 살짝 들어가는 뒷머리와는 다르게 길어질수록 꾸불거리는 머리가 너무 풀풀 날렸다. 그나마 짧을수록 컬이 덜 생겨 그 뒤론 항상 내가 정한 적당한 선의 웨이브가 지는 상태로 유지해 왔다.

그런 내 앞머리를 초등학교 시절 남자아이들은 멋 부린다고 앞머리만 파마했다고 놀려 댔다. 놀림을 당하고만 있지 않으려 시작된 반격은, 곱슬머리라 성질이 나쁘다는 근거도 없는 결론으로 또 다른 조롱이 되었다. 어린 가슴에 상처로 남아 말은 줄어들고 점점 소극적인 아이가 되어갔다.
 

남자들이 없는 여중에 배정받아서 너무 좋았다. 그런데 등교 시간에 남자 선생님에게 앞머리를 잡힐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중학교에서마저 나의 앞머리가 가십거리가 되어버렸다.
 
선생님에게 잡혔던 앞머리의 통증이 갑자기 폭풍처럼 밀려들어 다시 아파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별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